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펙 채용바람, 취준생들 "신스펙이죠!"


정형화된 스펙 대신 특별한 경험 내세우려 인턴, 알바에 창업까지


무스펙 채용바람, 취준생들 "신스펙이죠!"

이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한경DB


“아니요, 안 믿어요. 무(無)스펙이 아니라 신(新)스펙이죠!”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오디션 형식’의 채용바람이 불고 있지만 이를 체감하는 취업준비생들 상당수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디션 채용은 우리 사회 내 큰 문제로 지적된 ‘고스펙 현상’을 탈피하고자 지원자의 스펙 대신 직무자의 순수한 직무에 대한 열정과 끼만을 평가하겠다는 의도로 도입됐다.


특히, 아직도 학연·지연·혈연 문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박힌 우리나라에서 오롯이 개인의 ‘능력’만으로 평가되는 전형은 취준생들에게 그야말로 금 같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에 기업들은 몇 년 새 이른바 ‘무스펙 채용’을 속속 내놓고 있다.


SK그룹은 2013년 ‘바이킹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PR면접을 도입했고 같은 해 KT도 ‘스타오디션’을 도입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LG유플러스가 상반기부터 수도권 외 지역구 지원자를 대상으로 하는 발표면접인 ‘캠퍼스캐스팅’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KT는 스타오디션과 함께 직무관련 특이한 경험이나 역량을 가지고 있는 인재를 선발하는 달인채용을 채택했고, AK그룹도 열정캐스팅을 통해 차별화된 능력과 경험 보유자를 선발한다.


롯데그룹도 올해 5월 처음으로 발표형식의 ‘스펙태클전형’을 추가한데 이어 10월에도 두 번째 스펙태클전형을 모집했고, 현대백화점그룹도 하반기 공채를 앞두고 ‘워너비 패셔니스타’라는 이름의 스펙타파 오디션 전형을 도입했다. 학교, 전공, 학점, 어학성적 등 정량적 스펙 대신 에세이를 통해 평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같은 무스펙 전형을 바라보는 취준생들 상당수는 ‘수박 겉핥기’식 채용이라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채용규모가 일반 공채에 비해 적을 뿐 아니라 무스펙을 과시한 신스펙 전형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무스펙 공간, 신스펙으로 메꿔야


한양대 의류학과에 재학중인 A씨는 “무스펙 전형이라는 걸 순수히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들은 서류 전형 시 공모전, 인턴, 영어성적 등을 기입하게 돼 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결국은 눈에 띄는 경험을 녹여서 써야하기 때문에 무스펙 채용이라는 말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또 “물론, 일부 채용 중에서는 서류작성 대신 PR이나 자소서로만 평가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소서에 녹여낼 수 있는 실질적인 경험이 중요해지면서 인턴십이나 아르바이트, 심지어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까지 늘고 있는 실정이다”고 토로했다.


서울 소재 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학생인 B씨도 “최근 내가 서류를 낸 ‘스펙태클 오디션’만해도 (그 진정성을) 실감할 수 없다. 끼와 재능을 보겠다는 명목하게 제출해야 하는 과제물은 수상작과 스펙 명시를 포함한 본인만의 또 다른 ‘스펙’을 요구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그는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취준생들이 무스펙 전형만을 노리기에는 (주어지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비효율 적”이라면서 “일단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스펙들부터 하나하나 따는 것이 요즘 대학생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 시간을 또 쪼개서 대학생이 특별한 활동을 하고, 남들을 놀라게 할 수 있는 뾰족한 성과를 낸다는 것이 물리적으로도 쉽지 않고 따르는 제약도 많다. 무스펙이 아닌 신스펙이라고 본다”고 덧붙이는 등 오디션 채용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무스펙 전형 채용이라도 붙잡고 싶은 취준생들의 심정은 간절하기만 하다. 그만큼 이들이 감내해야하는 취업의 문턱은 높고 험준한데다 아직도 채용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객관적인 스펙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서윤 CDC취업컨설팅 대표는 “해당 채용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선 우선 더 많은 채용기회가 이 전형을 통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면서 “더불어, 서류부터 최종면접까지 기본적인 스펙 요소들을 묻는 전형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20일 말했다.


다만, 박 대표는 “더불어 해당 전형을 도전하는 취준생들도 결국 자신만의 확실한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디션 전형 역시 스펙싸움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고 당부했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