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대한민국 솔로들의 마음에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던 ‘솔로대첩’을 기억하는지. 패기 넘치게 ‘니들 연애하게 해주겠다’며 솔로대첩을 기획했던 이가 바로 스물다섯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유태형(29) 씨다. 러브러브한 연애장이 될 줄 알았던 솔로대첩이었지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여성을 상대로 한 성추행 등의 범죄 등을 저지르겠다는 남성)들이 참여 의사를 밝히며 행사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고 유 씨는 멘붕에 빠졌다.


하지만 시련에 굴하지 않고 그는 지난해 화려하게 재기했다. ‘나를 사가라’며 ‘유태형 1년 근무권’을 경매에 붙인 ‘유태형 팝니다’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인재 경매에서 1억 연봉을 제시하는 회사도 마다하고 그는 ‘연봉 1천만 원, 월 1회’ 근무 조건을 내건 스타트업 ‘인큐’를 선택했다. 한 달에 하루만 출근하게 된 그는 남은 시간에 더 판타스틱한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배짱 한 번 두둑하게, 박근혜도 아베도 아닌 오바마를 만나러 가겠다고 한다.


[꼴Q열전] '두 유 노우 오바마?' 진짜 오바마 만나기 프로젝트


오바마 별로… 내 마음의 별★로


“페이스북을 하다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영상들을 보게 되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에게 편지를 한 통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는 엄청 멋있는 사람이잖아요. 저같이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또 그는 엄청 멋진 만큼 엄청 바쁠 거란 말이죠. 제 생각엔 그가 그 편지들을 다 읽을 시간이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제가 오바마 대통령이라면 편지를 읽다가 엄청 깊이 잠이 들어버리겠죠.

그래서 저는 아이디어를 하나 냈어요.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전해주고, 그 자리에서 읽을 수 있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그의 친구들을 소개받을 겁니다.

무작위로 선정한 어떤 사람에게 그의 친구 중에서 자신보다 오바마 대통령과 조금 더 가까울 것 같은 사람을 소개받을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또 오바마 대통령과 조금 더 가까울 것 같은 친구를 소개받고요.”

(‘Do you know Obama?’프로젝트 소개 영상 中)


한때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 화제가 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섯 단계만 거치면 모두 아는 사람’이라는 재미있는 이론이다. 유 씨가 기획한 ‘Do you know Obama?(두유 노우 오바마)’도 비슷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오바마 대통령과 가까울 것 같은 사람’을 계속해서 소개 받다보면 언젠가 진짜 오바마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아이디어였고, 지난 4월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이트를 만들고, 기획하는 시간을 합치면 4달 정도 준비한 셈이죠.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굉장히 부드럽고 재치 있어 보이죠. 그의 언행이나 행동들을 보면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를 만나고 싶었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로 썼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 공개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프로젝트의 종착지를 ‘오바마’로 정한 대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살고 있는 가장 평범한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권력 있는 사람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인간은 힘을 가지게 되면 약자를 괴롭히게 되잖아요. 유치원에서도 그렇고 학창시절 학교 폭력도 같은 맥락이죠. 직장, 정치판에서도 똑같아요. 그런데 정말 평범한 사람이 세계 최고의 권력자와 연결됐다고 생각해보세요. 함부로 괴롭힐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됐어요.”


오바마를 만나러 간다는 이상한 형이 나타났다


[꼴Q열전] '두 유 노우 오바마?' 진짜 오바마 만나기 프로젝트

△ ‘Do you know Obama?’ 홈페이지(www.doyouknowobama.com)를 방문하면 프로젝트의 과정을 볼 수 있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대한민국의 가장 평범한 사람으로 선택된 것은 유 씨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슬(25)씨의 사촌동생이었다. 초등학생은 너무 어린 것 같아, 말 좀 통하는 평범한 중학생을 찾던 중 이슬 씨는 공부 안하고 노는 사촌동생을 떠올렸다. “맛있는 것 사 줄 테니 나오라”는 누나의 전화에 별 생각 없이 나왔던 중학교 1학년 민우군은 얼떨결에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민우는 자신보다 오바마와 더 가까울 것 같은 사람으로 자신의 담임 선생님을 추천했어요. 그 자리에서 민우가 선생님 섭외를 위해 연락을 했는데, 저희를 이상한 사람들로 오해하셨나봐요. 인터뷰를 거절하시고는 민우에게 ‘이상한 사람들이랑 다니면 안 된다’고 말하셨대요.(웃음)”


