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취재하다 보면 전국에 많은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대개 성적이 우수하거나, 자격증이 많고, 교내 활동이 활발한 학생들을 취재원으로 만나게 된다. 취재원인 학생을 직접 발굴하기도 하지만, 종종 학교에서 추천을 받기도 한다.


보통 학교에서의 추천은“우리학교에서 가장 공부도 잘하고, 자격증도 많아서 좋은 데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취업담당 선생님들의 뻔한 멘트로 물꼬를 튼다. 마음 같아서야 추천받은 모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여건상 실제 취재로 이어지는 학생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수치로 보면 기사화가 되는 학생들은 전국 특성화고 학생의 1%에도 못 미칠 정도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인터뷰를 했거나 취재 때 만난 학생들을 졸업해서 다시 만나는 경우엔 더없이 반갑다.


[하이틴 잡앤조이 1618] “취업전선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두 달 전쯤인가 종로에서 취재를 마치고 한 편의점에 들른 날이었다. 음료수 한 병을 골라 카운터 앞에서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데, 알바생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 눈빛을 피할 수 없어 바라보니 그제서야 알바생이 씨익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작년 초에 학교 취재를 온 나를 기억하고 인사를 했던 것이었다.


전국 각지의 학교를 다니다보면 잠시 마주쳤던 학생들을 다 기억할 순 없다는 게 나의 정당방위다. 한번은 박람회에서 어떤 중년의 여성분이 저 멀리서 뛰어와 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일단 인사는 반갑게 하고 머릿속으로는 ‘이분이 어느 학교 선생님이신지, 혹 장학사이신지’ 생각하던 중에 당황해하는 내 눈치를 읽으셨는지 다시 자신의 명함을 건네시던 분도 있었다. 참고로 그 분은 취업지원관이었다.


아무튼 편의점 알바생은 그날의 더위를 씻겨줄 만큼 반가웠다. 워낙 갑작스러워 반가움을 더 많이 표현하지 못했던 아쉬움마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불행히도 그 편의점에는 손님이 많은 편이어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3학년 내내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다 취업을 못한 채 졸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학과 성적이 우수해 3학년 초에는 공기업에만 원서를 넣었고, 여름방학이 지나면서 추천이 들어오는 곳에는 거의 다 지원했지만, 재학기간 동안 그 알바생을 불러준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현재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틈틈이 취업준비를 하고 있고, 졸업한 학교에서도 추천 기업을 보내준다면서 웃어넘겼다. 오히려 더운 날씨에 취재하느라 힘들겠다며 나를 위로하는 그 알바생의 인사를 받고서야 편의점을 나올 수 있었다.


지난달에는 하반기 취업에 성공한 특성화고 졸업생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 근교의 은행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고3 때 10번 이상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절치부심으로 은행에 합격한 졸업생 인터뷰였다. 간단히 인터뷰 콘셉트와 사진 촬영 동선을 설명해 주는데, 그 졸업생 역시 두 달 전 편의점 알바생처럼 나를 빤히 쳐다보며 피식 웃는 게 아닌가. 냉큼 기억을 더듬어 보니 2년 전 ‘특성화고 학생들의 꿈’을 취재할 때 만났던 학생이었다. 2년 전만 해도 앳된 여고생이었고, 나중에 커서 연예기획사를 차려 한류스타들을 배출하겠노라 다짐했던 학생이었는데 어느덧 은행원이 돼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적응 중이라며, 인터뷰가 낯선지 사진 몇 컷에도 얼굴이 빨개지는 그 친구에게 너무 반갑고 잘됐다는 인사를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왠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그때의 기분이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 신분이었던 그들이 갓 스무살이 된 지금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회인이 되었다. 제대로 여물지 않았던 고3 때의 시간으로 인해 누군가는 은행원으로, 누군가는 편의점 알바생으로 출발점이 정해졌다.


물론 현재의 선택과 방향이 평생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분명 그 둘의 출발점은 다르다. 그 출발점으로 인해 그들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 그냥 운이 안 좋았을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국내 굴지의 기업가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계기가 있나’라는 질문에 대다수의 기업 오너들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이 일을 할 지 몰랐다’, ‘운이 좋았다’라는 답변이었다. 물론 노력도 뒷받침 돼야 한다.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좋았다가 나빠질 수도, 나빴다가 좋아질 수도 있다. 현재 남들보다 조금 출발선이 뒤에 있다 해도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때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야구선수 요기 베라(Yogi Berra, 뉴욕 양키스)가 말했듯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글 강홍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