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학기술대학교.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 촬영지라는 말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갔는데 정문에는 맥도날드만 덩그러니, 운동장에는 사람 하나 없다. ‘남주혁, 김고은’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대학교에 대학생이 없는 건 좀 이상했다. “왜 캠퍼스에 학생이 없지?”


찾았다. 캠퍼스에 없는 학생들이 모두 여기에 있었다. 학.생.식.당. 들어서자마자 남학생으로 바글바글.


“여기 남고야?”

“남녀 비율이 7:3이래요. 거의 남고 수준이에요”


남학생들 틈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학생이 많은 탓인지 학식도 기본이 밥 2공기다.


나랑 학식 먹을래 7화.“그 많던 예술대학 선배들은 전부 어디에 계신가요”

l 서울과학기술대 ‘학생식당’ 안심까스와 참치마요(각 3,000원 3,500원)


학식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물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좀 만나고 싶어요”


[ 미대 나와서 우리 뭐 먹고살지 ]


예술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은 작업실에서 꼼짝 않고 작품 활동을 하거나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거나 전시회를 보러 다니며 자유롭게 대학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스키니버드양(*긴 생머리에 하얀색 스키니를 입었다. 교양서적 들고 살랑살랑 캠퍼스를 거닐 것 같은데 매일 새벽같이 학교에 나와 공부하는 얼리버드. 부지런둥이!)을 만나기 전 까지 미대, 음대에 다니는 대학생에 대한 나의 그릇된 태도는 그러했다.


스키니버드양은 1학년 때부터 2년 동안 ‘진로만’ 고민했다. 입학 후 첫 수업에서 받은 질문이 발단이었는데


“너네 졸업하고 뭐 할 거니? 한 명씩 말해볼까?”


대학에 들어왔으니까 지금부터 생각해 보려고 했던 걸 교수님이 첫 시간에 물어본 거다. 다른 친구들은 대충 둘러서 이야기했지만 스키니버드양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지금부터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날 이후 예술고 친구들이나 과 친구들을 만나면 매일같이 이 주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뭐 먹고살지?”


[ 그 많던 예술대학 선배들은 전부 어디에 계신가요 ]


중학교 3학년 때 갑자기 그림 그리는 게 좋아졌다. 예고에 가고 싶었다. 학교에는 병결 핑계 대고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도시락 2개씩 싸 들고 학원 다니며 그림만 그렸다.


예고에 합격했다. 예고에 가서도 미대 입시를 위해 매일 공부했다. 새벽 6시부터 도서관에서 공부했는데도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했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작해 2014년 3월 대학이라는 섬에 도착했다.


섬. 섬이었다. 작가를 양성하는 파인아트(순수미술)-서양화과에 오긴 했지만 막막했다. 그림을 계속 그리며 작가 활동을 해야 할지, 대학 이후에 먹고 사는 걱정을 해야 되니까 사회생활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쪽배여도 좋다. 다만 몇 명이라도 선배들이 이 섬으로 우리를 보러 좀 왔으면.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은 종종 만나 이야기를 듣긴 하지만 그분들은 처음부터 작가의 길을 선택한 분들이다. 다른 길을 생각해보지 않으셨던 것 같다.


미대를 나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은 어디 계신지 만날 기회가 아예 없었다. 혼자 끙끙 앓다가 1학년 여름방학 때는 무작정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대외활동을 전부 했다. 미술 전시관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거기서 들은 대답이라고는


“미대 나와서는 무슨 일해?”

취업할 거면 “무조건 대기업 가” 이런 말이 전부였다.


[ 장난감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


나랑 학식 먹을래 7화.“그 많던 예술대학 선배들은 전부 어디에 계신가요”


대외활동과 아르바이트를 전부 그만둔 스키니버드양은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성적을 꼼꼼히 살폈다. 내가 잘 하는 건 뭘까? 평생 작가로 살 수 있을까? 사회에 나간다면 뭘 해야 할까?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머릿속에 이런저런 물음표를 그리며 눈앞에 성적표를 곰곰이 살피던 어느 날, ‘장난감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촉각. 성적표가 정답은 아니지만 같은 작품도 교수에 따라 A+를 받기도 하고, C를 받기도 하는 미대 성적표는 분명 유의미했다. 그런 유의미한 성적표에서 촉각을 사용하는 조소나 만들기 관련 수업은 대부분이 A 이상이었다. 평소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아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자격증 공부도 했다. 그렇게 연결고리를 만들다 보니 ‘장난감’이라는 키워드가 나온 것이다.


2학년 2학기, 스키니버드양이 미대라는 섬에서 만들어 낸 것. 현재는 거기까지다.


들어주는 게 목적이지만 쪽배라도 보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우선 우리가 흔히 아는 사람 중에 미대를 나와 작가(화가)가 아닌 길을 택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검색했다. 유명인으로는 가수 빈지노, 혁오밴드의 오혁, 개그우먼 이국주, 디자이너 황재근, 영화감독 이준익 정도가 있었다. 작가이긴 하지만 화가가 아닌 웹툰 작가 무적핑크의 경우도 미대를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쪽배가 아니라 여객선 급이었다. 그렇다면 평범한 직장인 중에는 없을까? 대표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명 있었다. 네 다리 건너면 모두가 이웃사촌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두 다리 건넜더니 동덕여대 서양화과 졸업생을 만날 수 있었다. 현재 3년 차 직장인으로 책 만드는 편집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해서 스몰 인터뷰와 함께 조언을 부탁했다.



[ 특별 인터뷰: “미대 나온 선배 여기 있어요” ]


툴을 다룰 수 있어야 인턴도 할 수 있어요. 미대는 포토샵을 안 배워요. 저도 중학교 3학년 때 사촌 언니에게 3일 배운 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어느 회사도 인턴으로 써주지 않았죠. 면접 기회가 한 번 있었는데 거짓말을 했어요. 어떤 툴이든 다룰 수 있다고.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못 참고 전화해서 “혹시 저 탈락했나요? 정말 혹시라도 그 자리 결원되면 연락 주세요”


정말 신기하게 뽑힌 사람이 며칠 만에 나가는 바람에 제가 출근하게 됐어요. 툴을 못 다루니 뭐 어떻게 해요. 도형 만드는 것부터 하나하나 검색해가면서 해나갔죠.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시작한 회사에 지금도 다니고 있네요.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것도 도움이 돼요. 2학년이면 시간이라도 좀 있는 편이에요. 4학년 되면 졸업작품 한다고 바빠서 정신없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졸업이고 그렇게 졸업하면 취직 못 해서 1-2년 놀기 쉽고 그러면 더 힘들어져요.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전체의 반 정도는 대학원에 갔어요. 하지만 취직은 또 다른 문제였어요. 전공은 살려야 하는데 취직이 안되니까 결국 미술학원 선생님이나 공방에 취업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차리는 게 아니라 시간제).


하고 싶은 것만 쫓아왔는데 또 하고 싶은 걸 찾아야 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죠.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 정도가 선배로서의 최선인 것 같아요. 그래도 마음속에 예쁘게 피운 예술 꽃은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다시 활짝 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며 일해요. 시들지 않도록 잘 가꿔 봐요 우리. 힘내요.


기획·글 캠퍼스 잡앤조이 nyr486@hankyung.com

그림 BOXI(웹툰 '여대생의 정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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