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구조개혁평가,  “대학의 자정능력 키워주는 정책이어야”


A등급부터 E등급까지. 학교 성적이 아니다. 대학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시행된 ‘대학구조개혁평가’에 따른 대학교 평가점수다.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교육여건·학사관리 등의 항목을 기준으로 전국 298개 대학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고, 8월 31일 그 결과가 발표됐다. 결과에 대한 파장은 컸다. 하위 등급으로 매겨진 대학에서는 총장이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투명하지 않은 평가 과정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며 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대학구조개혁평가는 대학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이슈가 됐다.



대학구조개혁평가란 재정지원·정원조정 등의 방법으로 대학의 구조를 개혁해 대학교육의 질과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시행하는 정책이다.


국내 모든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해 단계적, 차등적으로 정원을 감축하는 것이 주 내용. 2023년까지 대학 입학정원을 16만 명 감축해 40만 명 선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평가는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간 이루어졌으며, 교육여건·학사관리·학생지원·교육성과 등을 기준으로 했다. 그 결과 각 대학은 ‘최우수대학(A)’ ‘우수대학(B)’ ‘보통대학(C)’ ‘미흡대학(D)’ ‘매우 미흡대학(E)’ 등 5개 등급으로 나뉘었다.


하위 등급(D·E)을 받은 학교는 재정지원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들 학교 학생들은 국가장학금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의미다. D등급은 소득연계 지원 국가장학금과 최소한의 학자금 대출만 가능하며, E등급은 국가장학금은 물론 학자금 대출조차 받지 못한다.


예체능과 종교 전문 대학, 체제개편을 이룬 대학들은 평가에서 제외되었지만,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서는 제한된다.


대학구조개혁평가,  “대학의 자정능력 키워주는 정책이어야”

출처 : 교육부



하위 등급 대학을 위한 컨설팅 결과가 학과 통폐합?

이번 평가에서 논란이 된 점은 본교와 분교를 따로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들의 분교와 지방 국립대조차 하위 등급을 받은 것이다. 대부분 상위 등급은 수도권 대학들이 차지했으며, 하위 등급은 지방 대학이 훨씬 많았다. 때문에 지방대 홀대와 부실대 낙인찍기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정부는 평가 후 하위 등급 대학에 ‘맞춤 컨설팅’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단순히 평가로 끝나 학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학교에 알맞은 컨설팅을 진행하겠다는 것.


대학구조개혁평가,  “대학의 자정능력 키워주는 정책이어야”


컨설팅 내용에는 ‘학과 통폐합’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학교는 구조조정을 통해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자체 인원감축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4월, 입학 3주 만에 학과가 통폐합된 단국대 천안캠퍼스가 대표적인 예. 신설된 지 2년밖에 안 된 생명의료정보학과를 폐과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이는 비단 단국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일방적 학과 통폐합 통보로 많은 학생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학과 통폐합에 대해 교육부에서는 학교의 자발적 구조조정은 대학구조개혁평가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의 여건을 정확히 진단해야

그렇다면 평가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대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대학생 42명에게 평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대학구조개혁평가,  “대학의 자정능력 키워주는 정책이어야”

먼저 ‘대학구조개혁평가에 대해 알고 있는가?’ 물었다. 응답자의 7%가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43%였다. ‘처음 듣는다’는 응답자도 21%에 달했다.


이어 평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절반인 50%가 ‘잘 모르겠다’고 답했고,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자는 31%였다. 그 이유로는 ‘실제 학생들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48%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교육부의 개입이 대학 운영에 해를 끼친다’(30%)는 답변이 많이 나왔다.


반대로 긍정적 이유로는 ‘불필요한 대학이 사라져 효용성을 높일 수 있다’(60%)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대학의 재정상태 등 여건이 향상되어 장학금과 시설이 개선될 것’(20%)이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입학인원이 줄어들면서 대학 정비가 필요’(13%)하다거나 ‘고학력 주의 타파에 도움이 될 것’(7%)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대학구조개혁평가,  “대학의 자정능력 키워주는 정책이어야”


기대와 달리 정부의 본래 목적인 입학 인원의 감소에 따른 대학 정비에 대해서는 많은 학생이 공감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대학구조개혁평가가 대학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재학(공주대 윤리교육 2) 씨는 근본적인 구조와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실행하기에 미흡한 부분이 많다. 평가 이전에 대학이 학문을 위한 곳인지, 취업을 위한 곳인지 정확히 해서 그에 따른 명확한 평가기준과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인문대와 예술대 등은 취업률이 아닌 학문으로서 평가받아야 하는 전공이다. 최고 학문 연구기관인 대학의 역할마저 취업에 국한된다면 사회적 가치가 단순 취업만 추구하는 사회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최경민(고려대 국어국문 4) 씨는 평가 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학구조개혁평가 기준이 지역적 특색이나 대학의 사정을 무시했다. 학교마다 학생 수나 재정의 차이가 있는데,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구조개혁평가와 대학구조조정(통폐합)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과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너무 세분돼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실용학문 위주로 통폐합이 이뤄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홍익대에 다니는 K씨도 대학구조개혁평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


“궁극적으로 학생들을 위한 대학 정비가 필요한데, 학생들 처지에서는 나아지는 것이 없다.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학교의 제약이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취업계를 내주지 않거나 커리큘럼에 제한을 두는 경우다. 또 학교에서 공부만 하다 보니 취업정보에 대한 부족함도 있다. 정부와 학교가 학과의 자율성을 보장해 학과 스스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글 이지수(한신대 문예창작 3)·김진현(고려대 국어국문 4)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