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개 멋지게 그려줄까? 반려동물 초상화 작가 서재성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 남친, 여친 없이는 살아도 반려동물 없이는 살 수 없는 반려인이라면 여기를 주목하시라. 귀염둥이 반려동물의 인생작을 만들어주는 ‘반려동물 초상화 작가’가 등장했다. 반려동물 초상화계의 반 고흐, 클림트! 그의 손을 거치면 모두가 ‘미견(美犬)’, ‘미묘(美猫)’가 된다.


[꼴Q열전] 개 멋지게 그려줄까? 반려동물 초상화 작가 서재성

유난히 동물을 사랑하는 서재성(29) 씨. 어릴 적 시골 할아버지 댁에 내려가면 동네 소들이 여물 먹는 모습을 하루 종일 지켜보곤 했다. 길에서 울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해 길냥이들의 형, 오빠가 되길 자처했고, 중학교 때 집으로 오게 된 반려견 ‘머털이’와는 14년째 진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동물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좋더라고요. 특히 펭귄을 좋아했어요. 대학 때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과제를 할 때마다 늘 펭귄을 그려 제출했죠. 동글동글한 몸의 모양이 너무 사랑스럽기도 하고, 새인데도 날지 못한다는 부분에 마음이 가기도 하더라고요.”


펭귄에서 코뿔소까지, 동물 그림 그리기는 즐거워

대학시절까지 펭귄에 푹 빠져있던 그는 군 입대를 하면서부터 다른 동물들에게도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무료한 군대에서의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동물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물 자료는 온라인 등에서 구하기 쉬웠고, 특히 복슬복슬한 동물의 털을 따라 그리는 것만큼 시간이 잘 가는 일이 없었다. 사람들이 머리를 비우기 위해 컬러링북을 색칠하는 것처럼 그는 공작의 깃털 하나하나, 코뿔소의 세밀한 잔털을 그리며 지루한 시간을 날려버렸다.


그렇게 그린 그림은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휴가를 나올 때마다 개인 SNS에 업로드했다. 심심풀이로 올린 그림이었는데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의 그림을 보고 ‘함께 일을 하자’며 연락을 해오는 업체들도 있었다.


“군대에서 그린 그림이 입소문나면서 전역 후에는 외주 일을 맡게 됐어요. 동물 그림을 에코백이나 휴대폰 케이스에 넣는 것이었죠. 자연스럽게 돈을 벌게 됐고, 굳이 취업을 하지 않더라도 프리랜서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꼴Q열전] 개 멋지게 그려줄까? 반려동물 초상화 작가 서재성

△ 서재성 작가의 반려동물 초상화


전역 후에는 본격적으로 동물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에도 나섰다. 더 이상 남의 사진이나 영상을 따라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동물원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동물의 사진을 마음껏 찍었다.


원하는 포즈나 표정이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도 많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렇게 담아온 동물 사진을 추려내 다시 그림으로 담는 작업을 반복했다.


동물원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그의 눈에 동물만 보이면 모두 카메라로 담았다. 길가에 앉은 새부터 길냥이, 유기견 등 다양한 동물이 그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우리 강아지도 좀 그려주겠니?" 정신차려보니 ‘반려동물 초상화 작가’

지인 중에는 ‘우리집 반려견도 그려달라’며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친구, 친척들의 반려동물 그림을 하나 둘 그려주다 보니 어느새 그에게는 ‘반려동물 초상화 작가’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들도 반려견 그림을 의뢰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려준 작품이 벌써 80점 이상이다. 작품 가격은 6만원부터 20만원까지로 사이즈에 따라 다르다.


“반려동물마다 ‘인생작’이라 부를 수 있는 사진들이 하나쯤은 있어요. 고객들은 그런 사진을 몇 장 보내주시죠. 그리고 같이 사진에 대해 얘기해요. 사진을 찍을 당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순간에 포착된 사진인가 등이요. 그렇게 얘기를 나누다보면 느낌이 오는 사진이 있거든요. 그걸 골라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죠. 사진 속에 있는 지저분한 배경이나 물건은 지워버리고 반려동물의 모습만 초상화로 남겨요.”


사진이 아닌 실물을 그려보려 동물 캐리커처에도 도전했지만 결과는 참패. 캐리커처를 그리기 위해서는 동물이 가만히 포즈를 취해야하는데, 1초도 가만히 있지 않는 탓에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후로 그는 실물을 보고 그리겠다는 마음은 살포시 접고, 사진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에만 열중하기로 했다.


