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 싫다는 청년

열정페이 강요하는 청년


1995~2000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툴이 국내에 도래하면서 여기에 뛰어들고자 나선 신생 벤처기업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그만큼 또 많은 수가 자취를 감췄다. 이른바 ‘닷컴 버블’이었다. 소규모 벤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과정에서, CEO들은 살아남기 위해 직원들의 노동력을 활용했다. ‘1000만원대 연봉, 일 15시간 근무’는 점점 당연시됐다.



서울 구로동
/강은구기자egkang@hankyung.com 2013.2.6
서울 구로동 /강은구기자egkang@hankyung.com 2013.2.6



당시, 이 같은 살인적인 근무환경, 저임금에 반기를 든 일부 근로자들 사이에서 노조설립 바람도 일었지만 현실화는 어려웠다. 벤처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성장가능성을 보고 출사표를 던졌던 수많은 젊은이들은 현실 앞에서 고개를 떨궈야 했다.


그리고 10여년 뒤, 이번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발달을 등에 업은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벤처시대가 찾아왔다. 2015년의 젊은이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스타트업을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직장이라 인식해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시 10여 년 전과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올 초 불거진 한 우량 벤처회사의 채용 갑질 논란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어느 스타트업 인턴 경험자의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어플리케이션 기반 스타트업에서 단기 인턴을 했습니다. 요즘 스타트업에 환상을 가진 학생들이 많은 것 같아요. 스타트업에 지원하는 분들 대부분이 학벌도 좋고 고스펙이 많고요. 하지만 스타트업에 지원하기 전에 스타트업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열정페이면 오히려 다행, 무급 인턴도 수두룩


제가 일했던 곳은 지원 모집 공고 당시 ‘회사 내규에 따름’, ‘협의’ 이런 식으로 급여에 대한 정보를 아예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서류 작성하고 면접 보고 합격해서 입사한 후에 급여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가장 중요한 정보를 최소한 면접 때는 알려줘야 하는데 입사한 당일에 알려줬습니다.


이 스타트업 인턴이 되기 위해 포기했던 다른 수많은 인턴 기회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 5일 근무 아침 9시~저녁 6시까지 한 달간 근무하고 받은 돈이 얼마인 줄 아시나요? 출퇴근 교통비 7만원이었습니다. 출퇴근 교통비를 네이버 지도 등에서 계산해서 나온 데이터에 기반해서 1원 단위로 계산됐죠.


저를 포함한 다른 인턴들도 급여에 불만이 많아 결국 대표와 상담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대표는 "스타트업의 현실이 다 이런 것을 알고 들어온 줄 알았다, 면접 때 말 못했던 것은 내 잘못이다, 본인도 급여를 안 받고 다른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타트업이 급여가 중견 및 대기업에 비해 적은 것은 당연합니다. 거기다 인턴이면 더 적겠죠? 그래도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급여가 적다’는 기준이 있잖아요. 딱 교통비만 지급해 주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요?


한 달간 제 노동력의 댓가가 7만원이라니요... 거기다 인턴을 경험 및 경력쌓기 뿐 아니라 생계 수단으로 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의 현실은 외면한 채, 아직까지도 인턴을 모집할 때 급여 공개를 하지 않는 그 스타트업에 화가 납니다. 급여를 공개하더라도 정말 경험을 쌓고 싶은 인재들은 급여를 포기하더라도 지원을 합니다. 하지만 한 달 급여가 정말 절박한 학생들도 있습니다. 스타트업 대표 또한 20대인데 20대가 같은 20대를 착취하는 구조였네요.

둘째, 주먹구구식 업무 분담, 과연 배울 게 많을까?


스타트업은 확실히 업무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운영되는 것 같지만 주먹구구식도 많죠.


스타트업을 크게 둘로 나누자면, 대표가 아무런 업무 경험 없이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을 한 경우(주로 학생)와 필드에서 다년간 경험을 쌓고 창업을 한 경우(주로 30~40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일지도 모르지만 리스크가 클 뿐 아니라, 그들 또한 나와 같은 학생이기 때문에 업무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후자와 같은 스타트업으로 지원하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언급을 했는데, 제가 다녔던 스타트업은 대표가 독불장군 스타일이었습니다. 소통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 대표의 의견으로 마무리 되는...

