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지방근무 고민하는 이유는?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사진=한국경제DB)


#대학교 채용설명회에서 만난 A군은 이공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금융 직군으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이유를 물으니 “지방에 내려가 근무하기가 싫다”고 잘라 말했다. 지방에 연고도 없고, 친구도 없기 때문에 나 홀로 직장생활을 하는 것 보다 차라리 취업 준비를 더해 서울에 남으려고 하는 것이다.

A군은 “(자랑은 아니지만)요즘에는 이공계 출신을 상대적으로 많이 뽑기 때문에 문과보다는 취업이 쉽다”며 “하지만 4년 동안 공부한 것을 버리면서까지 직업의 방향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서울에 있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서울 소재 사립대 기계공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B양 역시 지원한 기업에 합격했을 경우, 지방으로 발령 받을까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서울에 있는 부서로 지원하기는 했지만 회사 방침 상 지방으로 순환근무를 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 특히 대기업 공장이 대부분 지방 산업단지에 있고, 공기업의 지사들 역시 지방으로 이전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지방근무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B양은 “지방으로 내려가면 새로 집을 구해야 해서 주거비 부담도 크지만 아무 연고 없이 덩그러니 혼자 지내는 게 제일 걱정스러운 문제” 라고 말했다.

A군과 B양의 사례처럼 서울 및 수도권이 고향인 일부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이 지역 근무를 기피하고 있다. 전공을 포기하면서까지 최대한 지방 근무를 피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이들이 지방근무를 기피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현재 거주하는 곳을 벗어나 연고가 없는 생소한 지역에서 생활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다.


또 다른 이유는 대기업?공기업 등에 취업했지만 지역순환근무나 지방근무로 발령받아 적응에 실패해 중도에 회사를 그만두는 일을 줄이고 싶어서다. 선배들을 봐도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 취업해 부러움을 샀지만 갑자기 지방으로 발령 받아, 적응에 실패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노라하는 에너지 공기업에 취업한 C 씨의 경우 기숙사 생활이 싫어서 ‘탈출’을 감행, 서울에 있는 사기업에 들어갔다가 회사가 다시 신도시로 이전해 서울 살이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렇게 될 경우 기껏 신입사원을 뽑아놓은 기업 입장에서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때문에 기업에서도 면접을 볼 때 지원자들에게 지방근무가 가능하냐는 질문을 하지만 지원자 모두 다 일단 붙고 보자는 식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때문에 합격시킬 수밖에 없다는 게 인사담당자의 설명이다.

지방기피 현상이 만연해 지면서 일부 기업들은 자구책 마련에 들어갔다. 자사 생산 공장이 있는 지역의 인재를 더 많이 채용하기도 하거나, 신입보다는 수시채용 등을 통해 경력직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반면, 일부 기업들은 지방 기피 현상을 역이용, 유능한 취준생을 뽑기 위해 수도권 근무를 대 놓고 홍보하면서 인재 채용 나서기도 한다. 한 제약 회사는 연구센터를 비롯한 본사가 서울과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구직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방근무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조언한다. 자칫 무절제한 소비로 사회생활 초반 재테크에 지장을 받을 수 있는 신입사원들에게 지방근무는 과소비의 유혹을 원천 차단하는 ‘보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정을 갖기 전인 사원시절에 지방근무를 먼저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 다시 내려갈 확률이 적기 때문이라는 점도 지방 근무의 장점으로 꼽는다. 이밖에 최고 경영진이 수시로 점검을 하는 본사와 멀리 떨어질수록 상대적으로 덜 빡빡한 분위기에서 회사에 적응할 수 있는 것도 지방 근무만의 매력이다.


지방 사립대 이공계 출신인 박지현(37?여)씨는 현재 경북 구미에 위치한 외국계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워 부모님께 그만둔다고 으름장을 놓고 울기도 했다” 며 “하지만 뭐든지 마음먹기에 달렸다. 글로벌 취업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고 전국이 일일 생활권인데 지방이라고 기피하는 것은 핑계 내지는 배부른 소리”라고 강조했다.

정유진기자 jin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