[꼴Q열전] 개 멋지게 그려줄까? 반려동물 초상화 작가 서재성

△ 서재성 작가의 반려동물 초상화


고객에게 그의 그림이 인기 있는 이유는 반려인의 마음을 100%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초상화 의뢰인들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반려동물의 가장 예쁜 포인트를 잘 찾아내고, 신경 쓰이는 부분은 더욱 세심하게 표현한다.


“반려견이 나이가 들면 녹내장, 백내장 등이 생겨 총기 있고 맑은 눈빛을 잃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것에 마음 아파할 고객들을 생각해 일부러 눈을 가장 신경 써 작업하고 있죠. 또한 얼핏 봐서는 견종끼리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반려인들은 자신의 반려동물만의 특징을 알고 있어요. 코 옆의 점이나 눈 밑의 얼룩 등 작은 특징이라도 미리 확인해 그런 부분을 더욱 신경 써 그립니다.”


‘털’에 빠진 서 작가, “사람 그림은 재미없어”

항상 반려동물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니 남다른 눈썰미도 생겼다. 강아지를 보면 털의 윤기나 두께로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것. 그는 “강아지와 산책하는 견주를 보면 꼭 말을 걸게 되는데, 그때마다 ‘완전 아기네요’, ‘3살 정도 됐죠?’ 식으로 말하면 굉장히 좋아하고 반갑게 맞아준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초상화 대상은 대부분이 강아지, 고양이. 하지만 가끔 생각지 못한 동물의 초상화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는 “고슴도치를 의뢰 받았을 때는 좀 당황스러웠다”라며 “새로운 동물이라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사진을 받아보니 가시가 너무 많았다”며 한숨을 지었다.


서 씨가 꼭 한 번 그려보고 싶은 동물 초상화는 다름 아닌 ‘고래상어’다.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은 없겠지만 일본 오키나와의 츄라우미 수족관에 거대한 고래상어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직접 보고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고래상어는 정말 신비의 동물 같다”며 “실제로 마주보면서 영감을 얻고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꼴Q열전] 개 멋지게 그려줄까? 반려동물 초상화 작가 서재성


간혹 동물이 아닌 인물 초상화 의뢰가 들어올 때도 있다. 하지만 서 씨는 인물을 그리는 것에는 큰 재미를 못 느끼는 편이다.


“저는 동물의 털을 그리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특히 푸들 같은 경우는 꼬불거리는 털들이 정말 매력적이죠. 사람의 파마 머리와는 느낌이 다르죠. 인물은 동무로가 골격부터 다르고, 털이 온 몸을 덮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웃음) 잔털이나 머리털이 있긴 해도 동물과는 다르죠.”


반려견 초상화 덕분에 취업 성공, 뿌뿌야 고마워

초상화 작업은 많으면 한 달에 수십건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없을 때는 한 달 0건을 기록하기도 한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서씨는 ‘초상화 작업만으로도 부자가 될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어있었지만, 매달 달라지는 수입을 보며 진지하게 생계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올 초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를 채용하는 곳으로 지원했죠. 면접도 몇 번 봤지만 다 탈락했어요. 그렇게 방황하고 있던 중에 채용 사이트에서 지금 다니는 회사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된 거죠. 강아지 용품 디자이너를 뽑는 것이었는데, ‘강아지’라는 부분에 확 끌렸어요.”


[꼴Q열전] 개 멋지게 그려줄까? 반려동물 초상화 작가 서재성

△ 서재성 작가의 반려동물 머털이 초상화


의류나 소품 디자인 분야로는 작업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반려동물 초상화와 왠지 모를 연결고리가 있을 것 같아 그는 용기 내 지원했다.


“사무실에는 강아지, 고양이들이 함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면접을 보는 도중에 사무실의 ‘뿌뿌’라는 강아지가 제 무릎 위로 올라와 앉더니 잠을 자더라고요. 사장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는 “얘가 원래 낯선 사람만 보면 사납게 짖는데 신기하다”고 하셨죠.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 플러스 요인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결국 최종 합격해 지금 4개월 째 근무 중이죠.”


[꼴Q열전] 개 멋지게 그려줄까? 반려동물 초상화 작가 서재성

△ 서재성 작가의 반려동물 초상화


동물 애호가를 한 눈에 알아본 뿌뿌 덕분에(?) 취업에 성공한 그는 현재 애견용품 디자인 브랜드 ‘몽슈슈’에서 근무하며 초상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일하면서 힘들다가도 동물들을 보면 다시 힘이 나거든요. 앞으로 제 그림과 현재 배우고 있는 일을 어떻게 융합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보려고요. 초상화 의뢰는 계속 받고 있으니 언제든 연락 주세요!”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