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스 레터] 영업은 마케팅이 아니다


Editor's Letter

영업은 마케팅이 아니다


13년 전 취업준비생 시절, 캠퍼스 리크루팅을 나온 ○○타이어 부스를 찾았습니다. 캠퍼스 리크루팅에는 대개 그 학교를 졸업한 선배가 상담을 나오게 되지요. 영화판을 기웃거린 지 2년째, 서른 살을 불과 몇 달 앞둔 터라 취업이 절실했습니다. 그러나 준비된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비슷하겠지만 이런 경우 문과생이 지원할 만한 곳은 결국 영업이지요. 부스에서 이것저것 관심을 보이니 열 학번 높은 선배가 자기소개서를 써서 토요일 회사로 와 보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토요일 출근하던 때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후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습니다. 그 선배는 저를 잘 봤는지 추천을 한 번 해 보겠다고 했지만, 인사팀에서는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 자리에서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타이어 많이 팔려면 차들 많이 다니는 고속도로에서 가판을 세워서 판촉을 하면 되지 않나요?” 와우, 타이어 영업 10년 넘게 한 사람이 이 얘기를 듣고 “아니, 어떻게 그런 기가 막힌 생각을”이라고 했을까요? ‘니네가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했던 말은 타이어 영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 영업을 하는 사람의 고민은 무엇일까요? 영업이란 그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 구매까지 연결되도록 소개·설명·권유·설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타이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자동차를 운전하는 모든 사람?


여기서 소비재와 생산재의 구분이 필요합니다. 아무 운전자를 붙들고 우리 타이어를 사라고 한들 과연 씨알이 먹힐까요? 생산재인 타이어 영업인이 만나야 할 사람은 타이어 구매 결정권을 가진 카센터 사장님 또는 현대차 구매담당 등입니다. 전자를 도매영업, 후자를 법인영업이라고도 하지요. 보험이나 정수기 같은 소비재라면 소매영업도 있을 것입니다.


타이어를 많이 팔려면 자동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가격조건에 대한 완벽한 파악과 고객이 원하는 조건을 사내에서 관철시킬 영향력, 고객의 작은 니즈까지 파악하는 섬세함, 카센터 사장님의 면박에도 굴하지 않을 뻔뻔함, 하루 10km 이상 걸어 다닐 체력, 좁은 골목길도 능숙하게 주차할 수 있는 운전실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얘기의 핵심이 뭐냐구요? 취업이 어려운 문과생에게 아주 조금 영업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면접에서 엉뚱한 소리 하지 말라고요.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