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별 복수전공제도, 어떻게 운영되나?


“주 전공은 국어국문이고, 부전공은 경영입니다.”

이제 한 가지 학과 이름을 대고 자기소개를 하는 대학생은 만나기 어렵다. ‘창의적 융합 인재’ ‘취업’ 등을 목적으로 다전공·이중전공·복수전공 등을 졸업 필수조건으로 내세운 대학이 늘면서부터다.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학문을 전공으로 만드는 DIY전공부터 다양한 계열의 학문을 합해 한 학문으로 전공하는 융합전공까지 각 대학의 복수전공제도를 정리했다.




‘복수전공’이 대학의 제도로 도입된 것은 1974년. 하지만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20년이 넘는 동안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그러다 1995년, 대학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자율적으로 설계하도록 한 ‘5·31 교육개혁안’의 영향으로 대학의 전공 이수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교육개혁안에 따라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분야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 학부제, 최소전공인정학점제 등의 제도가 마련됐고, 대학생들이 무리 없이 복수전공제도를 활용하기 시작한 덕이다.


복수전공제도가 활성화된 지 20년이 지난 현재 복수전공은 대학생들의 크나큰 고민거리다. 복수전공 이수 여부를 결정하는 고민이 아니다. 대부분의 대학이 복수전공을 하지 않으면 졸업장을 발급하지 않는 등 의무적으로 복수전공을 이수하도록 제도화했다. 이에 따라 복수전공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이다. 복수전공 이수 여부는 고민할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짜 고민은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찾는 일이다. 항상 복수전공의 중심에는 ‘취업’이 있었지만, 복수전공 이수 여부가 취업의 유·불리를 결정하던 것을 넘어 이제는 복수전공 학과가 중요해진 것이다.


그렇다 보니 기업에서 선호하는 경영학과, 경제학과 등 상경계열이 복수전공으로 압도적 인기를 끌어왔다.


2003년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대졸자 1584명에게 설문한 내용을 살펴보면,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전공'으로 가장 많은 응답자가 ‘경영학과(21.6%)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7년이 지나 2010년 <캠퍼스 잡앤조이>가 전국 10개 대학을 대상으로 ‘2010년 1학기 복수전공 지원 현황’을 조사했고, 그 결과 10개 대학 모두 경영·경제학이 5위 안에 랭크된 것으로 나타나 상경계열의 인기가 꾸준한 것으로 보였다.


복수전공 선호도, ‘상경계열’에서 ‘공학계열’로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모든 기업이 경영학과·경제학과 전공자를 선호한 덕분에 상경계열이 ‘취업깡패’로 군림하던 시기는 지났다.


이제 복수전공의 중심 흐름은 ‘공학계열’로 바뀌었다. 대부분의 기업이 인문계 전공자 채용을 기피하면서 ‘취업 잘되는 학과’로 공학계열 전공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대학생 484명을 대상으로 ‘전공 선택’에 관한 설문을 진행한 결과 ‘바꾸고 싶은 전공’으로 가장 많은 응답자가 ‘공학계열(28.9%)’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캠퍼스 잡앤조이>의 2010년 10개 대학 대상 조사에서 1~5위를 경영·국제통상·심리·신문방송·경제 등의 전공이 차지했던 것과 상반된 결과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지난해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의 85%가 이공계 출신이었으며, SK의 경우도 70%가 이공계 전공자였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공채에서 이공계만 모집하기도 했다.


취업 외에 생활 곳곳에 과학기술이 적용되는 데다 모든 영역에 걸쳐 공학 지식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공학계열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이곳저곳에서 ‘이공계’를 외치자 인문·상경계열 등 문과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부작용이 나타났다. ‘인구론(인문계 졸업생의 90%는 논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같은 자조 섞인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인문계의 취업이 어려워진 것.


취업 포털 사람인이 대졸 이상 신입 구직자 1651명을 대상으로 전공을 살려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지 물었는데, 인문계열의 64.2%는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사회계열 59.6%, 교육계열에서는 58.8%였다.


그 이유로는 ‘전공 관련 채용이 너무 없어서(43.8%, 복수응답)’가 첫 번째로 꼽혔다. 또 10명 중 9명(91.1%)은 자신의 전공 선택을 후회했다. 그 이유로는 '학과 취업률이 낮아서'(37.8%, 복수응답)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35.7%) '적성과 맞지 않아서'(32.4%) '기업이 선호하지 않는 학과라서'(32%)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라서'(20%) 등의 이유를 들었다.


