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재발견


맥주를 마시고 물을 아끼자는 뜻의 DBSW(Drink Beer Save Water)는 난센스적 발상에서 시작됐다. 단순히 멋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옷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DBSW의 디자인은 심플하면서 위트가 넘친다. 디자인에 녹아든 위트를 찾는 것은 DBSW를 입는 또 다른 재미다.


이야기가 있는  옷을 만드는  DBSW 박진 디자이너


박진 디자이너가 이끄는 DBSW는 해외에서 먼저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2011년 베를린을 시작으로 도쿄, 밀라노, 런던, 상하이, 뉴욕 등 세계 무대에서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국내에 공식 론칭한 것은 2016 S/S 시즌부터. 이번 컬렉션에서는 MATCH(성냥)라는 콘셉트를 위트 있게 풀어냈다. 성냥개비 모양의 스탬프를 찍어 만든 룩북은 소박하면서 개성이 넘친다.


DBSW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처음엔 음악을 하고 사진을 찍었어요. 2000년대 초반, 우연히 쌈지라는 회사에 입사해 이후 한섬, 코오롱을 거치면서 10년간 브랜드 마케팅 업무를 했어요. 그런데 제가 만든 옷이 아니어서 홍보하고 판매하는 데 힘이 안 실리더라고요. ‘내 브랜드를 하면 더 잘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어요. 2009년 처음 브랜드를 론칭하고 2011년부터는 해외 쇼에 나갔어요. 당시에는 패션 무드가 굉장히 심각했어요. 스트리트 무드도 없었고요. 저는 재미있는 걸 하고 싶었어요.


브랜드 콘셉트와 철학을 소개한다면?

대부분의 브랜드는 예쁜 옷을 만들지만,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것이 콘셉트예요. 우리 옷을 입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는 거죠. DBSW는 소통을 위한 옷이에요.


브랜드 이름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체코의 속담이에요. 우리나라 말로는 ‘꿩 먹고 알 먹고’ 정도의 의미죠. 원래 체코가 맥주로 유명하잖아요. 그걸 영어로 만들었어요. 맥주도 마시고 물도 아끼고. 난센스죠.


이야기가 있는  옷을 만드는  DBSW 박진 디자이너


이번 시즌 테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이번 컬렉션의 테마는 성냥이에요. 성냥으로 발생되는 재미있는 상황을 룩에 녹여냈죠. 지퍼 사이에서 성냥이 부러진 모습이나, 성냥불에 신발이 타는 듯한 모습 등 다양한 디테일이 숨어 있어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다양한 상황을 성냥이라는 콘셉트로 풀어냈어요. 아조(AJO)라는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아이템에는 로고 대신 구글 맵을 넣었어요. 우리 사무실에서 아조 사무실로 가는 길을 구글 맵을 이용해 자전거 도로, 자동차 도로, 도보로 갔을 때의 방법을 표시한 거죠.


디자인이 모두 독특해요. 디자인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일상에서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색다르게 풀어내는 걸 좋아해요. 이번 컬렉션처럼 성냥은 익숙한 소재잖아요. 성냥으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표현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특징이니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요.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할 만한 일상적인 것을 계속 스크랩하죠.


대표적 작업이나 인상 깊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가장 인상 깊은 건 다프트 펑크(Daft Punk)라는 뮤지션과 함께한 작업이에요. 우리 옷을 첫 시즌부터 구매한 고객이기도 하고요. 다프트 펑크가 유럽 뮤지션으로는 유일하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수상의 기쁨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스태프, 팬들과 나누고 싶다며 우리에게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했어요. 스페셜 패키지 1000개를 만드는 작업이었죠. 재미있었어요. 최근에는 현대차와 컬래버레이션해 안전벨트를 이용한 유니폼을 만들었어요. 자동차를 타고 내릴 때 가장 먼저 안전벨트를 매거나 푸니 셔츠에 안전벨트처럼 착용할 수 있는 디테일을 접목했죠.


그래픽이나 타이포그래피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아요.

요란하지 않게 넣으려고 노력해요. 간단히 얘기하면, 심플한 옷에 포인트가 하나 정도 있는 옷을 만드는 거죠. 디자인을 할 때 처음엔 많이 넣었다가 빼는 작업을 해요. 옷에 딱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게 다른 브랜드와의 차이점이에요.


이야기가 있는  옷을 만드는  DBSW 박진 디자이너


디자인을 할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누가 입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옷이어야 해요. 나이가 많든 적든, 여자든 남자든 누가 입어도 부담스럽지 않고 우리의 메시지가 딱 전해지는 옷. 요즘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들을 보면 목이 너무 파였거나, 너무 크거나, 반대로 너무 작거나, 보기에는 예쁜데 막상 입으면 이상한 옷이 많아요. 일반인은 소화하기 어려운 옷이죠. 우린 그런 걸 지양해요.


국내보다 해외 활동을 먼저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10년간 세일즈를 해보니 국내시장은 백화점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더라고요. 당시 디자이너가 독립해서 백화점에 들어가긴 굉장히 힘들었어요. 역으로 해외에서 이름이 알려지면 백화점에서 먼저 연락이 와요. 처음부터 해외로 나갈 생각을 하고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해외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많았죠. 당시 국내에서 해외시장으로 나가는 친구들이 없었어요. 물어볼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간 거죠. 그래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베를린에 갔는데, 통관하는 과정에서 샘플을 전부 빼앗겨 첫날 전시를 망친 적도 있어요. 사정사정해서 겨우 샘플을 받아들고 둘째 날부터 전시를 했는데, 디자인이 재미있어서인지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앞으로 계획이 궁금해요.

지금은 옷만 디자인하지만 궁극적으로 라이프스타일로 가고 싶어요. 생활용품이나 가구 등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녹여낼 수 있는 복합적인 것들이요. 컵이나 의자처럼 심플한 디자인에 편리함과 위트가 섞여 있으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PROFILE

박진

2000~2009년 쌈지·한섬·코오롱

2009년 8월 DBSW 설립

2011년 7월 DBSW 론칭(베를린)



이진이 기자 zinysoul@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