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나도 그땐 16살이었는데'


사람의 매력은 의외성에서 나타난다. 내 첫사랑 오빠도 그랬다. 입만 열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줄줄이 읊던 넘사벽 뇌섹남이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제일 좋아한다며 폰 트랩 대령의 장녀 리즐과 첫사랑 상대 롤프가 사랑을 속삭인 노래 ‘열일곱이 되는 열여섯(Sixteen Going on Seventeen)’을 천진난만하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33살에 다시 꺼내 본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감상은 그 기억에서부터 시작됐다.


처음 이 영화를 본 건 20여 년 전 KBS ‘토요명화’를 통해서였다. 그날따라 도통 잠이 오질 않아 TV라도 보자는 심산이었다. 지금이야 24시간 내내 케이블 채널이 방영되고, 인터넷도 있지만 당시엔 토요명화가 심야시간의 몇 안 되는 ‘킬링타임’ 아이템이었다.


제발 영화가 끝나기 전에 잠이 오길 바라며 본 사운드 오브 뮤직은 불행(?)하게도 그날 밤을 꼴딱 새게 만들었다. 러닝타임이 긴 이유도 있지만 매 장면마다 눈을 뗄 수 없는 노래와 풍경에 경외심마저 들었다. 이후로도 각종 신문기사로, 방송으로, 각종 동영상 파일로 사운드 오브 뮤직은 잊히지 않는 단상으로 내 삶을 따라다녔다.


영화는 노래를 좋아하는 견습 수녀 마리아가 부유하지만 아내가 죽은 뒤 마음을 닫은 폰 트랩 대령과 7남매를 회복시키고, 음악을 통해 나치 치하에서 스위스로 망명하는 이야기다. 이야기 대부분이 마리아를 중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주로 그녀에게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첫사랑 오빠가 ‘Sixteen Going on Seventeen’을 부르는 것을 보고 20대에 다시 접한 사운드 오브 뮤직은 트랩 대령의 장녀 ‘리즐의, 리즐에 의한, 리즐을 위한’ 영화가 돼버렸다. 첫사랑에 빠진 리즐의 풋풋한 모습이 당시 사랑에 빠진 내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 듯 했다.


내 인생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39;나도 그땐 16살이었는데&#39;


리즐은 훗날 자신의 가족을 배신할 롤프의 실체는 상상도 못한 채 그저 사랑에만 몰입한다. 그러면서 “나는 열여섯, 곧 열일곱이지. 내겐 나이 들고 현명한 누군가가 필요해. (생략)너(롤프)는 열일곱, 곧 열여덟이지. 난 네게 기댈거야”라며 수줍게 고백한다. 첫사랑에 관한 노래나 소설들은 많지만 이 장면만큼 사랑스럽게 표현한 콘텐츠는 많지 않을 것이다. 리즐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노래가 혼연일체가 돼 완벽하게 첫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인정하긴 싫지만 반세기 전에 이미 이런 장면을 기획하고, 연출한 할리우드의 위력을 경탄하게 된다.


다시 꺼낸 본 ‘사운드 오브 뮤직’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 난 “나는 열여섯~”이라고 노래 부르기 민망한 30대가 되버렸고, 첫사랑에 오매불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리즐과 롤프가 부른 그 노래보다 마리아가 리즐에게 사랑에 관한 조언을 하며 불러준 같은 노래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내 인생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39;나도 그땐 16살이었는데&#39;


“과거의 생각은 잊고, 새로운 생각이 생겨 날거야. (생략)이런 모험들이 일어나리라고 지금은 상상도 못할 걸. 넌 곧 열일곱이 되는 열여섯일 뿐이야. 그러니 1, 2년만 더 기다려봐.” 지금 내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과연 40대에 다시 보게 될 ‘사운드 오브 뮤직’은 어느 인물이 내 마음을 대변할까. 그때도 마음만은 16살 리즐이고 싶은데.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