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로맨틱하게 달리는 러너들의 모임, 낭만크루

△ 사진=낭만크루 제공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수요일 오후 8시, 해가 져 으슥한 뚝섬유원지에 20대 남녀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아직 밤바람이 쌀쌀한 날씨였지만 반바지, 쫄바지를 당당히 입고 나타난 이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낭만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낭만크루(RCEVE, Romantic Crew Enjoying Various Exercise 약자)’는 운동을 사랑하는 20, 30대가 모인 동호회다. ‘다양한 운동을 즐기며 낭만을 느끼자’는 취지로 지난 2014년 7월 첫 만남을 가졌다. 취업이나 직장 생활 등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신나게 운동을 즐기고, 좋은 사람들과 모여 인생의 낭만을 즐겨보자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낭만이라는 것도 거창할 게 없다. 흠뻑 땀 흘리며 운동한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그거면 충분하다.


낭만크루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5km 정기 러닝을 하고, 주말에는 사이클, 등산, 수영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긴다. 여름이 오면 함께 수상 스포츠를 즐기고 겨울에는 보드를 타며 계절을 만끽한다. 그렇다고 ‘만능 스포츠맨’만 크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동을 얼마나 잘 하느냐는 상관없다. 그저 즐길 마인드만 있다면 OK.



로맨틱하게 달리는 러너들의 모임, 낭만크루

△ 사진=낭만크루 제공



모임 공지는 인스타그램, 댓글만 달면 누구나 크루로 환영

운동은 하고 싶은데 혼자 하기엔 심심하고 어려울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이 동호회 가입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동호회의 경우 가입 조건, 활동 규칙 등이 까다로워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는 이상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가입을 받는 시기도 정해져있고, 가입 후에는 매번 정기 모임에 꾸준히 참석해야한다. 몇 번 이상 참석하지 않으면 어렵게 들어간 동호회에서 ‘강퇴’되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낭만크루는 쿨내가 진동한다. 가입조건이나 규칙 따위 전혀 없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신조. 운동을 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낭만 크루를 찾아오면 된다. 이들은 SNS를 통해 모임을 공지한다. 낭만크루 인스타그램 계정(@rc_eve)에 운동 일정이 공지되면 원하는 사람은 댓글을 달고 참석하면 된다. 따로 회원가입을 할 필요도, 연락처를 남길 필요도 없다. 이렇게 댓글을 달고 2번 이상 참석하면 그때부터는 정식 멤버로 승격돼 낭만크루 단톡방에 초대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낭만크루의 연제호(26) 씨는 “현재 낭만크루 단톡방에는 40명 정도가 모여 있다”며 “일상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운동복 정보 공유 등 다양한 대화를 한다”고 말했다.


21살부터 34살까지, 대학생, 디자이너, 엔지니어, 경찰, 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운동’이라는 공통관심사로 뭉쳐서인지 친화력만큼은 최고다. 한 번 모임에 나왔다가 몇 달 후에 다시 참석해도 불편하거나 어색함 없이 금새 친해진다. 처음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운동하는 것이 낯설 법도 하지만, 흔히 말하는 ‘텃세’가 전혀 없어 혼자 찾아와도 부담스럽지 않다. 1년 남짓 크루로 활동 중인 연제호 씨는 “혼자서 운동을 즐기고 있었는데 낭만크루 인스타그램을 보고 나오게 됐다”며 “처음에는 어색할 것 같아 걱정도 했지만 회원들이 잘 챙겨줘 금방 친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운동이 끝난 뒤에는 뒷풀이도 이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을 수 있다고.


이날 처음 정기러닝에 참석했다는 안서희(26) 씨 역시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다들 성격이 활발하고 유쾌한 것 같아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며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로맨틱하게 달리는 러너들의 모임, 낭만크루

△ 사진=낭만크루 제공



군복·교복 입고 달리는 ‘전투런’으로 러너들의 시선 강탈

운동도 남들과 다르게 즐기는 것이 낭만크루의 매력이다. 4월 1일 만우절에는 ‘전투런’이라는 이색적인 러닝을 하는데, 운동복 대신 군복, 교복, 경찰복 등의 의상을 입고 달린다. 매년 만우절마다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는 30명의 크루가 참여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한강변을 달렸다고.


마라톤에 참가할 때도 비주얼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각종 소품과 선글라스, 멋진 운동복 풀세팅은 필수다. 덕분에 각종 마라톤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이들은 사진 기자들의 단골 모델이 되고 있다.

12월이 되면 낭만크루 연말파티도 연다. 늘 운동복 차림으로 만나던 이들이 일 년에 딱 한 번, 완벽하게 드레스업하고 만나는 날이다. 여느 시상식 부럽지 않게 근사한 포토월도 설치하고 남자들은 턱시도, 여자들은 드레스를 차려입고 모여 파티를 즐긴다.



로맨틱하게 달리는 러너들의 모임, 낭만크루

△ 사진=낭만크루 제공



“베스트 드레서도 뽑아요. 연말파티에 오면 장미꽃을 한 송이씩 나눠주고 베스트 드레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꽃을 전해주는 거죠. 가장 많은 꽃을 받은 사람에게는 선물도 증정해요.”


함께 땀 흘리고 운동하다보면 정이 들기 마련인데, 이렇게 한 번씩 근사한 모습으로도 만날 수 있으니 핑크빛 로맨스가 만발하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남녀 성비도 얼추 비슷해 낭만크루는 ‘연애의 장’으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벌써 여러 커플이 크루 내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했고, 현재도 연애 중인 커플이 상당수다. 얼마 전 한 커플이 부산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는, 크루들이 함께 부산에 내려가 축하를 해주고 겸사겸사 MT까지 즐기고 돌아왔다.



로맨틱하게 달리는 러너들의 모임, 낭만크루

△ 사진=낭만크루 제공



재미있는 활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운동 동호회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매거진 발간 활동도 한다. 이름하야 ‘낭만매거진’. 크루들의 운동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과 소식 등을 담은 책자다. 매거진에는 크루들이 직접 모델이 돼 촬영한 화보도 들어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촬영은 사진이 취미인 크루가 재능기부 형태로 진행했고, 촬영 의사를 밝힌 5명의 크루는 각자 원하는 시안을 찾아와 쑥스럽지만 모델처럼 포즈도 취하며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를 얻었다.


“앞으로도 재미있고 신나는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갈 예정이에요. 언제든 누구나 함께할 수 있습니다. 낭만크루와 함께 낭만을 즐겨봐요!”


phn09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