대졸 이상 신입 구직자들은 공학계열(52.5%)이 취업에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인문계열(47%)을 취업에 가장 불리한 전공으로 꼽았다.


‘문과’ 전공자 위해 복수전공 계열 제한 없애

인문계 기피현상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기관·대학 등에서는 인문계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인문계 전공자들이 이공계 분야를 학습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는 등의 방안을 내놓고 있다.


지난 6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인문계 전공자 취업 촉진 방안’은 인문계 대학생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복수전공과 이공계 융합교육을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인문계열 전공 학생들의 복수전공·부전공을 이공계 분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런 움직임은 단순히 ‘취업’ 때문만은 아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부터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며 복수전공 계열 경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인문계열 전공자가 상경계열을 선택하는 것을 넘어 각 대학에서 처음부터 다른 계열의 학문을 합한 융합 관련 전공을 개설하기 시작한 것. 기술과 과학, 문화 등의 융합으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각 기업에서 융합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에 맞는 인재를 채용하려는 움직임도 가속화했다.


그 결과 아주대 소프트웨어융합전공, 중앙대 디지털이미징공학전공, 부경대 IT융합응용공학과 등이 개설됐으며, 복수전공과 함께 ‘융합전공’을 의무로 이수해야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대학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학제 간 교류를 위한 대학의 제도

각 대학에서는 복수전공·부전공 등 다양한 학과 이수 제도를 도입, 운영한다. 주 전공을 이수하며 동시에 다른 전공을 공부할 수 있는 복수전공부터 2개 이상의 학과·학부가 연계한 연계전공, 제3전공·제4전공 등 2개 이상의 전공을 이수하는 다전공, 스스로 수학하고 싶은 학문을 전공하는 학생설계전공까지. 이름은 '복수전공'이지만 다른 학교와 제도의 차이를 둔 학교도 있다.





성균관대 전교생 SW 연계 전공 도입!

성균관대는 전과제도가 없는 대표적 학교인 탓에 복수전공에 관대한 편이다. 글로벌리더학·글로벌경제학·글로벌경영학·반도체시스템공학·소프트웨어학·약학·의학·글로벌바이오메디컬엔지니어링학을 제외하고는 복수전공 선택에서 계열 제한이 없다. 덕분에 성균관대는 2012년 60명이었던 복수전공자가 지난해 140여 명으로 늘어났다.


성균관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복수전공은 경영학과. 때문에 2013년부터는 2005학년도 이후 입학자가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할 경우 전공 기반 10과목 중에서 8과목 이상을 이수해야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토익 850점 이상 등 높은 기준을 뒀다.


학생 개인의 역량을 200% 발휘할 수 있도록 복수전공 교육과정을 스스로 설계해 이수하는 창의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른바 ‘자기설계 융합전공’이다. 프로그램 운영 결과 올해 미디어콘텐츠·금융공학·보험계리학·인권과 법 등의 과목이 개설됐다.


한편, 인문·상경계열 등 문과 전공자가 공학계열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성균관대에 따르면 2012년 5명이었던 문과 출신 공대 복수전공자가 지난해 57명으로 늘었다. 이 같은 학제 간 융합을 위해 최근 성균관대는 전교생에게 소프트웨어를 필수로 가르치는 성균소프트웨어교육원(SSEN) 설립을 발표하기도 했다.





서강대·중앙대 내 전공은 내가 만든다,

인문대의 90%가 다전공자일 만큼 복수전공제도가 활발하게 운용되는 서강대. 서강대는 중앙대와 함께 학생이 스스로 원하는 과목을 취합해 자신만의 전공을 만드는 ‘학생설계전공제도’를 도입했다.


54학점 이상의 교과과정을 편성해 교무처에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전공’으로 인정받는 제도다. 계열이나 모집단위, 전공에 관계없이 모든 조합이 가능하므로 학생들이 만들 수 있는 전공은 600개가 넘는다.


가장 큰 특징은 전공별 정원·학점 제한이 없다는 것. 그 결과 일본관계학·예술마케팅·문화비평 등의 전공이 개설됐다. 학생설계전공은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2009년부터는 금융공학·창업학융합전공 등 융합전공 과정을 마련해 운영해왔다. 내년부터는 SW 연계전공제도를 시행할 예정.


SW 연계전공은 공학계열 복수전공을 어려워하는 문과 전공자들을 위한 것으로, 인문학과 소프트웨어의 융합을 목표로 한다.


중앙대는 전공심화·복수전공·연계전공·융합전공·학생설계전공 중 하나 이상을 의무적으로 이수할 것을 졸업요건으로 두고 있다.





