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대학교. 버스로 2시간을 달려 도착.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남한산성’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서울보다 하늘은 높고 공기는 맑고 바람은 청명한 것 같았다. 느낌 탓인가? 기분 탓이겠지?


을지대 학생식당은 12시에서 2시까지만 점심학식을 운영한다. “좀 더 늦게 도착할 걸…” 어쩔 수 없이 학생식당이 문 닫아서 남한산성 닭백숙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남한산성의 맑은 정기를 받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면 어떤 이야기든 까르르 웃으며 들었을텐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재빠르게 치킨커틀렛과 소시지 오므라이스를 주문했다.

나랑 학식 먹을래 4화. ″커플통장 하면 당당해져요″

l 을지대 학생식당 치킨커틀렛와 소시지 오므라이스(각 3,500원, 4,000원)


학식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물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남자친구?”


“칵테일 4주 완성, 사랑도 4주면 완성~”

대학생활이 재미없다고 생각되거나 나만 썸이 없다고 느껴지는 날, ‘달려라 나애리’(*첫인상이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나쁜 계집애 나애리’를 닮았다. 하지만 외모만 빼면 모든 일에 열심인 ‘하니’를 닮아)양을 따라 해보자.


달려라 나애리양(이하 애리양)은 재수를 해서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다. 동기들과의 나이차, 장거리 통학, 학과 남녀 비율 1:9 등을 이유로 무척이나 재미없고 재미없고 재미없는 새내기 시절을 보내다 안 되겠다 싶어 대외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칵테일 만들기 4주 완성’이었다.


요즘에는 서치(검색)만 잘하면 대학생 대상으로 운영하는 무료 프로그램이 많다고. 특히 교내 프로그램이 아닌 대외 프로그램의 경우 남녀 성비가 5:5라서 눈만 돌리면 미팅 분위기가 조성되고 군대 갔다 온 복학생, 2, 3학년 여자가 대부분이라 활동 후에도 친목모임이 활발하다고 한다. 애리양은 그렇게 칵테일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커플통장 하면 당당해져요”

300일 정도 만난 애리양과 남자친구는 몇 달 전부터 커플통장으로 데이트 비용을 해결하고 있다. 매달 15만 원씩 모아놓고 데이트할 때마다 남자친구가 데이트 통장 카드로 긁는 식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남자친구가 밥 사고 애리양이 커피 살 때는 메뉴 선택이 조심스러웠는데 커플통장을 하고부터는 당당히 말하게 됐으니까. “우리 오늘 시카고 피자 먹자~”


메뉴 선택의 권리, 영화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건 참 뿌듯한 일이다. 문제는 커플통장 시스템의 치명적 단점을 간과한 것. 본래 통장이라는 건 돈을 차곡차곡 채우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둘의 커플통장은 채울수록 채워야 하는, 밑 빠진 독이었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도 아니고 ‘30만 원으로 한 달 데이트 하기’


언뜻 보기에 별무리 없어 보이지만 여행이라도 한 번 가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난주 애리양은 남자친구와 부산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모든 비용은 커플 통장에서 빠질 예정이었기에 여행을 위해 15만 원씩 더 입금했다.



“알바가 2탕에서 1탕으로 준다는 건…”

‘행복한 2박 3일 여행이었다.’ 에서 끝나면 참 좋겠지만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애리양은 상념에 빠졌다. 애리양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차비며 밥값 등 생활비, 학원비를 충당하고 거기에 커플통장까지 채워나가는 형편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2개 하던 과외가 1개로 줄면서 수입도 반으로 줄었다. 무리해서 간 여행이었던 터라 당장 남은 이번 달이 막막했다. 남은 한 달 어떻게 버티지? 하고 있는데 옆에서 남자친구는 다음주에 중국으로 가족여행을 간다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랑 학식 먹을래 4화. ″커플통장 하면 당당해져요″


