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뉴욕 8화] homesick



2016년 2월 7일~ 2016년 2월 10일


오늘 입은 옷이 내 마음에 꼭 드는 날이면 왠지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고 싶어질 때가 있다.


[디어뉴욕 8화] homesick


보여주고픈 마음이 들릴 리도 없고 관심도 없을 불특정 다수를 위하여 애비뉴와스트릿 사이를

마구 휘젓고 만다. 아마도 내가 사랑한 건 네가 아니라,널 사랑한 나의 마음을 사랑한 것일지도.

My dear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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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자를까 말까는 여자들의 평생 숙명인 것 같다.

여기서는 머리제대로 자를 만한 곳이 없을뿐더러 믿을 수 없이 많은 돈이 든다고 했다.


여러 번 단발이 되는 이상한 꿈에 며칠 밤을 시달리고 나서, 마구잡이로 머리칼을 잡고는 종이를 자르는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내었다. 상한 부분을 잘라내야지 했을 뿐인데, 오른쪽을 자르면 왼쪽이 길고 왼쪽을자르면 또 오른쪽이 긴 것 같은 느낌에 자꾸 잘라 내다보니 머리가 많이 짧아져 버렸다. 머리칼이 길면길수록 머리 모양이 조금씩 이상하게 자리잡는 게, 아무래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일은 전문가에게맡기는 것이 맞나 보다.


아낄 곳에 아끼고쓸 곳에 써야 할 일이거늘. 이상한 데서 돈 아끼고 싶은 이상한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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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지내는 큰집의 장녀인 내게 명절은 여러모로 대사 중 하나인데, 여기서는 설날의 분위기를 딱히 느낄 틈이 없다.


카페에 가서 글을쓰고 있자니 그냥 여느 때와는 다름없는 주말이다. 이런 내 맘을 알아서인지 이번 설엔 세뱃돈을 사다리타기 한다고 아침부터 동생이 페이스톡을 걸어왔다. 3만 원부터 몇십만 원 상품권까지 사다리 탈 수 있는데너도 기회 준다며 숫자를 고르라던 아빠는 (보통 아빠들이 딸을 부르는)공주님, 사랑하는 우리 딸, 큰딸, 장녀 말고도 나를 칭하는 무수히 많을 단어들을 모두 던져버리고 망설임 없이 내가 고른 번호에 '미국 년'이라고 썼다. 원래예부터 아버지들이 애정표현으로 'OO 년'이라는 말을 썼다며믿지 못할 이상한 전통을 내세우는 과격한 우리 아버지. 거 너무 쾌쾌 묵은 거 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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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일을 그만두고 나서 아빠랑 함께 하는 일 중 손에 꼽게 좋은 건 함께 걷는 거였다. 모두가 잠에 들거나 들어야만 하는 시간, 청개구리처럼 집에서 튀어나와 단둘이 강가를 걷는 일이 참 좋았다. 다음날 일찍 학교를 가야 하는 동생과 동생 밥 챙겨주기 위해 역시 일찍 잠에 들어야 하는 엄마를 집에 두고서, 사장님과 백수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아빠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도 유전자가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그러셨고 아빠가 그렇고

혼자인 여기서도 내가 제일 많이 하는 일이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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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아빠한테 회를 사달라고 할 거다. 그리고는 백사장을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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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해 묻고 싶을 것이 참 많았을 지금의 내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 보내신 아빠는, 아빠만 바라보는 여동생들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오셨다. 그래서 특히나 아빠는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았을 거다.


너는겪지 않아도 좋을 것들에 대하여, 부러지지 않을 버팀목이 되는 일에 대하여 수도 없이 생각했을 아빠. 가르치고 나누고 싶었을 그 수많은 것들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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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그래서 장남 같은 장녀로 자랐는지도 모른다.

치마보단 바지를, 분홍보다는하늘빛을 좋아하는 여자애로.


사사로이 삐쳐대는 여자애들보다는 방금 내뱉은 말도 금세 잊고 마는 이성친구들을만나는 것이 더 편했다. 딸로 이 세상에 남아 못할 것은 없어야 한다는 마음에 그동안 나는 참 전투적인소녀였던 것 같다.


처음 교복을 입던 겨울엔 교복 치마와 함께 실은 잘 입지도 않을 교복바지를 샀고, 여자는 남편을 잘 만나야 한다는 통념에 대하여 얼굴을 과히 붉히고 싸워댔으며,전통 있는 여고 학생은 구두만 신고 다녀야만 한다는 교칙을 결국 바꾸고야 말았다. 길눈에밝다든지, 공간을 계산한다던지 하는 통계적으로 사내들이 좀 더 낫다고 하는 일들을 잘할 수 있는 스스로를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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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아파보아야지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에겐 가족의소중함이 그렇고, 슬픔은 감히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렇다.


나이를먹을수록 부모님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것.

여생을 나누고 싶은 친구 같은 자식으로성장하는 것.


올해부터는 그게 내 인생의 목표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될 거다.

물론 뉴욕에서 살아남는 일도!



글·사진 Chlo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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