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아가씨'를 말하다



“영화가 아닌 소설을 보고 나온 것 같다” 영화 <아가씨>가 끝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박찬욱 감독의 이 영화는 후견인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의 보호아래 살아가는 순진한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그녀를 속여 재산을 가로채려 하는 백작(하정우), 그를 돕는 조력자 하녀 숙희(김태리)의 속고 속이는 관계를 담았다.



칸 영화 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개봉 전부터 세간의 기대를 샀다. 드디어 베일이 벗겨진 영화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답게 인물들의 심리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연출부터 1930년대를 고스란히 재현한 미장센까지 완벽했다. 하지만 참신함과 파격은 현저히 줄었다.



[리뷰] 영화 &#39;아가씨&#39;를 말하다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관객과 영화평론계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한 박찬욱은 <복수는 나의 것>을 시작으로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를 잇는 ‘복수 3부작’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이후에는 할리우드로 넘어가 <스토커>를 연출하면서 연출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영화 <아가씨>에서도 그의 장점인 ‘압도하는 분위기의 미장센’과 ‘배우들의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을 제대로 살려냈다. 긴장감이 넘치는 서스펜스 속에서도 풍자적인 유머로 긴장을 이완시키는 능력 역시 능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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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핑거스미스>를 경쾌하고 발랄하게 뒤집었다는 것에서 박찬욱에게 감탄하면서도, 전작 <올드보이>의 파격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오랜 팬으로서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화의 재미 중 하나인 ‘해석의 미학’을 느낄 수 없다는 것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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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체구지만 ‘의문의 아가씨’를 뒤흔들고, 백작을 농락한다. 영화 <아가씨>로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선 배우 ‘김태리’는 숙희 그 자체였다. 왜 박찬욱 감독이 그녀에게 “나는 너로 정했다”고 확신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순수와 타락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그녀의 연기는 하정우·조진웅과 같은 대배우 속에서도 주눅들지 않았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영화에서 1장은 온전히 숙희의 것이다. 그녀의 시선으로, 그녀의 말로 서사가 전개된다. 신인으로서 부담감을 가질 수 있는 역할을 잘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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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하면 입 아픈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그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된 감독의 연출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 최고의 평점을 줄 수 없는 것은 ‘캐릭터’에 있다. 비밀을 지닌 아가씨 역의 김민희는 영화 ‘화차’ 속 차경선과 겹친다. 몽환적인 눈빛, 극단으로 치닫는 행동 등 다른 것이 있다면 시대와 상대배우 뿐이다. 하정우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암살’의 하와이안 피스톨과 다를 바 없다. 능글맞고, 경쾌하지만 무게감이 있다. 비교적 최근의 작품들과 겹치는 그들의 캐릭터가 영화를 보편적이고 미지근하게 만들었다.



[리뷰] 영화 &#39;아가씨&#39;를 말하다



<아가씨>는 파괴적인 연출과 파격적인 스토리를 과감히 삭제했다. 그 대신 매혹적인 아우라를 더했다. 실망감과 감탄이 조화롭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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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직접 다녀온 영화 <아가씨> 기자간담회 썰푼다.


1. 하정우 최고의 굴욕신, 김태리에게 중요한 부위를 잡히다!

극 중 백작 역을 맡은 하정우는 자신을 제대로 돕지 않는 하녀 김태리를 불러 경고한다. 경고하는 장면에서 김태리의 손을 자신의 중요한 부위에 갖다 대고 음담패설을 내뱉는다. 그 장면을 찍을 때의 심정을 물었다. “굴욕적이고 끔찍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정말 내 눈을 의심했다”며 웃었다. “의상팀에서는 아대를 준비해 태리씨에게 민망하지 않기 위해 착용했고 무사히 잘 끝냈다.”며 답변을 이었다. (아대가 없던 게 더 나았을지도? 므흣)



2. 협상불가 내걸은 정사장면, 두 여배우의 심정은?

영화 <아가씨>는 ‘한국영화 사상 최고 수위. 협상불가’의 캐스팅 조건을 내걸며 연일 화제에 올랐다. 언론시사회에서도 두 여배우의 정사장면은 당연 기자들의 관심사였다. 박찬욱 감독은 “두 배우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우선 중요했다. 일반적인 욕망의 분출이 아닌, 서로 대화하는 느낌, 교감하고 배려하는 정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민희는 “감독님이 원하는 콘티가 정확히 있었고, 이를 충실하게 표현했다”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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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찬욱 감독 영화치고 얌전하다?

기존의 <친절한 금자씨>, <박쥐>, <쓰리 몬스터> 등의 작품에서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인물과 장면들을 선보인 박찬욱은 영화 <아가씨>에도 등장하는 이 같은 장면에 대해 “내 영화 치고 이번 작품은 아주 얌전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한편에서는 되려 ‘실망했다’ ‘이거 뭐냐’ 이런 이야기도 오가는 게 재밌었다” 라 말했다. 실제로 영화 <아가씨>에서는 잔혹한 장면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극 엔딩부의 하정우와 조진웅 간의 대립장면에서 몇 장면이 나올 뿐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선택하기에 망설였던 관객이라면 이 영화로 첫 도전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4. 배우들의 이모저모

기자간담회가 시작되고 배우들이 입장했다. 그 중 당연히 눈에 띄는 것은 다름아닌 ‘조진웅’이었다. 코우즈키 역을 위해 18kg을 감량했다는 그는 모델같은 비율을 선보였다. 큰 키에 설레는 어깨넓이는 그의 수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실제로 아가씨 같은 얌전한 성격에 조곤조곤한 어투를 지닌 김민희는 이날 롱드레스를 선택하여 기품을 더했다. 처음 많은 기자 앞에 선듯한 김태리는 긴장한 모습으로 기자들의 귀여움을 사기도 했다.

하정우와 박찬욱 감독은 프로다웠다. 기자간단회 동안 여유롭게 기자들과 문답을 오갔고 중간중간 농담을 섞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지연주 인턴기자 sta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