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당신이 국민화가 이중섭에 대해 몰랐던 네 가지


탄생 100주년, 당신이 국민화가 이중섭에 대해 몰랐던 네 가지



화가 이중섭은 태어난 지 100년밖에 안 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이중섭은 <흰 소>와 <황소> 등으로 우리들에게 익숙하다. 교과서에도 그의 그림이 자주 등장하는 만큼, 오래 전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탄생 100주년, 당신이 국민화가 이중섭에 대해 몰랐던 네 가지

이중섭, <흰 소>

하지만 올해가 그의 탄생 100주년이자 사망 60주기일 만큼, 비교적 최근 사람이다. 그는 1916년 4월 10일에 태어나 1956년 9월 6일에 생을 마감했다.

만약 이중섭의 말년에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서 예술계의 원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그의 아내인 이남덕 여사(야마모토 마사코)는 1921년생으로 지금 95세의 나이로 일본에 거주중이다.

화가 이중섭은 가난하지 않았다

‘화가 이중섭’하면 떠오르는 것은 가난과 빈궁으로 인해 비참한 말년을 보낸 화가라는 것이다. 그는 음주와 영양실조로 인해 앓던 간염이 악화되어 간경화로 인해 사망했다. 죽은 뒤 그의 시신은 서울적십자 병원 영안실에 사흘간 무연고자로 방치됐다.

이런 비극적 최후에 보태, 그림을 그릴 데가 없어 담배를 싼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가 결합하여 이중섭에겐 ‘가난한 천재 화가’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가난으로 고통받은 것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이후의 일이며, 그전까지는 이중섭은 원산 일대의 지주인 부잣집 아들이었다. 한국전쟁 동안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 막노동을 했지만, 그는 이미 유명한 화가라 그의 작품은 전쟁 중에도 꽤나 비싼 값이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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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박지에 그린 작품. <물고기와 아이들>


실제로, 이중섭이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은박지를 통한 독특한 표현 방식을 추구한 것이다. 50년대 당시만 해도 ‘담배’ 자체도 상당한 가격의 기호품으로 가난한 사람은 손에 쥐기도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작품에 재료값을 아끼지 않는 그의 완벽주의와 더불어,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베풀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그의 성품으로 인해 그가 말년에 가난으로 큰 고생을 했고, 그로 인해 단명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화가 이중섭은 고흐에 비견되는 ‘편지의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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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화가는 글보다는 그림 그 자체로 대중과 소통한다. 피카소나 앤디 워홀처럼 사람들의 관심 받기를 좋아하는 엔터테이너 기질의 화가들도 있지만, 그들도 그들의 내면에 은밀한 심리와 뒷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상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동서양을 통틀어 오로지 두 화가만이 그들의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그들은 바로 ‘빈센트 반 고흐’와 ‘이중섭’이다. 한 사람은 자신에게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동생에게, 한 사람은 언제나 그립고 보고픈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로 그들의 내밀한 감정을 드러낸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주는 동생에게 어떤 식으로 돈을 쓰고, 작품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 보고서 형식으로 편지를 보냈다면, 이중섭은 일본에 두고 온 아내와 두 아들을 간절히 보고 싶은 마음의 절절함이 느껴진다. 이런 인간 이중섭의 모습은 화가 이중섭을 더욱 입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배경이 된다.


화가 이중섭은 원조 사랑꾼이다


이중섭이 편지의 화가가 되었던 배경에는 그의 아내 이남덕 여사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다. 1945년 결혼식을 올린 이후, 1952년 일본으로 두 아들과 돌아온 뒤 그녀는 다시는 남편을 보지 못했다. 7년의 결혼생활로 반백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온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도 훤칠하고 훈훈했던 이중섭의 외모와 엽서 한 줄 한 줄 사랑을 듬뿍 담아보낸 것에 비춰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는 그녀의 발가락이 아스파라거스와 닮았다며 ‘아스파라거스군’이라고 아내에게 애칭을 붙여줬다.

그는 엽서에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모든 것을 바쳐 하나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어요. 예술은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라오”라며 아내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담았다. 이중섭은 오늘날 남성들의 귀감이 되는 진정한 사랑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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