스타트업을 지원하시기 전에, 급여가 중요하신 분들은 꼭!! 메일로 급여를 물어보세요. 그리고 직무로는 영업을 추천합니다. 영업은 다른 직무와 달리, 크게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도 배울 수 있고 그 경험이 나중에 취업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잡플래닛’같은 사이트도 찾아서 내가 지원하려는 기업이 어떤지 꼼꼼히 찾아보시길 바랄게요.


스타트업=열정페이?


‘급여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장의 연봉 5천만 원이 아닌 기업가치 5조원을 보고 함께 할 지원자를 찾습니다. 열정을 가진 청년들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스타트업 입사하면 열정페이를 드립니다”

한 개발자 모임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스타트업 채용공고. 사진=커뮤니티 캡처



올 초 한 스타트업 대표가 채용공고에 게시한 이 문구는 여러 커뮤니티에 회자되며 “국내 대다수 스타트업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는 혹평을 받았다.


해마다 수많은 청년들이 스타트업에 몰리는 이유는 이들 기업의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스타트업의 물리적인 근무환경은 청년들의 바람을 비껴가기도 한다.


* 소정의 급여와 열정페이를 드립니다.


* 초기에는 기초적인 생활비 정도만 지급 가능합니다. 하지만 팀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고 사업의 최종 결과에 따라 거액을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스스로 열정페이에서부터 시작해서 함께 이윤을 분배할 분들을 모십니다.


* 스타트업 창업 멤버구인이라 급여나 복지혜택은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 석박사급을 기대하는 게 사실입니다만, 젊은 분들에겐 6개월 만에 석사급 이상을 학습할 의지와 열정이 보고 싶습니다.



이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막연히 ‘열정’이 있으니 급여가 없이도 근무해야 한다든가, 급여보다는 성장가능성을 보고 입사하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곳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열정페이’라는 공식을 구직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스타트업이 아무리 열정을 기반으로 커간다고 해도 근로자에게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을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년차에 연봉 2천만원


지난해 8월 한 스타트업에 2년차 웹개발자로 입사했던 A씨는 몇 개월 안 돼 회사를 그만뒀다. 기대와 현실이 많이 달랐다는 것이 이유다.


4인 규모의 스타트업 회사였는데 이름 그대로 ‘시작하는 곳’인 스타트업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마주한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는 것. 그는 “대표가 직원들에게 창업멤버들이 만들어 놓은 매뉴얼대로 맞추기를 강요했다. 결국 일반기업과 다른 점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연봉이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다. 당시 2년차인 그에게 주어진 연봉은 퇴직금을 제하면 약 2천만원이었다. 거의 매일 하루 반나절씩 일했던 것에 비하면 최저시급도 안 되는 액수였다.


또 다른 5년차 웹개발자 B씨도 경기 소재의 한 IT업체에서 이직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이 업체 대표가 그에게 제시한 금액은 2천700만원. 현 직장에서 3천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일하던 그는 “스타트업의 근무 여건을 절감하게 됐다”고 전했다.


스톡옵션도 잘 살펴봐야


당장 자본이 없는 스타트업은 급여를 인센티브나 스톡옵션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 앞선 사례의 ‘사업의 최종 결과에 따라 거액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이 같은 실적 중심 급여체계는 해외의 많은 벤처회사들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고정된 급여가 아닌 자신의 능력을 자율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급여형태를 선호하는 청년들도 많다.



“스타트업 입사하면 열정페이를 드립니다”



하지만 간혹 지분분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 스타트업 공동창업자 박해령 씨(29)는 일 년 만에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 지분분배 과정에서의 불협화음 때문이다.


창업단계에서 받은 스톡옵션만 믿고 무급으로 회사의 성장만을 위해 일했던 그는 최근, 대표로부터 ‘수익을 분배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의 업무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분을 전액 회수한 뒤 원금만 돌려주겠다고 한 것. 현재 박씨는 그동안 근무한 데 따른 정당한 보상이라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밖에도 기업안정성이 약하다 보니 기업이 갑자기 도산하거나 아이템을 급작스럽게 변경하면서 인력을 갈아치우는 경우 등 다양한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눔코리아에서 채용을 담당하고 있는 류성곤 매니저는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채용 과정에서 무급을 요구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며 "급여나 복지 등 직원에 대한 배려가 선행된 기업인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 매니저는 성장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관련 웹사이트나 미디어를 계속 주시할 것'을 추천했다. 그는 "로켓펀치, 데모데이 등 스타트업 전문 포털사이트나 플래텀, 벤처스퀘어 등 관련 미디어를 보면 기업의 매출이나 영업현황을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