결국 담임 선생님 섭외에 실패한 이들은 차선책으로 민우의 학원 수학 선생님을 섭외했다. 수학 선생님은 자신의 동생을, 동생은 아는 형님을, 형님은 동생을 오바마와 더 가까울 것 같은 인물로 소개했다. 그렇게 현재까지 소개에 소개를 타고 만난 이들이 15명이다. 대학생, 펀드 매니저, 보험 판매원 등 직업도 가지각색, 나이도 제각각이다.


[꼴Q열전] '두 유 노우 오바마?' 진짜 오바마 만나기 프로젝트

△ 가장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으로 뽑힌 이슬 씨 사촌동생 민우 군. (사진 홈페이지 캡처)


일단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 다음 사람을 추천하면 유 씨가 직접 연락해 섭외를 진행하고, 만나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한다. 인터뷰 내용은 간단하다. ‘오바마 대통령과 가까울 것 같은 지인’을 소개하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남기는 것. 인터뷰 장면은 휴대폰으로 촬영해 1~2분가량의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유투브에 업로드 한다.


“처음에는 다들 ‘나 때문에 프로젝트가 끊기면 안 되니까’라는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해준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에는 분위기가 좀 바뀌었어요. 사람들도 점점 다채로워지고 재미있어 해주시니 프로젝트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은 느낌이에요. 내일 누굴 만나게 될지 모르니 더 흥미로워요.”

언젠가 영상을 보게 될 오바마를 위해 직접 영상의 영어 내레이션 작업도 진행한다. 비록 원어민이 들으면 ‘이게 웬 이다도시 발음?’이라며 당황하겠지만 유 씨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혀를 굴리는 중이라고. 자막 번역은 이슬 씨가 영어 잘하는 친구 5명에게 재능기부 하청(?)을 주어 도움을 받고 있다.


“영어 실력이 미숙하죠. 하지만 영어를 못해서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고생해서 오바마를 만나게 됐는데 영어도 못한다니! 뭔가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요.”


엔딩 크레딧, 단돈 만 원에 팝니다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유 씨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진행비를 마련하고 있다. 언젠가 미국에도 가야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항공권 비용을 모으는 것이 목표. 인큐에서 1천만 원으로 계약한 연봉의 절반을 상반기에 받기는 했는데, 술 마시고 맛있는 거 사먹으며 다 써버린 터라 하반기 급여를 받을 때까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한다.


“곧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하려고요. 오바마를 만나면 지금까지의 프로젝트 과정과 엮어 영상으로 만들 거예요. 그럼 전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되겠죠? 그 영상의 마지막에 엔딩 크렛딧을 넣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엔딩 크레딧을 파는 거죠. 한 글자당 1만원씩 구입할 수 있어요. ‘이슬아 사랑해’라는 글자를 넣고 싶다면 6만원이 들겠네요. 총 1000자를 판매할 예정입니다. 펀딩으로 모인 돈은 미국에서 오바마를 만나러 가기까지 드는 비용으로 사용할거고요. 남은 금액은 모두 기부할 거예요.”


돈을 아끼기 위해 미국에서 소개받은 사람에게는 염치없지만 홈스테이를 부탁하고, 다음 소개자에게까지만 데려다달라고 요청할 예정. 돈이 부족하면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로 비용을 모을 의지도 있다.


“저 멀리 오바마가 서 있어요. 저희는 숟가락으로 땅굴을 파서 그에게 가는 거죠. 멈추지 않고 가면 언젠가는 도착하게 되어있어요. 올해 안에는 꼭 오바마를 만나러 갈 생각입니다. 제가 쓴 편지를 보여주고, 그때까지 만난 사람들의 영상도 보여줄 거예요. 곧 오바마도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되지 않을까요? ‘열심히 오렴, 컴온 베이비’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릴 수도 있죠!”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