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킹바’ 알바생 이야기


서울의 한 거리, 길바닥에 각종 바 전단지가 낙엽처럼 흩어져 있다. 저녁 8시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켜진 간판이 거리를 비춘다. 건물을 올려다보니 유리창에 검은 스티커를 붙여 내부를 가린 바가 눈에 들어왔다. 까만 창문 너머의 광경이 궁금해 발길을 향했다. 이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알바 견문록]  ‘토킹바’ 알바생 이야기



첫 만남

계단을 올라 ‘토킹바’ 앞에 섰다. 닫힌 유리문에는 창문과 마찬가지로 검은 스티커가 붙어있다. 들어가기가 망설여진다. 문 앞에 잠시 서있다 가까스로 문을 열었다. 검은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가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다.


“어떻게 오셨어요? 면접 보러 오신 거예요?”


뜻밖의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는 오늘 면접 약속이 있어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온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여자 혼자 오는 손님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남자친구와 같이 오는 여자 손님은 본 적 있는데, 혼자 오는 여자 손님은 본 적 없어요. 가끔 남자 손님이 ‘여기 좋다’며 여자친구를 데려오기도 하거든요. 커플이 같이 오면 거의 둘이 싸우고 나가요. 남자친구가 자기 앞에서 계속 여자 바텐더와 이야기하니 여자친구로서는 기분 나쁘겠죠.”


이제 스무 살이라는 그는 자신을 유리(가명)라고 소개한다. 토킹바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종업원은 가명을 사용한다. 유리 씨는 대학에 다니느라 지방에서 홀로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은 학교 근처에서 혼자 자취하고 있다. 휴학하고 토킹바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그는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됐다고 했다. 손님은 30대 초반의 직장인이 가장 많고, 40대에서 50대도 있다고 했다. 가끔 20대 중후반 정도의 손님이 찾아오기도 한단다.


“주로 양주를 파니 학생손님은 보기 힘들죠. 병맥주 역시 다른 곳보다 3~4배 정도 비싸고. 다른 데서 술 한 잔 하고 2~3차로 오는 손님이 많아요.”


유리 씨는 자기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손님이 와서 반갑다고 했다. 혼자 가게 오픈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와중에도 자주 테이블 앞에 와서 말을 걸었다.


“같이 일하는 언니들은 여자손님이 오면 싫어하더라고요. 아무래도 같은 여자끼리 이런 데서 알바생 대 손님으로 마주하면 불편한 것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여자손님이 더 말도 잘 통하고, 그래서 더 좋아요.”



‘밤일 알바’의 세계

유리 씨가 일하는 바는 저녁 8시가 넘어 영업을 시작한다. 영업이 끝나는 시간은 그날 방문한 손님에 따라 다르다. 평일 손님이 없는 날은 보통 새벽 2시에 마감하고,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다음날 새벽 5~6시까지 영업할 때도 있다.


유리 씨는 일주일에 여섯 번 출근한다. 주말에는 손님이 많기 때문에 평일 중 하루를 쉰다. 유리 씨의 시급은 1만 원. 카페나 서빙,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에 비하면 거의 2배에 가깝다. 기분에 따라 집에 갈 때 택시 타라며 팁을 쥐어주는 손님도 있다.


“주로 앉아서 일하니 몸은 편한데,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취객들 푸념을 계속 들어줘야 하고, 같이 술도 마셔야 하니까요. 시급을 많이 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요.”


그나마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했다. 유리 씨가 일하는 바는 앞에 긴 테이블이 놓여 있고, 바텐더가 손님과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하는 구조다. 덕분에 손님이 원치 않는 스킨십을 하는 일도 없다고 한다. 사장님도 좋은 분이어서 소위 ‘진상’ 손님이 오면 직접 나서서 중재한다.


“이 근처에도 알바생이 노출 심한 옷을 입고 손님 옆에 앉아 술을 따르는 바도 많아요. 저는 그래도 괜찮은 데서 시작한 셈이죠. 착석 바도 나름의 규칙이 있어서 손님이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스킨십을 하면 못하게 해요. 가끔 안 좋은 사장님을 만나면 손님이 진상 짓을 해도 내버려두죠.”


착석 바가 아니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손님과 같이 술을 마실 때 들키지 않도록 요령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양주의 알코올 도수가 높기 때문에 손님이 주는 대로 받아 마시다가는 버티기 힘들다고. 유리 씨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손님이 따라 주는 대로 술을 마시다 낭패를 보기도 했단다.


“지금은 주는 대로 안 마셔요. 미리 양주와 비슷한 색깔의 음료수나 보리차를 여러 잔 따라 테이블 밑에 숨겨놔요. 손님이 술을 따라주면 안 보는 사이에 슬쩍 바꿔치기하는 거예요. 술은 바닥에 몰래 버리고.”



[알바 견문록]  ‘토킹바’ 알바생 이야기



현실에 로맨스는 없다

유리 씨에게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없다고 대답했다. 토킹바에서 일할 때는 남자친구가 없는 편이 나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같이 일하는 언니들 중 남자친구가 있는 언니도 꽤 돼요. 남자친구한테는 토킹바에서 일한다는 걸 숨기죠. 남자친구가 알면 반드시 싸우니까.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술 마시며 이야기한다는데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어요? 손님과 연애했던 언니도 봤는데, 사귀고 나서 남자친구가 그 언니한테 일을 그만두라고 했대요. 그래서 싸우다 결국 헤어졌어요.”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유리 씨는 일하면서 남자들의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봐서 이제는 별로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가끔은 아직 몰라도 되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고.


“사람이 술 취하면 좋은 모습보다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잖아요.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인 듯해요. 허세부리거나 외모를 평가하고요. 예전에 어떤 할아버지가 며칠 동안 가게에 들어와서는 한 번 쓱 둘러보고 그냥 나가더라고요. 같이 일하던 언니가 ‘종업원 와꾸(얼굴) 보고 나가는 거’라고 했어요. 얼마 뒤 가게에 저랑 손님들한테 인기 많은 언니 한 명과 둘이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왔어요. 그 언니를 보더니 테이블에 와서 앉더라고요. 그거 보면서 ‘나이가 들어도 남자는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강진주 인턴기자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