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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무기항·무동력 요트 세계일주 김승진 선장

“지구를 즐겨본 적이 있나요”


어쩌면, 이 시대 청춘에게 스펙의 하나가 돼버린 ‘도전’.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54)은 서양화를 전공한 뒤, 일본으로 떠나 방송연출을 새로 공부했다. 그 뒤 일본과 한국에서 PD생활을 하다가 지난 2014년 10월, 전 재산으로 구입한 요트를 타고 52세에 209일 간 홀로 전 세계(4만1900㎞)를 돌았다. 같은 기록 보유자는 그를 포함해 단 6명. 국내에서는 김 선장이 유일하다. 일생이 도전이었던 김 선장이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정한 도전이란 무엇일까.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김승진 선장  “지구를 즐겨본 적이 있나요”

| 지난 3월 10일, 수십 개의 요트가 정박해 있는 김포 아라마린센터에서 김승진 선장을 만났다. 인터뷰에는 잡앤조이 대학생 모델 민유정(국민대 3) 학생 모델도 함께 했다. 사진=이승재 기자


- 요즘 어떻게 지내나


내년 열리는 ‘IMOCA 오션마스터스 월드챔피언십’이라는 세계 요트 레이스를 준비 중이다. 누가 지구를 가장 빨리 도느냐를 겨루는 시합이다.


- 지난 2014년, 무기항 요트는 왜 시작했나


원래 모험을 좋아한다. 대학 때 연합잠수회라는 동아리에서 처음 바다를 알게 된 뒤, ‘세계 4대강을 모두 가보자’고 결심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요트가 마음에 훅 들어왔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요트 공부를 했다. 2013년, 태평양을 횡단했는데 이때 배 위에서 ‘이제 진짜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김승진 선장  “지구를 즐겨본 적이 있나요”



- 어떤 것을 준비했나


한국에 도착한 뒤 꼬박 1년을 준비했다. 스폰서와 서포터를 모으는 게 급선무였다. 이중에는 대학생도 있었다. 1만 원 정도와 함께 ‘작은 금액이지만 요트에 희망을 싣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요트비만 3억이 필요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딱 집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 남았는데 집을 사 버리면 꿈이 더 멀어질 것 같았다. 남은 돈을 꿈에 걸기로 했다.


- 항해를 시작한 이유가 ‘물이 있는 곳에 태어난 데 감사해서’라고도 했다. 무슨 의미인가?


바다 위에선 육지보다 우주를 가까이에서 느끼게 된다. 또 계속 바다 위에 있으니 마치 커다란 물방울 위를 도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왜 이 지구에 왔는지를 고민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어떻게 이 지구를 즐기다 갈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김승진 선장  “지구를 즐겨본 적이 있나요”

209일 간 요트 위에서의 세계일주 모습. 사진=김승진 선장



- 혼자 망망대해에 있으면 외로움도 클 것 같다.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데. 지구를 온전히 나 혼자 만끽할 수 있다.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즐거움의 80%가 손실된다. 챙겨야 하고 배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다른 사람과 항해를 해본 적이 있는데 둘 보단 셋이 낫고 셋 보단 혼자가 낫더라. 이번에도 떠나기 전에 가장 설?던 게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온전히 혼자 있을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런데 7개월을 혼자 있을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행복한가.


- 아름다운 풍경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아쉬움은 없었나


어릴 때는 그랬는데 어느 순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어도 각자 느끼는 게 다르다. 예전에는 사진에 대한 애착도 강했지만 여행을 많이 하면서 사진보다 강력하게 담을 수 있는 곳은 바로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명이 같은 사진을 가지고 있어도 기억하는 부분은 다르지 않나.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김승진 선장  “지구를 즐겨본 적이 있나요”



- 바다 위에서 겨울과 여름을 모두 경험했다. 차이가 있나


바다 위에는 사계절 외에도 무수한 계절과 변수가 있다. 돌풍이 불다가도 갑자기 고요해지는데 그럴 때마다 돛을 접었다, 줄였다, 올렸다를 반복해야 한다. 또 무동력이다 보니 열대지방의 무풍지대에서 바람을 잡아 전진하는 것도 힘들다. 일본 밑은 태풍이 많이 부는 몬순 지역인데 적도로 가면 또 무풍이다. 적도를 넘어 반대로 가면 다시 앞선 일이 반복되다가 남극해로 가면 완연한 겨울이라 생전 보지 못한 얼음 덩어리를 넘어야 한다. 계속된 도전이었다.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김승진 선장  “지구를 즐겨본 적이 있나요”



- 듣기만 해도 어려워 보인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었나


즐기는 것이었다. 예측하지 못한 힘든 상황은 늘 찾아오더라. 그럴 때마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열심히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작성하며 빠르게 전략을 짰다. 그리고 즐겼다. 즐기는 게 가장 확실한 극복 노하우였다.


-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어느 날, 평소처럼 바다를 구경할 생각으로 밖을 나갔는데 순간 얼음덩어리가 배 바로 옆을 스쳐갔다. 조금만 옆으로 다가왔으면 바로 부딪혔을 것이다. 이런 행운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 뒤로는 그냥 ‘바다에 맡기자’ 했다. 또 돌고래 떼를 찍으러 배 안에 들어갔다가 상어를 만났다. 피했다가 공격하기를 반복하면서 겨우 배 안으로 피했다. 아찔했다.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김승진 선장  “지구를 즐겨본 적이 있나요”



-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말도 했다


해적이다. 목숨에 대한 위협보다도 누군가 내 배 위에 올라타면 ‘단독’이라는 기록을 세울 수 없게 돼버린다는 게 가장 걱정됐다. 그래서 배 한쪽 벽을 뜯어내 촬영도구나 식량 등 장비부터 숨겨 놨다. 반가워야 할 사람이 경계대상이 되니 슬프더라.


- 200여일을 돌아 마침내 한국이 보였을 때, 기분이 어땠나


그냥 눈물이 났다. 딸이 가장 보고 싶었다. 보자마자 꼭 끌어안아줬다. 딸이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게 이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김승진 선장  “지구를 즐겨본 적이 있나요”



- 바다의 매력은 무엇인가?


자유다. 육지에서는 길을 가려면 반드시 누군가 그어놓은 선 안에서 움직인다. 바다는 그런 것이 없다. 의식해야 할 것도 없다. 사람도, 건물도 없다. 오직 자연만 있다. 또 풍요롭다. 천지가 먹을 것이다. 생선구이가 먹고 싶으면 바로 작살을 들면 되고, 가만히 있어도 날치가 날아든다.


- 지금, 취업이나 개강 등 대학생들이 새로운 도전을 앞둔 시기이다. 조언을 한다면


어른들의 이야기가 다를 게 없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 다만, 학생들이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우선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대학은 바로 생존전략을 찾아야 하는 전쟁터에서는 비교적 떨어져 있지 않나. 이 기간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유행이라든지,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을 꼭 따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이것만은 염두에 두라는 게 있다면?


대부분은 도전을 앞두고 악몽을 꾼다. 나도 출발 전날, 배가 고장 나서 항구에 들어가 수리하거나, 누군가 도와준다며 배 안에 들어오는 꿈을 꿨다. 하지만 마침내 단독이라는 기록과 함께 항해에 성공했다. 악몽은 새로운 꿈의 시작이다. 즐겨라. 또 서두르지 마라. 서두른다는 것은 곧 무리한다는 의미다. 만약 상황이나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무리하지 마라. 대신 잊지 않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조건이 주어지는 날이 찾아온다. 나도 14년을 기다렸다.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힘이 실릴 것이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