[꼴Q열전]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최승은(30) 씨는 랩퍼 겸 공연 기획사 마이크임팩트의 수습사원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삼성맨’ 사원증을 차고 있었지만 꿈을 찾겠노라 지난해 3월 당당히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퇴사 후 줄어드는 통장 잔액을 보며 대책 없이 호기롭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한 적도 있지만, 최 씨는 원하던 꿈에 아주 조금씩이나마 가까워지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사진=이승재 기자)
최승은 씨는 2014년 삼성디스플레이에 입사했다. 그는 자신을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라 설명한다. 당시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에서 분사하며 처음으로 인턴십을 진행했는데, 참신한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의지로 기술면접 없이 앞으로의 계획, 포부 등을 기준으로 인턴을 선발했다.
“한양대 신소재공학부에 재학 중이었는데 전공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사실 입학할 때는 ‘신소재공학’이 뭔지도 모르고 지원했거든요. 수학·과학 특기생 전형이라 선택할 수 있는 과가 한정적이었는데, 갈 수 있는 곳 중 이름이 가장 세련돼 보여 선택한 것이에요. 막상 와보니 적성에 잘 맞지 않아 성적이 좋지 않았죠. 까다로운 기술면접이 있었다면 합격하기 어려웠을 텐데 운이 좋게도 인턴십에 합격할 수 있었어요. 인턴 활동 후에는 정규직으로 전환돼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죠.”
△ 삼성 사내 다큐멘터리 출연 모습 캡처 (사진=최승은 제공)
‘랩’으로 회사의 유명인사 등극, ‘쟤 정체가 뭐야?’
회사 생활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인턴 장기자랑 때 숨겨왔던 끼를 분출하며 선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뒤로는 각종 행사마다 불려 다니며 공연을 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마다 그가 보여준 것은 ‘랩’이었다. 대학시절 전공 공부보다 밴드 활동을 더 열심히 하며 갈고 닦은 실력이다. 밴드 동아리에서 보컬을 맡고 있던 그는 친구들이 악기 하나씩은 다룰 줄 아는 모습을 보며 곁눈질로 기타를 배웠다. 기타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작곡도 시작했다. 곡에 붙일 가사도 쓰기 시작했다. 멜로디에 맞춰 써야하는 노래 가사에 비해 랩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라임만 맞춰 쓰면 되니 훨씬 쉬웠다. 직접 해보니 락스피릿을 담아 부르던 락 음악보다 목도 덜 아팠다. 그때부터 최 씨는 ‘랩’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고, 혼자 연습도 하고 힙합수업도 들으며 실력을 갈고 닦았다.
“인턴으로 입사 후 장기자랑 때 랩을 한 이후로 신입사원 무대를 비롯해 계절별로 열리는 사내 행사 등에 빠짐없이 참석했어요. 사내 보이는 라디오에서 공연하고, 봉사단 행사 무대에도 오르고요. 그러다보니 회사에서는 ‘쟤 뭐하는 애냐’며 관심을 갖게 됐고, 사내 방송까지 출연하게 됐죠. 며칠 동안 저를 따라다니면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이었는데, 그 촬영을 하면서 제가 하고 있던 활동이 모두 알려졌어요. 사내 라디오 작가, 작사·작곡 활동, 외부 공연을 진행하던 것까지 모두요. 덕분에 대학생 대상 강연프로그램에도 나가게 됐고, 회사 기숙사에서는 다들 알아볼 정도 나름 얼굴을 알리게 됐죠.”
