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정문 지하보도에 생긴 창업카페. 사진=이승재 기자
‘연세대 창업 지킴이’ 손홍규 창업지원단 단장 인터뷰
연세대 앞 낡은 지하보도, 창업카페로 변신
벤처 붐 일던 1998년 학교 차원 지원 시작돼
123개 기업 배출...IPO 기업만 6곳
바이오 붐 타고 의대도 창업 바람, 교원 창업 줄이어
창업 마일리지 통해 해외 출장비 지원도
지난해 교내서 제 1회 스타트업 채용박람회 개최
창업 경연대회 난립 우려, 상금으로 먹고 사는 사례도
연세대 신촌캠퍼스 정문 앞에서 성산대교 방면으로 60m 걸어가면 오래된 지하보도가 보인다. 1978년 건설 후 연세대 학생의 등?하교를 책임졌으나 2014년, 지상 횡단보도 설치 후 제기능을 상실해 방치되고 있었다.
2년 뒤, 이 공간은 새롭게 재탄생했다. 손홍규 연세대 창업지원단장(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의 손을 거치면서다. 손홍규 단장은 서울시와 손을 잡고 이곳에 길이 54.1m, 폭 6.8m, 368㎡ 규모의 창업카페(약 132㎡)를 열었다.
창업을 향한 무한 애정 덕분이었을까. 손 단장은 무려 7년 반째 연세대 창업지원단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 보직이 보통 2년 단위로 바뀌는 것을 감안하면 그는 교원으로서는 드물게 창업 ‘외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손홍규 단장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1985년 연세대 공과대학 토목공학과 졸업
1987년 연세대 대학원 토목공학과 석사
1996년 오하이오 주립대 대학원 박사
2009년 연세대 창업지원단장
-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연세대 창업지원단 단장이면서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연구 분야는 GPS, 즉 위치기반 응용기술입니다. 늘 응용과학의 활용법을 고심하던 차에 2009년, 공과대 학장님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창업지원단의 전신인 BI(Business Incubating)센터장을 맡게 됐습니다. 토목이나 환경 등 사회기반분야 전공이라 창업엔 문외한이었지만 교수와 마찬가지로 ‘인큐베이팅’이 주된 역할이라 생각하고 합류했죠. 벌써 7년 반째네요.
- 연세대 창업지원단은 우리나라의 ‘벤처 붐’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막 벤처 붐이 일던 1998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BI가 창업지원단의 시초입니다. 창업 1세대죠. 2011년 3월에는 중기청의 창업선도대학에 추가로 선정돼 창업지원단으로 이름을 격상시켰죠. 프로그램도 한층 다양화 했고요.
- 햇수로 20년째네요. 그동안 성과는 어땠나요.
설립 후 현재까지 총 123개 기업이 졸업했고 이중 6곳이 IPO에 성공했습니다.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개발업체 ‘디지털프로그’가 대표적인 성공사례입니다. CEO가 연세대 경제학과 출신인데 지난해 53억 매출을 달성했고 고용인원은 50명에 달합니다. 내년쯤 IPO도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학생기업도 많습니다. 올해 입주기업 78개 중 학생벤처가 총 15개입니다.
※ 연세대 창업지원단이 배출한 IPO 기업
1) 디엔에이링크(유전체기반 생명공학)
2) 뉴네스텍(무선 멀티미디어솔루션 개발)
3) 케미존(유기합성 및 정밀화학)
4) 옵토매직(광섬유 제조 및 의약품·의약원료 개발)
5) 아리사이언스(신약개발 및 유기합성)
6) 네오팜(스테로이드 대체 의약품 및 화장품 개발)
- 학생기업도 임대료가 필요한가요.
아닙니다. 학생기업에게는 지원단 내 별도의 공간을 무료로 임대합니다. 팀원 중 한 명이 연세대생이기만 하면 되죠. 누구든 입주 가능합니다.
- 연세대는 비교적 취업이 잘돼 창업 선호도가 높지 않을 듯 한데요.
연세대생에게는 창업DNA가 있습니다. 졸업생들 사이에서 ‘연세대생은 독립적이다’라는 말이 종종 나오는데요, 이런 자립심은 창업분야에서 특히 빛을 발합니다. 이곳 부임 직후, 창업 과목을 개설했는데 순식간에 마감됐어요. 오죽하면 ‘5초 강좌’라는 별명도 붙었죠. 재작년, 대학원에도 열어봤는데 역시 인기 폭발이었습니다. 수강 인원을 확대해 달라고 해 작년에 두 배로 늘렸는데 또 금방 찼고요.
- 대학원은 전공 외의 과목을 수강하는 게 어렵지 않나요.
많이 보수적이죠. 그런 면에서 학생이나 지도교수 모두 창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한 듯합니다. 수강 승인을 요청하는 학생이나 승인하는 지도교수가 많아진다는 게 상당히 고무적이죠. 교원 창업도 눈에 띄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2014년, 연세대 교원 창업 기업이 0개였는데 이듬해 2개, 2016년엔 15개로 늘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중 7곳이 의대 교원 창업 기업이었다는 거죠. 최근 바이오산업이 뜨는 데다 의료 업계가 어려워지다 보니 의대 교원의 가치관도 바뀐 것 같습니다.
