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지’ 알고 싶다, “내가 블로거지라고요?”


‘블로거지’.

블로거와 거지의 합성어입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받고 홍보성 글을 올리는 블로거를 비하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은 왜 이런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도 꿋꿋이 블로그 활동을 이어가고 있을까요.

취재팀은 블로거지와 동행하며,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 이 글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인터뷰입니다.

-블로그 체험으로 점심 먹고, 머리 하고, 술 마시고…


기자 : 안녕하세요. 블로거지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블로거지 : 반갑습니다, 독자 여러분. 저는 2년째 블로그 체험단 활동을 하고 있어요. 맛집을 찾아가 공짜로 음식을 먹고 그곳을 블로그에 소개하는 일을 하는 거죠.


기자 : 따로 돈을 받는 것은 아니고요?


블로거지 : 아직 그 정도의 레벨이 되지는 않아요.(시무룩) 저는 아직 미천한 신분인걸요. 파워블로거들은 협찬도 많이 받고, 뒷돈도 많이 받는다던데 저는 그런 것은 없어요. 그냥 식사를 대접받는 선으로 만족하죠.


기자 : 오늘은 저도 블로거지 체험을 해보려고 해요. 우리가 갈 곳은 어디인가요?


블로거지 : 청담동에 있는 복요리집입니다. 어제 술을 마셨더니 해장이 좀 필요하네요. 식사 후에는 미용실에 가서 펌을 하기로 되어있고, 저녁에는 소갈비살을 먹어야 해요. 물론 다 블로그 체험이라 공짜죠.


블로거지님과 청담동에 있는 A음식점에 도착했습니다. 밖에서부터 요란스럽게 사진을 찍는 것을 본 사장님이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블로거시죠?”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희를 안내하려던 찰나, 손님들이 들어오자 사장님은 저희를 버리고 그 분들의 안내를 하더군요. 블로거지님과 저는 매장 입구에 덩그러니 남겨져 기다려야했죠. 곧 돌아온 사장님은 저희를 가게 내 구석진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6명이 앉는 다다미방에 둘이 앉았습니다. 블로거지님은 내부 촬영에 몰두했습니다.


그 ‘거지’ 알고 싶다, “내가 블로거지라고요?”



기자 : 메뉴는 고르면 되나요?


블로거지 : 아뇨. 복칼국수 2인분이 무료 제공됩니다. 다른 메뉴는 보지도 마세요.


기자 : 이곳은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블로거지 : 블로그 체험단을 신청할 수 있는 중간업체 사이트가 있어요. ‘위드OOO’, ‘서울OO’ 같은 곳이죠.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음식점 리스트가 나와요. 식당 업주들이 20~30만원을 중간 업체에 주면 이곳에서는 보통 10명 정도의 블로그를 선발해 체험단으로 보내죠. 홈페이지에 나온 음식점 리스트를 보고 원하는 곳이 있으면 체험 신청을 하면 되요. 물론 음식점 외에 숙박이나 뷰티, 제품 체험 등도 있고요. 물론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에요.


기자 : 저도 며칠 전에 신청했는데 탈락했어요. 제 블로그에는 포스팅이 3개뿐이라 그런가봐요.


블로거지 : 기자님 진짜 뭘 모르시네. ‘블로그 최적화’라는 게 돼야 해요.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했을 때 노출이 될 정도의 수준을 말하는 거죠. 포스팅이 최소한 50개 이상은 돼야죠.


기자 : 분발해야겠어요. 체험단으로 뽑혔을 경우, 공짜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미리 정해져있는 건가요?

블로거지 : 식당에 따라 달라요. 제공되는 메뉴가 정해진 곳도 있고, ‘3만원’ 혹은 ‘5만원’ 이런 식으로 주문할 수 있는 금액이 정해진 곳도 있어요.


그 ‘거지’ 알고 싶다, “내가 블로거지라고요?”

△블로그 체험을 신청할 수 있는 홈페이지 캡처


-블로거도 사진 찍을 때는 창피하다


기자 : 블로거지님은 몇 번의 체험단 활동을 하셨어요?


블로거지 : 저는 보통 하루에 2번 정도 체험단 활동을 해요. 체험단 활동으로 점심, 저녁을 해결한다고 보면 되죠. 한 2년 정도 했는데 지금까지 300곳 정도 간 것 같아요. 금액으로 계산하면 1000만 원어치 정도 먹었겠네요.


기자 : 혼자 가시는 건 아니죠?


블로거지 : 그럼요. 식당에도 체험 인원이 제한돼있는데 보통 2인이에요. 고깃집의 경우는 4인까지도 되고요. 저는 주로 평일에 체험을 다니기 때문에 시간되는 친구와 함께 가요. 블로그 체험단 활동을 정말 요긴하게 사용하는 건 친구들과 약속이 있을 때예요. 저는 지금 수입이 없어서 친구들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거든요. 그렇다고 안 만날 수도 없잖아요. 그럴 때 ‘블로그 체험단’을 활용하는 거죠. 제가 밥을 산다고 하고 체험단 활동을 하기로 한 음식점에 데려가요. 친구가 밥을 샀다면 2차로는 블로그 체험단을 신청한 맥주집에 데려가는 거죠. 돈 안쓰고 친구도 맘껏 만날 수 있어요.


기자 : 친구들 반응은 어때요? 사실 전 지금 창피하거든요.


