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두 번째다. 이번에는 5511번을 타고 기숙사 삼거리에서 내렸다.


“기숙하는 것도 아닌데 왜 기숙사 삼거리로 오라고 한 거지?”


기숙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어제’ 군대를 전역했으니까.


나랑 학식 먹을래 14화. "군대에서 공 찬 이야기 이긴 한데..."

l 서울대 학부생 기숙사 식당 제육정식(각 5,000원)


학식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물었다.


“군대는 왜 갔어?”


“글쎄요… 왜 갔을까요?”


[ 어제 전역했어요 ]


축구는처음이군(*군대에서 처음 공을 찼다. 이제는 태릉인이 꿈이다 말하는 12학번 남학생. 이하 ‘처음이군’)에게 군대를 왜 갔는지 물어본 건 서울대 경험(?)이 한 번 있었기 때문이다.


12화 서울대 아리랑소녀와 가졌던 학식타임 때 놀랐던 게 서울대 친구들 대부분이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점이었다. 2화 공대생 안티코딩군과 학식타임 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대학원에 진학하면 ‘전문연구원 제도’가 있어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대 다니는 공대생 처음이군에게 말할 때 당연하다는 듯이 알은체하며 대학원 가면 전문연구원제도 있어서 보통 군대 안 갈 텐데 왜 갔는지 물었던 거다.


[ 유학 가려고 군대 갔어요 ]


“전문연구원제도는 국내 대학원에만 해당돼요.”라는 말과 함께 나의 알은 척은 끝이 났다. 처음이군은 2학년 2학기까지 마쳤을 때 국내 대학원보다 해외로 대학원을 가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입대를 고민했다.


자립형 사립고를 나온 것도 한몫했다. 세상에는 나와 생활방식도 사고방식도 다른 사람들로 가득할 텐데 지금껏 살아온 환경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공부만 했고 경쟁에만 목을 맸다. '군대에서 공부할 일은 많지 않을 거고 경쟁보단 합심해야 하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어차피 가야 하는 건데 빨리 갔다 오자!’

그렇게 21개월이 지났다.


[ 공 차러 군대 왔나 봐요 ]


처음이군의 군대 이야기는 계속됐다. 평소 귀에 못 박히게 들어온 이야기들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훈련소 이야기’, ‘행군 이야기’, ‘여돌을 향한 팬심 이야기’, ‘군대에서 공 찬 이야기’ 등등.


딱하나! 내가 지금껏 들어온 군대 이야기와 달랐다. 군대에서 축구를 ‘처음’ 하게 된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서울대학생신드롬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뭐든 잘해야 한다. 1등 해야 한다. 그런 강박이 있어요. 그래서 처음 시작하는 걸 못해요. 처음 시작하면 못하는 게 당연한데 그걸 받아들이질 못해요.”


“예를 들자면?”


“공부는 하던 거니까 처음이 아니잖아요.”


“그럼 그럼, 그렇지”


“공부를 제외한 운동이나 악기 같은 것들 있잖아요.”


“자전거 타기? 수영하기?”


“자전거나 수영은 어릴 때 배워서 할 줄은 알아요. 축구요!! 축구”


“축구를 해본 적이 없어?”


“어릴 때는 기회가 없었고 스무 살 넘어서는 못하니까 안 했어요. 공차는 걸 군대에서 처음 시작했어요.”


“시작이 어려운 거구나”


“그런가 봐요. 근데 군대에서는 시작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공 안 차면 21개월 동안 그 안에서 뭐 하겠어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입대하자마자 욕을 먹었어요. 그냥 내가 후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욕을 먹더라고요. 사실 밖에서는 ‘못한다’라는 피드백 자체가 두려웠어요. 못하는 게 싫으니까요. 신기하게도 군대 안에서는 욕을 하도 먹어서 그런지 못한다는 피드백이 두렵지가 않더라고요.”


“극복?”


“극복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시작에 대한 두려움은 좀 사라진 것 같아요. 그때 공차는 것 말고도 이런저런 운동을 시작했거든요. 전역한지 고작 하루밖에 안되긴 했지만 당장 서킷트레이닝도 등록하려고요.”


지금까지 들었던 군대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군대에서 처음 공 찬 이야기’가 끝날 즈음 학식타임도 말미에 다다랐다.


“그래서 군대에서 다양한 사람은 만났어? 어땠어?”


마지막으로 묻고 끝내려고 했더니 머뭇머뭇했다. 시간이 꽤 지난터라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글로 부탁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은 축구는처음이군이 학식타임 며칠 후 보내온 '글 대답' 이다.


[ 후회는 없어요. 외로움은 있었지만… ]


나랑 학식 먹을래 14화. "군대에서 공 찬 이야기 이긴 한데..."


오늘 군대에서 점호를 받는 꿈을 꾸었다. 꿈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꿈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점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받았다. 알람이 울려 일어나기 전까지 난 군대에 있었다. 아침에 그 꿈을 꾸고 나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을 보니 내가 전역을 한 게 실감이 났다. 또 군대 꿈을 꾼 김에 지금까지 미뤘던 군대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리라 결심했다.


나는 작년 2월에 입대해서 올해 11월에 전역했다. 요즘 군대라 그런지 내 군 생활은 전반적으로 평탄했다. 말년에는 누가 보기에도 편한 보직에서 근무했고 군대에서 나를 괴롭히는 선임과 간부 그리고 사고 치는 후임도 없었다. 전역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풀만한 누구나 갖고 있는 ‘썰’조차 없다. 이 정도면 내가 어떤 군 생활을 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편안함의 반대말은 불편함이지 힘듦이 아니다. 얼마든지 편하면서도 힘들 수 있는 일이 있다. 내 군대에서의 21개월이 바로 그랬다.


나는 내 또래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남자라면 주로 자신들이 하는 게임과 관련된 이야기, 여자, 주변 사람들의 가십 등을 이야기하면서 우정을 쌓는다. 반면 나는 내가 읽은 책, 본 영화, 평소에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주변에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입대를 하자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고독했다.


내가 군대에서 동료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휴가나 외박도 같이 나가고 많은 대화를 나누려 노력했지만 20여 년 넘게 지속된 평행선이 만나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한 번은 야간 경계 근무 중에 사수와 이야기를 나누다 사수의 평소 고민거리를 듣게 되었다. 전역을 하게 되면 무엇을 할지가 자신의 가장 큰 고민이라 했다. 사수의 고민거리를 듣고 내게 사회에 나가면 어떤 일을 할 건지 물어보았다. 나는 나가서도 그냥 공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사수는 네가 하는 고민은 먹고사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군대에서는 언제나 그랬다. 나는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을 거니까 네 고민은 나의 고민에 비하면 별볼 일 없다고. 내 고민은 그저 사치에 불과했다. 그 이후로 나는 군대에서 내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 했다. 그곳에서 언제나 내 고민과 속마음은 사치였기 때문이다.


군대에서의 내 삶은 그렇게 외로움으로 점철되었다. 누군가 삶은 언제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나의 쓸쓸했던 21개월을 즐겁게 추억할 수 있을까.


기획·글 캠퍼스 잡앤조이 nyr486@hankyung.com

그림 BOXI(웹툰 '여대생의 정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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