-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성공한 선배들이 많으니까요. 강사로 동문 선배들이 직접 오거든요. 예전 같으면 연대생이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었지만 창업 선도대학 선정 이후 학교가 관련 동아리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면서 매년 55개의 새로운 창업 동아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3년째인 지금, 150여개 동아리에서 1000명이 활동 중이죠.
- 창업 지원 프로그램 몇 가지만 소개해주세요.
연세대에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우선 ‘창업경진대회’를 통해 동아리별로 1등에게 1000만원까지 지원합니다. ‘창업 마일리지 제도’도 있어요. 창업 과목 수강, 대회 수상 등을 통해 점수를 부여하고 매년 ‘다이아몬드’ 등급자에게 해외 출장비를 지원합니다. 항공권부터 체재비까지 전부요. 뮌헨 오토쇼나 미국 실리콘밸리 모두 참석 가능하죠. 단, 시간은 조금 걸립니다. 평균 4년 정도가 필요하죠. ‘글로벌 엔턴십’도 있습니다. 교내 외국인 학생을 스타트업 인턴으로 고용하면 월급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외국학생은 한국인들과 융화될 수 있고 기업은 해외진출을 미리 준비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죠.
- 운영비는 어떻게 마련하나요.
중소기업청 지원금이 가장 큽니다. 이 외에 서울시나 SK청년창업비상, 서울산업진흥원(SBA)도 도움을 주고 있죠. 창업지원단은 독립 기업이기 때문에 직접 투자도 가능합니다. 자본금 5000만원 기업을 기준으로 4%의 주식을 받고 수익금은 재투자하는 선순환 모델을 지향합니다.
- 작년 교내에서 ‘제1회 스타트업 채용박람회’를 열었습니다.
매년 대기업 공채 시즌에 연세대 공학원에서 대규모 기업 채용박람회가 열립니다. 그걸 보면서 스타트업도 비슷한 행사를 열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지난해 44개 기업이 참가했고 방명록 기준 650명의 학생이 다녀갔습니다. 특히 옐로모바일과 에이프릴스킨 부스가 인기가 많았어요. 에이프릴스킨은 대표가 연세대 선배이기도 하죠. 올해는 10명 고용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목표 고용 인원이 생각보다는 적은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은 채용 직무가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개발자죠. 그래서 2015년에 교내에 ‘창업열정대회’를 만들었습니다. 기업과 학생 창업가의 일대일 매칭 서비스인데요, 기업이 계획 중인 창업 아이템을 제시하면 학생 참가자가 이중 하나를 골라 직접 개발을 해 다시 기업에 제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기업은 아이템 구현이 가능하고 학생은 지원금과 실제 활용기회까지 얻을 수 있는 거죠.
- 첫 스타트업 채용박람회였는데 소감은 어땠나요.
보람도 있지만 아쉬움도 남습니다. 구직활동에 기업의 규모나 인지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데 스타트업도 예외가 아니더라고요.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 부스는 텅텅 비어있었죠. 두 번째 박람회를 앞두고는 아예 공대생으로 참여 인원을 제한하는 등의 실질적인 취업 연계 방안을 고심 중입니다.
- 대학 창업 담당자 모임도 있나요. 요즘 주요 이슈는 무엇인가요.
서울지역창업센터모임이나 전국단위 모임도 있어요. 아무래도 성과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죠.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힘드니까요. 7년 반 정도 겪어보니 IPO까지 최소 7년은 필요하더라고요. 다행히 학교의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장기적 투자에도 적극적이죠. 연세대 역시 올 5월, 개교 기념일에 맞춰 중앙도서관에 창업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끄러운 도서관’을 개소할 계획입니다. 추후 신촌로 일대를 창업로드로 만드는 게 제 꿈이고요.
- 창업이나 스타트업 취업은 안정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창업 시장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요.
예전에는 ‘프라다’라는 1등 제품만 살아남았다면 이제 아닙니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잠재시장은 아시아입니다. 이들 나라에는 꼭 1등 제품이 아니어도, 학생이 만든 제품이라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아시아인을 우리나라 벤처가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아웃바운드가 아닌 인바운드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 우리나라의 창업 지원제도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듯합니다.
경연대회가 너무 많습니다. 정부 부처는 물론 학교별로도 대회가 열리니 상금으로 먹고사는 학생도 있죠. 대회 후의 후속 지원책도 필요하고요. 최근 많은 대기업이 사내벤처를 밖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노키아가 고전하는 사이 직원들이 앵그리버드를 탄생시켰듯 우리나라의 인재들도 더 이상 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뭔가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 마지막으로, ‘창업DNA’를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아웃라이어(Outliers)입니다.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다르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죠. 생각이 틀려도 소신 있게 밀고나가는 사람, 그동안 만난 CEO들의 공통점이었습니다.
이도희 기자 tuxi0123@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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