“서울역 내려서 환전을 해야 한데요. 중국으로 4인 가족여행을 가는데 3박 4일에 200만 원을 환전한다는 거예요. 순간 저도 모르게 화가 났어요. 남의 집 여행 가는 데 왜 제가 화가 난 건지… 티는 안 냈지만 표정은 못 숨겼던 것 같아요. 남자친구는 용돈 받아서 생활하거든요. 은연중에 그런 것들을 신경 쓰고 있었나 봐요. 남자친구랑 나랑은 다르구나… 하면서 말이죠”



“말하기 겁나요”

보통 커플통장은 누가 제안할까? 여자? 남자? 1화 순딩양의 경우 순딩양이 먼저 제안했다고 했는데 애리양의 경우는 남자친구가 “커플통장 하면 좋은 점이 많다”며 먼저 제안했다. 남자친구가 먼저 제안했는데 이제 와서 내 생활이 어려워 못하겠다고 말하기는 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남자친구가 나를 그 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까 두렵기도 하다는 게 애리양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애리양의 심적 고민에 대한 조언 대신 커플통장 팁을 전해주며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다.


<캠퍼스 잡앤조이가 알려주는 커플통장 활용TIP>


#’공동의 부담’을 적극 활용하자

커플통장의 최대 장점은 ‘각자의 부담’이 ‘공동의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순딩양이나 애리양의 경우 여자의 메뉴 선택권에 대해 극찬했지만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데이트를 경제적으로 리드할 수 있다. 간단하게 먹고 영화 앤트맨 보고 싶은 날이다. 각자 부담할 적에는 밥은 내가, 영화는 여자친구가. 밥도 맛있는 거, 커피도 한 잔, 영화에 팝콘까지… 못해도 4-5만 원은 깨진다.

커플통장으로 공동 부담할 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오늘은 간단하게 먹고 영화 보자.”


#’거지’돼도 괜찮아. 추가입금은 하지 말자

애리양과 남자친구의 커플통장은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샘에 물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통장 안에 돈 또한 마를 새 없이 서로의 돈으로 채워졌다. 각자 15만 원씩 한 달에 30만 원! 정했으면 지키는 게 기본이다. 추가입금은 없어야 한다.


때로는 거지가 될지라도 ‘거지 1, 거지 2’가 아니라 ‘거지커플’이니까 괜찮다. 거지 1, 거지 2에게 오천 원씩 쥐어줬을 때 할 수 있는 건 각자 소주와 새우깡을 사서 각자 어느 공원 벤치에서 마시는 게 전부지만 거지커플에게 쥐어주면 ‘만 원의 행복’을 찍을 수 있다. 그것도 하루 종일.


#’최소 놀이공원 50%할인’ 개설할 때 한번쯤은 살펴보자

보통 내가 쓸 체크카드 만들 때는 교통카드 할인, 휴대폰 요금할인 등등 재고 따지면서 커플통장 개설할 때는 둘 중 한 명의 주거래 은행에서 만들거나 심지어 눈 앞에 보이는 은행에 들어가 즉흥적으로 개설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오래 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둘이 합쳐 한 달에 30만 원이 넘는다면 은행 별 혜택은 꼭 체크해보자.


커플 통장 개설 전에 우선 데이트 패턴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소 데이트하면서 자주 가는 영화관이나 카페가 분명 있을 것이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놀이공원이나 워터파크 계획이 있을 것이다. 이런 데이트 패턴을 찾아 은행별 체크카드 혜택과 비교해보고 커플통장을 개설하자. 최소 1년에 1번 한국민속촌은 무료로 갈 수 있다.


시작할 때 한 번만 신경 쓰면 그 후로는 자동으로 할인이 되거나 포인트가 쌓여 데이트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은행별로 가계부 앱도 많이 이용하는 추세다. 둘이 함께 한 달 생활을 점검해보며 꽁냥꽁냥 소꿉놀이도 가능하다. 커플통장, 즐겁게 쓰자.


기획·글 캠퍼스 잡앤조이 nyr486@hankyung.com

그림 BOXI(웹툰 '여대생의 정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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