고려대 1전공을 마쳐야 2전공을 공부할 수 있다?

04학번 이후 제2전공을 의무화했다. 제2전공으로는 이중전공·융합전공·학생설계전공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융합전공. 2004년 마련한 제도로, 메디컬융합공학·융합보안 등 21개 학과가 운영 중이다.


지난해 융합전공에 합격한 학생은 830명에 달한다. 이는 학문 간 융합이라는 점은 물론 장학금 지원, 멘토링 지원 등의 다양한 혜택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학교의 복수전공제도와 고려대의 복수전공은 다른 개념이다. 다른 학교의 복수전공 제도처럼 주 전공과 부 전공을 동시에 이수하는 것을 고려대에서는 ‘이중전공’이라 칭한다. 고려대의 복수전공은 주 전공을 모두 이수한 뒤 새로운 전공을 이수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경희대 철학과 학생들에게 추가된 전공 ‘철학·문학트랙’,

경희대는 다전공을 전년도 입학정원의 30% 이내로 제한한다. 인기가 많은 경영학부의 경우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로 나눠 선발한다. 성적과 학업계획서, 면접전형을 통해 전공자를 선정한다. 의과대학·한의과대학 등 의예과와 음악대학·미술대학 등 예체능계열은 다전공을 할 수 없다.


‘철학·문학트랙’은 경희대에서만 볼 수 있는 제도. 철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철학과 개설 지정 전공과목 외에 국어국문학과와 영어학부 영문학전공 중 지정된 6과목(18학점)을 이수할 수 있는 제도다. 문과대 내의 학문적 교류를 더욱 활발히 한다는 것이 그 목적.


적정 과목을 이수하면 졸업장에 ‘철학·문학트랙전공’이라는 문구가 공식적으로 표기된다. 트랙을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 철학과 학생이라면 학점 등의 제한 없이 선택할 수 있다.


경희대는 지난해 문과생들이 이공계 학과 강의를 듣거나 복수전공을 할 경우 이를 지원하는 학과 간 융합교육 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융합교육지원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융합교육과정 개발 및 운영, 창의·융합교육 플랫폼 개발 및 성과 확산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연세대 졸업예정자에게 복수전공을 허하라!

연세대는 졸업학점을 가득 채운 4학년에게도 복수전공을 허용하는 ‘졸업예정자 복수전공 전형’을 운영한다. 3학년 이후 평점이 3.0 이상(4.3점 만점)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글로벌융합공학부·법학·음악대학·언더우드국제대학·의학 등의 학과는 제외다. 원주캠퍼스에서 지원해 3학년부터 시작하는 학생이 많은 편이다.


졸업예정자로서 복수전공을 신청하고 복수전공과목을 이수하지 않으면 주 전공 학점을 모두 이수했더라도 졸업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으며, 부전공이나 연계전공 등도 불가능하다. 오롯이 선택한 전공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 또한 교내·외 장학금 수혜나 학자금 대출도 어렵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서울대 여러 학과가 하나가 되다

서울대는 2006년부터 복수전공을 의무화했다. 의과대학·약학대학·간호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계열에서 복수전공을 허용한다. 음악대학은 다른 단과대 학생의 복수전공·부전공 선택을 일부 제한하지만, 음악대학에서 다른 단과대 학과를 부전공·복수전공하는 것은 허용한다.


학문 융합을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복수전공·연합전공·연계전공·학생설계전공 또는 소속 학과의 학점을 추가 이수하는 단일전공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했다. 연합전공은 여러 학과가 연합해 복합적인 교육과정을 갖는 것을 말한다. 전공문화학·기술경영·계산과학·글로벌환경경영학·벤처경영학·영상매체예술 등 6과목이 이에 해당한다.


서울대 역시 계열 교차 복수전공 지원이 느는 추세. 공대 소속 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은 2010년 27명에서 지난해 113명으로 증가 했다.





홍익대 미술과 산업의 환상적 케미

‘미술전공’으로 대표되는 홍익대. 많은 대학이 경영·국문 등 일반 학과에서 예체능계열 복수전공을 제한하는 것과 달리 홍익대는 미대 복수전공을 허용한다.


‘산업과 예술의 만남’을 슬로건으로 내세울 만큼 장려하는 제도. 단 건축학전공은 복수전공으로 선택할 수 없다. 복수전공제도가 가장 활성화된 전공은 산업디자인학과와 시각디자인학과.

대신 면접·포트폴리오 등 평가기준이 높은 편이다.





글 김은진 기자·오수현(성신여대 국어국문 2)·김나영(경희대 철학 2)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