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에 야간·주말근무까지… 현장 실습자가 봉?

기업에 이용 당하는 특성화고 아이들

글 황미례 인턴기자


[1618] 성희롱에 야간·주말근무까지… 현장 실습자가 봉?


#1.특성화고 졸업을 앞둔 Y군은 자동차기계공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현장실습에 나갔지만 무리한 업무시간으로 상처만 입은 채 퇴사했다. 그는 아침 8시에 출근해 매일 저녁 9시에서 11시 사이에 퇴근했다. 주말에도 8시에 출근해 4시 30분에 퇴근했다. 그는 “근무시간이 너무 길어 어쩔 수 없이 퇴사했다”며 “실제로 청소년 근로법 교육을 받았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근로계약서를 썼냐는 질문에 그는 “근로계약서를 써도 무용지물이더라. 현장실습의 취지가 현장 체험을 하면서 일을 배우는 걸로 알았는데, 일을 배우기보다 ‘빨리하라’는 재촉에 반복되는 업무를 하기 바빴다”라고 덧붙였다. Y군은 현장실습교육생이 아닌 노동자로서의 생활을 체감하고 현장실습을 채 마치지 못하고 돌아왔다.


#2. 지난해 9월 모 대기업 하청업체로 실습 나간 K양은 4번에 걸친 성추행을 당해 회사를 그만뒀다. 사내에서 한 남자 상사가 K양의 엉덩이를 만지고, 가슴에 손까지 댔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늘 뽀뽀나 할까?’ 등의 성희롱 발언으로 K양을 괴롭혔다. 참다못한 K양은 현장실습을 그만두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성추행을 한 상사는 현재 기소되어 2차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K양의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그런 일을 당해 화가 난다”며 “실습을 나간다고 좋아하던 딸이 지금은 불안해하고 많이 힘들어 한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3. 독일계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말레베어공조(주)에서 부산지역 특성화고생 15명을 현장 파견했다. 문제는 회사가 노사분쟁의 상황에서 노조원들의 근무부서에 실습생들을 투입한 것이다. 회사 측은 학생들을 불법 대체하고 방패막이로 사용한 셈이다. 당시 현장실습을 나갔던 C군은 “회사가 노사분쟁 중이라 용역직원들이 있어서 퇴근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출근길이 무서울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현장실습 나갔다온 학생들…‘상처뿐’

졸업 전 현장실습을 이수할 의무가 있는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들이 ‘일을 통한 교육’의 체험보다 보호받지 못한 노동환경으로의 노출이 심각한 수준이다. 특·마고생들은 현장실습이라는 명목 하에 값싼 노동자로 전락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이들이 많다. 하인호 인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장은 “현장실습을 나간 후 복교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예를 들어 회식 때 술을 강요해 울상 짓는 학생들이나 직장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현장실습 전 근로교육법 이수…실상은 ‘무용지물’

기본적으로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은 근로교육법을 사전에 이수하고 현장에 투입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근로교육법이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박정민 녹색실천협의회 사무국장은 “업체를 방문해 현장실습 중인 학생들에게 근로교육법을 교육하고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이버교육을 실시하지만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예를 들어 실습생은 야간근무가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야간근무를 강요한다”고 전했다. 실제 현장실습에서 야간 잔업은 금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에서는 노동법을 핑계로 생일이 지난 학생들은 야간근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학교 측에서도 기업과의 관계가 끊인다는 이유로 제대로 항의도 못한 채 회사의 불합리한 운영을 보고만 있는 실정이다.


현장실습은 ‘조기취업’이 아닌 ‘진로탐색’

올바른 현장실습문화를 안착하기 위해서는 ‘현장실습’의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최민 서울성모병원 직원환경의학과 전문의는 “2012년 기아자동차로 현장실습을 나간 한 학생이 야간교대 때 뇌출혈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 불행히도 그 친구는 아직 병상에 있다. 현장실습을 나간 청소년들이 질병으로 병원에 오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실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과도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몸이 약해진 학생들을 접하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 가입했다. 그는 “현장실습은 말 그대로 학생신분으로 현장에서 배우는 것인데, 현장에서는 노동자로 분류한다. 그렇다고 현장실습을 안 할 수는 없지만 대안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현장실습은 첫 사회생활이다. 하지만 기대감으로 디딘 첫 사회생활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괴리감을 주고 있다. 청소년들의 꿈을 키워줄 수 있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어른들은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을 노동자로 전락시키기 보다는 성장할 수 있는 인재로 교육시켜야 한다. 참혹한 청소년 노동환경, ‘쉬쉬’ 하기 보다는 기업체와 현장실습 교육생이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의무가 어른들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