블로거지 : 반반이에요. 공짜로 먹는다고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고, “네가 그 말로만 듣던 블로거지였냐”라며 화를 내고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눴지만 음식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희보다 늦게 온 다른 손님들은 벌써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요. 음식점 사장님은 “오늘 손님이 많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30분 이상이 지난 후, 사장님은 “배고플 텐데 이거라도 먼저 먹고 있으라”며 음식을 내줬습니다. “사진 찍을 음식은 조금 있다가 주겠다”고 하더군요. 1만 5000원 가격의 복어탕이라는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의 뚝배기에는 복어는커녕 멸치 한 마리 없었습니다. 콩나물과 미나리만 수북했죠. 블로거지님 뚝배기에는 복어 두 마리가 있었고요. 원래는 그릇 당 복어 3마리가 들어가는 것이지만요.


기자 : 저는 복어가 없어요.(분노)


블로거지 : 제꺼 한 마리 드세요. 원래 칼국수가 제공된다고 했는데 바뀌었나봐요. 칼국수는 9500원인데 이 메뉴는 1만5000원이니 더 이득이네요. 하하.


기자 : 블로거지님은 체험단 활동을 하면서 부끄러운 순간이 없으셨나요?


블로거지 : 왜 없겠어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조금 창피하죠. 사실 여자분들은 음식점에서 사진을 많이 찍으니 자연스럽지만, 전 남자잖아요. ‘저 남자는 뭐지?’, ‘뭐하는 놈이야?’라고 생각하는 듯 이상하게 쳐다봐요.


기자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체험단하면서 기분 나쁜 순간도 많을 것 같아요.


블로거지 : 매장 사진을 찍고 있는데, 식사 중이던 손님이 초상권 운운하면서 엄청 화를 낸 적이 있어요. 당장 사진을 지우라고 언성을 높이더라고요. 가끔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보고 쪽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어요. 음식점 내부를 찍다보면 손님들 얼굴이 찍히는데 다 모자이크로 가리거든요. 그랬는데도 자기 사진 지워달라고 난리죠.


기자 : 음식점 사장들 반응은 어때요?


블로거지 : 그분들이 ‘우리 가게 홍보 좀 해주세요’ 하고 먼저 신청한 거잖아요. 그런데 방문하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요. ‘또 블로그가 왔네’하면서 싫은 티를 내요. 반면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친절하신 분들도 많죠.


nice digital camera.
nice digital camera.


-블로거지? 공짜 음식 아닌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해


식사를 마치고 30분 이상이 지나, 드디어 사진 촬영용 메뉴가 등장했습니다. 복어 3마리가 제대로 들어있는 복어탕과 복어 불고기가 나왔죠. 사장님은 “사진을 잘 찍어 달라”며 “먹고 싶으면 한 번 맛봐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자존심이 있어 먹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다 찍고 일어서려던 찰나, 이번에는 복어회 한 접시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습니다. 회를 특히 좋아하는 블로거지님은 눈을 반짝이며 “먹어도 되냐” 물었지만 사장님은 냉정하게 “안된다”고 했죠. 다른 테이블에 나갈 메뉴라며 얼른 사진만 찍으라고 했습니다.


기자 : 사장님, 블로거들이 다녀가면 손님이 좀 늘어나요?


사장님 : 별로 차이 없어요. 그냥 인터넷상에 우리 가게 DB를 늘린다는 생각으로 하는 거죠. 대신 ‘순위 마케팅’이라는 것은 효과가 있어요. ‘강남 맛집’이라고 검색을 했을 때 상위 1~10위권 내에 포스팅이 되는 거요. 그건 키워드 한 개당 300만~500만 원까지 금액이 올라가요.


기자 : 그렇군요. 블로거지님은 ‘블로거지’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블로거지 : “저 블로거예요. 음식 더 안줘요? 서비스 안줘요?” 이러면서 음식점에 가서 행패를 부리고, 생떼를 쓰는 그런 블로거지들 때문에 다른 선량한 블로거들이 욕을 먹는 상황이 정말 안타까워요. 그런 사람은 일부이고, 대부분은 착실하게 블로거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기자 : 음식점에서 생떼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요즘은 음식을 공짜로 먹고 포스팅을 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블로거지’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블로거지 : 공짜라뇨? 음식점까지 직접 와야 하고, 사진도 찍어야하고 글도 써야 해요. 저는 조금 노하우가 생겨 30분 정도면 포스팅을 완성하지만 대부분은 포스팅 한 개를 올리는데 2~3시간이 걸려요. 공짜로 음식을 얻어먹는 게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죠. 음식 제공은 일종의 인건비라고 생각해요. 거지라뇨!


기자 : 블로거들이 욕을 먹는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맛집이 아닌 곳을 맛집이라고 소개하는 것 때문이에요. 저도 여러 번 당했어요.


블로거지 : 블로거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홍보해달라고 음식을 제공해줬는데, 맛없다고 쓸 수는 없죠. 그렇게 되면 체험단을 선발하는 중간 업체에서 글을 수정해달라고 요청이 와요. 그리고 찍혀서(?) 더 이상 체험단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죠.


기자 : 블로거지님은 맛집을 찾을 때 블로그를 보시나요?


블로거지 : 안 봐요. 음식 사진 참고하는 수준으로는 괜찮겠네요. 맛 평가는 믿지 않아요. 특히 포스팅 하단에 ‘OOO에서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같은 문구가 있는 글은 보지도 않죠. 다 광고인걸요.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