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기출

서희 장군의 담판

독도를 앞에 두고 서희를 그리다


[인문학 기출] GS리테일 2차면접 “자신있게 소개할 만한 역사적 사건은?”



자신 있게 소개할 만한 역사 사건이 있다면 이유와 함께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GS리테일 2014년 하반기 2차 면접 문항)



어릴 때 서희 장군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때 든 생각은 ‘소손녕이 정말 강동6주(280리)를 고려에 돌려주고 빈손으로 돌아갔을까’ 하는 것이었다.


철든 뒤 다시 살펴보니 서희의 외교협상력의 우수함에 기인한 것이지, 결코 소손녕이 어리석어서인 것은 아닌 듯하다. 소손녕은 필요한 대답을 들었고,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돌아갔다. 물론 서희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고려는 더 빨리 멸망했을 것이다.


당시 거란은 송을 제압하기 위해 송과 교류하는 국가를 우선 위협했다. 거란은 조공을 바치고, 사신을 왕래하는 조건을 내걸고 소손녕을 앞세워 침입해 왔다. 성종은 거란과 대적할 수 없음을 알고 ‘할지론’(서경 이북 땅을 베어주고 철령을 경계로 삼는다)을 따르려 했으나 적장의 의도를 간파한 서희는 소손녕과 담판했다.


이 담판에서 소손녕은 침입의 이유로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음에도 우리가 소유한 고구려 땅을 침식하고 있으며, 거란과 땅을 연접했으면서도 바다 건너 송을 섬긴다”는 점을 들고, 따라서 “땅을 베어 바치고 조빙(조공과 사신교류)을 닦으면 무사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서희 장군의 명쾌한 답변


이에 서희는 “우리나라는 고구려를 옛 터전으로 했으므로 고려라 이름하고, 평양을 도읍으로 한 것이다. 압록강 안팎도 역시 우리 경내였는데, 여진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어 길이 막혀 그 어려움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심하다. 조빙을 통하지 못한 것은 여진 때문이다.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찾아 성보(城堡)를 쌓고 길이 통하게 된다면 감히 조빙을 닦지 않겠는가”라고 답변했다.


서희의 당당하고 조리 있는 변론을 들은 소손녕은 군사를 돌리고, 약속대로 고려가 압록강 동쪽 280리의 땅을 개척하는 데도 동의해 강동 6주를 개척할 수 있게 됐다.(출처 : 한국 고중세사 사전)


지금도 우리는 일본과 영토분쟁을 하고 있다. 물론 일방적 주장일 뿐이지만, 일본은 이런 주장을 통해 자국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의 독도문제를 서희와 같은 외교전문가가 나타나 우리에게 유리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흔히 ‘한국사람은 협상능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문제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감정을 내세워 손해 보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상대의 숨긴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만 하면 ‘싸우지도 않고 이기는 협상’의 기술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서희 장군을 통해 그 사실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글 이동우 롯데중앙연구소 HR L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