△ 북카페에서 보이는 라디오 형식으로 진행한 '문악시간' (사진=최승은 제공)
퇴직금, 월급 팍팍쓰며 베개씨 공연 활동에 올인
내재된 끼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고, 선배들에게도 예쁨 받고, 원하는 취미 생활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회사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딱 2%,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최 씨는 그 2%의 아쉬움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답을 알게 되자 과감히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그렇게 2016년 3월 그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재직 중 혼자 공연을 기획한 적이 있어요. SNS로 사연을 받아 그 이야기를 랩으로 만들고, 사연의 주인공과 함께 무대를 꾸미는 것이죠. 자신의 삶을 노래로 표현한다는 것이 매력적이고, 듣는 사람에게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자극을 줘 각자가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밀어주는 일, 그게 바로 제가 원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사 생활의 2% 부족함을 거기서 찾게 된 거죠.”
△ 직접 쓴 가사로 공연 무대에 오르는 최승은(베개씨) 씨 (사진=최승은 제공)
퇴사 후 그는 본격적으로 공연 기획을 시작했다. 활동을 할 때는 본명 대신 ‘베개씨’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20대 초반, 여자친구에게 보고싶어라는 말의 초성 ‘ㅂㄱㅅㅇ’를 메시지로 보내고 괜히 쑥스러워 “‘베개삶아’라는 의미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아련히 남아있다는 그. 그때부터 베개라는 단어를 보면 ‘보고싶다’,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닉네임도 베개씨로 짓게 됐다고 한다.
그가 직접 진행한 공연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재직 중 진행했던 공연을 보완해 '베개씨의 오르골'을 기획했다. 공연의 수익금은 모두 기부하는 ‘기부 공연’으로 입소문이 났다. 이외에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도 추가했다. 그 중 하나는 ‘문악시간’이라는 공연이다. 북카페를 대관해 보이는 라디오 형식으로 관객을 초청하고, SNS 인기 작가와 함께 사전 공지된 주제의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봉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봉사단 ‘베개단’도 만들었다. 최근에는 대학 친구와 함께 싱글 앨범도 발매했고, 청춘페스티벌 연사로도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다.
△ (사진=이승재 기자)
퇴사하니 행복한 시간 많아, 하지만 너는 퇴사하지마라
대학, 회사 동기들은 이런 그의 모습에 ‘대단하다’, ‘멋지다’며 연락을 해왔다. 간혹 ‘나도 너처럼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며 고민 상담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실상을 모르는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리얼 삶의 현장은 구질구질하다고. 최 씨도 회사를 나올 때만 해도 원하던 공연 기획을 마음껏하며 승승장구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공연을 전부 개인 사비로 진행하다보니 점점 통장은 ‘텅장’이 되어갔다. 장소 대관료, 섭외비, 진행비, 소품비 등 한 회 공연에 100만원 정도가 쓰이는데, 월급이 없으니 점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2년 정도는 퇴직금과 모아둔 월급으로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1년여만에 통장은 바닥을 드러냈다.
“공연이 알려지면 협찬도 받고, 2년 정도 지속한 후에는 방송국에 프로그램 포맷을 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생각처럼 되지 않더라고요. 먹고 살기 위해 프리랜서로 행사 진행하는 것도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죠. 하지만 그것도 고정적인 수입은 아니었고, 또 돈을 벌기 위해 남의 행사를 진행하느라 정작 제가 하고 싶은 공연은 제대로 기획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어 방법을 찾게 됐고, 결국 공연기획사인 마이크임팩트에서 새롭게 시작해보기로 했어요.”
△ (사진=이승재 기자)
최 씨는 이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월급은 줄어들었지만, 차근차근 공연에 대한 기본기를 다질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월급도 모으고, 공연 기획에 대한 내실도 다져 오는 7월에는 또 한 번 베개씨의 공연을 진행해보려 한다.
“처음 퇴사를 했을 때는 하루 24시간 중 30분을 후회했고 나머지 시간은 행복했어요. 3달이 지만 2시간 후회하게 되고, 1년이 지나면 4시간을 후회하게 되더라고요.(웃음) 내년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행복이 더 커요. 공연기획자로서 원하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갈거예요. 회사의 경영진 자리 까지도 노리고 있어요. 사람들의 삶에 보다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는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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