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는 교회에서, 화장실 사용도 15분 대기

노량진 ‘공시족’으로 산다는 것


지하철에서 내리자 비릿한 냄새가 코에 와 닿았다. 이른 새벽 수산시장에서 오갔을 생선들을 떠올리며 사람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선로를 가운데 두고 왼편으로는 여의도 빌딩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백팩을 메고 노트 필기를 열심히 보고 있는 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오른쪽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한민국 공시생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다는 그곳, 노량진 고시촌으로.


아침 식사는 교회에서, 화장실 사용도 15분 대기… 노량진 ‘공시족’으로 산다는 것

△ 1호선 노량진역


취준생 절반은 공시족, 2~3년 도전하는 수험생 많아


한국고용정보원의 ‘청년층 취업준비자 현황과 특성’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1만 명 수준을 유지했던 청년층 취업준비자가 지난해 45만 2000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20~24세의 47.9%, 25~29세의 53.9%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다. 취준생의 절반은 공시족이라는 것이다.


20대 공시족이 가장 많이 준비하는 시험은 9급 공무원 시험이다. 노량진에 있는 한 고시학원 관계자는 “선발 인원이 가장 많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9급 일반행정직에 도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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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 강의실에서 자습 중인 학생들


최근에는 20대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3~40대, 심지어 50대까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학원 관계자는 “나이 제한이 풀리며 연령대에 상관없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고등학생도 학원을 찾아오고, 직장인들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에서는 경쟁률이 100대 1 정도라고 보도하지만, 실제로 결시율이나 과락자를 고려하면 실제 경쟁률은 30~40대 1 정도”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고시학원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9급 공무원 합격을 위해서는 1년 이상 준비를 해야 하며, 2년 공부한 학생들의 합격률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굉장히 근소한 점수차로 불합격한다”면서 “80점이 합격선이라면 79점을 받아 탈락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때문에 1년만 공부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2년, 3년 계속 매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새벽 6시, 앞자리 사수를 위해 움직인다


노량진의 하루는 조금 빨리 시작된다. 첫 수업은 보통 7시 30분에 시작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오전 6시부터 학원 강의실에 도착한다. 출석부 혹은 좌석표에 체크를 하고 앞자리를 맡기 위해서다. 인기 있는 수업의 경우, 1천 명 이상이 동시 수강을 하기 때문에 앞자리 사수를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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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서기는 기본!


수강생이 가장 많다는 A학원을 찾았다. 복도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는 자습 중인 학생들 10여명이 모여 있었다. 강의실에서는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살짝 들여다보니 수백 명의 학생들이 빼곡히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자리가 부족해 강의실 뒤에 서서 수업을 듣는 학생도 상당수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 여학생들이 복도에 길게 줄을 섰다. ‘무슨 줄인가’싶어 따라가 보니 다름 아닌 화장실 사용 줄. 한 여학생은 “수업이 4시간 연속 진행되는데 쉬는 시간이 2번 정도라 그 잠깐 사이에 화장실을 이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빨리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라도(강의실 문이 앞쪽에 있다) 앞자리 사수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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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한 고시학원의 안내판. 중고거래 게시판에는 안보는 책을 사고파는 글이 많이 올라와있다.

(우)자리예약표.


노량진에서는 5000원이면 식사+커피까지 가능해


노량진을 한 바퀴 돌아보면 서울답지 않은 물가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웬만한 식사 메뉴가 5000원을 넘는 것이 거의 없다. 아메리카노는 기본 1000원. 5000원짜리 한 장이면 3000원대 식사를 한 후 시원한 커피 한잔까지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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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식사류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우)많은 식당에 혼밥을 위한 일자형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한 자영업자는 “노량진은 식대가 굉장히 저렴하다.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공부하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단 식대 외 물가는 비싼 편 같다. 얼마 전 렌즈세척액을 구입했는데, 지금 사는 동네보다 2000원 비쌌다”고 말했다.


노량진에 위치한 한 교회는 공시족을 위해 무료 아침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오전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매일 다른 메뉴를 무료로 제공하는데, 식사를 위해 오전 6시부터 줄을 서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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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도 한산한 컵밥 거리


노량진 명물로 손꼽히던 ‘컵밥’의 인기는 사그라졌다. 컵밥은 밥과 반찬을 일회용 그릇 하나에 담아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것으로, 가격이 3000원대로 저렴해 공시족에게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였다.


지난해까지는 노량진역 인근에서 포장마차 형태로 판매하고 있었으나, 통행에 불편함을 준다는 이유로 2015년 10월 철거돼, 역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으로 이전했다. 학원가에서 멀어진 탓인지, 학생들의 발길은 뚝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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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길거리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다보니, 건물 1층 곳곳에는 '식사 금지' 경고문이 붙어있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컵밥 거리를 찾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점심시간에도 한산했고, 아예 문을 열지 않은 노점들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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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족에게 인기있는 고시식당


컵밥을 대신해 학생들은 ‘고시식당’을 주로 찾는다. 고시식당은 한식 뷔페 식당. 매일매일 메뉴가 달라지는데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한끼 식사는 4500원인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10장 단위로 식권을 구입해 이용한다. 식권 10장의 가격이 3만6000~3만9000원이니 훨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공시생 B씨는 “3군데 고시식당의 식권을 10장씩 구입한 뒤 번갈아가면서 이용한다”고 말했다.


노량진 인근 식당은 ‘혼밥’에 최적화된 곳이 많았다. 대부분의 좌석이 일자형으로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고, 자판기 형태로 주문할 수 있는 음식점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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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 패스트푸드점 화장실 내 '볼펜을 빠뜨리면 직원을 부르라는 안내판. 학생들은 화장실에서도 열공?


3평 남짓 고시원도 월세 50만원, 공시생들의 생활비 부담


학생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낸다. 정규 수업이 끝난 후에도 자습실이나 빈 강의실에서 남은 공부를 마무리한다. 집은 정말 ‘잠만 자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3평 남짓한 원룸의 월세는 50만원이 훌쩍 넘는다. 고시원 역시 개인 화장실을 쓸 수 있는 곳을 구하려면 50만원은 기본이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지하방은 40만원 후반에 구할 수 있다”라며 “공용 샤워실, 화장실을 이용하는 고시원도 월세 3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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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시원도 원룸도 아닌 '공부방'. 하숙처럼 방 하나를 학생들에게 임대하는 것이다.


학원비와 교재비 50만원에 월세 50만원, 식비 20만원을 더해보면, 공시족이 노량진에서 한달을 지내는데 드는 비용은 최소 100만원이 넘는 셈이다. 이 생활을 1년 이상 지속해야하기 때문에 공시생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다.


공시생 B씨는 “생활비에 대한 부담이 있지만, 집에서 통학을 하는 시간이 아까워 자취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노량진이 고시촌이라 불리지만, 밤에 나와 보면 술 마시고 노는 사람도 많다. 유혹이 있지만 흔들리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