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버스를 탔다. 분명 신촌기차역에서 학교가 보였는데 이대부중 -> 이대부고 -> 다시 이대부중. 둘러서 간다. 어지럽다. 학교 앞에 내렸는데 심지어 공사판이다(개강 전에 마무리된다던데 지금쯤이면 마무리됐겠지?). 어렵사리 학생회관 1층 ‘부를샘’에 도착했다.


오늘의 메뉴는 몽골리안 치킨덥밥과 함박 햄버거 스테이크. ‘몽골리안 덮밥’이라는 이름이 낯설어 인스타그램에서 검색(#몽골리안덮밥)했더니 250개가 넘는 비주얼의 향연에 침이 꼴깍. 라멘이랑 같이 파는 걸로 봐서 일식이구나 했다가 피자와 함께 찍힌 사진을 보고는 ‘네가 바로 퓨전이구나?’ 했다.


나랑 학식 먹을래 2화. "공대생은 광고/마케팅 공모전 하면 안 되나요"

ㅣ 연세대 부를샘 몽골리안덥밥과 함박햄버거스테이크(각 4200원, 4300원)


학식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물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이성요? 음… 이성은 없어요”


오히려 내가 말문이 막혔다.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성은 없다’고 하면 보통 어떻게 생각할까? ‘그럼 뭐야, 동성을 만난다는 거야?’ 물어볼까 했지만 초반부터 드립 치면 조용히 학식만 먹고 헤어지게 될 것 같아 관뒀다.


‘코딩이란?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안티코딩군(*학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나 코딩이 싫어 진로를 바꿨다는 말이 머리 위를 윙윙거려서)은 4년 전 공대에 입학했다. 입학 후 1, 2학기는 학교 수업에만 충실했다. 공대 아름이조차 없었던 탓인지, 고등학교 시간표를 방불케 하는 학과 커리큘럼 탓인지 24시간이 모자라게 도서관만 들락날락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안티코딩군은 ‘진로 고민’에 빠졌다. 학과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코딩’이라는 분야에 대한 복잡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코딩’이라는 분야는 아무리 해도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스멀스멀 가슴팍을 파고들었다고. ‘발버둥 칠수록 멀어지는 느낌’이라며 시적 표현까지 동원해도 못 알아듣는 표정을 짓자 공대생들이 코딩 하면서 느끼는 대표적 감상을 말해줬다.


감상 1. “에러 없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세 번째 것만 작동하는 거예요.”

감상 2. “되는데 이유를 몰라요.”


사실 공감이 안 됐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가지고 뭔가를 만드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유를 모른다니.. 코딩은 예술인가?’ 지식의 밑천이 드러나려던 참에 안티코딩군이 말했다. “어쨌든 코딩 천재들은 따로 있어요. 그리고 저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공대생은 광고/마케팅 공모전 하면 안 되나요”

2학년이 된 안티코딩군은 공대생 신분을 잠깐 내려놓기로 했다. 문과계열 학생들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마침 커뮤니티에서 <대외활동, 공모전 멘토링>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는데 ‘무료’라는 말에 재빨리 신청했다. 4주간 온라인으로 마케팅과 관련된 미션을 줬다. 미션을 업로드하면 댓글을 달아주고 멘토링을 해줬다.


오프라인으로 특강도 하고 온라인에서 만난 대학생들과 아모레퍼시픽 마케팅 공모전, 탐앤탐스 광고 공모전도 참여했다. 공대생이 마케팅, 광고를 왜 하느냐는 질문만 수십 번 받았다. 오히려 안티코딩군 눈에는 문과생이 광고 디자인도 직접하고 장비 들고 영상 촬영에 편집까지 하는 게 더 이상해 보였다고.


“2015년 9월부터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보산업공학과 학생이에요”

공대생으로 돌아온 안티코딩군은 달라졌다. 우선 코딩 관련 과목은 필수가 아닌 이상, 다 제외했다. 교수님에게 찾아가 상담도 해보고 부모님에게도 상황을 털어놨다. 나이를 생각하면 당장 군대도 가야 했다. 어떤 선택이든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그렇게 내린 최종 결론은 ‘1학년 한번 더’.

나랑 학식 먹을래 2화. &quot;공대생은 광고/마케팅 공모전 하면 안 되나요&quot;


8월 마지막 주 안티코딩군은 졸업했다. 하지만 9월이면 다시 1학년이 된다. 대학원생 1학년. 학부 1학년 때부터 고민했던 진로의 종착점이 대학원으로 이어진 셈이다. 학교는 대학로 쪽에서 신촌 근처로 옮겨 등 하교 동선은 달라졌다. 그렇다면 전공은? 대학원은 문과로 간 걸까? 코딩이 싫다고 했으니까?


“코딩이랑 관계있긴 있는데 분석 코딩이랑 앱 만드는 코딩은 달라요. 메인은 코딩이 아니라 데이터 분석 이예요” 전문용어를 쓰면 분명 못 알아들을 나를 위한 안티코딩군의 답이었다. 커뮤니티에서 잠깐이지만 마케팅 맛을 보고 다시 학부로 돌아와 선택한 결과가 지금의 연구실이라고.


마지막으로, 비싼 대학원에 장기간 임하는 각오를 들으며 짧지만 굵었던(대학 4년 6개월 이야기를 호로록!) 학식타임을 마쳤다.


안티코딩군의 속풀이타임

처음에 연세대학교 학비가 비싸다고 해서 걱정이었어요(사실 이런저런 이유로 카이스트도 썼는데 서류부터 떨어졌어요. 너무 높은 벽이었나 봐요. 그래도 떨어지면 3만 원 환불(?)해준 덕에 치킨 사 먹었어요.). 다행히 연구실 인턴으로 일하게 돼서 학비는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대 식당에서 먹으면 점심도 공짜로 먹을 수 있고요!


입학도 안 했는데 방학 때부터 8시 30분 출근, 늦으면 8~9시에 퇴근해요. 대학원생은 다 이런 건가요?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막막하지만 5년 후가 될지, 6년 후가 될지 모를 다음 졸업을 위해 신촌에 박혀 열심히 연구하겠습니다. 근데 대학원도 방학 때 학교 안 가나요? 여자친구 아직 없는데.. 사귈 시간.. 있겠죠?


기획·글 캠퍼스 잡앤조이 nyr486@hankyung.com

그림 BOXI(웹툰 '여대생의 정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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