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환 로킷(ROKIT) 대표

“3D프린터는 문화를 읽어야 하는 기술”





3D프린터는 전 세계적으로 ‘미래’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분야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3D프린터를 미래산업분야로 여긴다. ‘로킷(ROKIT)’의 실적이 더욱 빛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한국의 IT 대표(Republic of Korea IT)’라는 뜻의 로킷은 2013년 출범한 3D프린터 제조기업으로, 국내 기술력만으로 호주,영국,중국,싱가포르,네덜란드 등 17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성과를 보이며 설립 첫해 1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설립 1년여 만에 세계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유석환 로킷 대표를 만나 3D프린터에 대한 모든 것을 물었다.






3D프린터의 열풍이 엄청난 듯해요. 국내 상황은 어떤가요?

국내에서 인정할 만한 3D프린터 제조기업은 3개 정도가 있어요. 우후죽순처럼 관련 산업을 다루는 기업이 출범하고 있지만, 기술력이나 파급력에서 아직은 힘이 모자란 상태죠. 사실 3D프린터는 30년 전 처음 등장했어요. 차이점이 있다면, 그때는 모형을 만드는 것에 그쳤죠. 게다가 가격이 너무 비쌌고요. 지금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지만, 과거 PC가 대중화하며 저렴해진 것처럼 3D프린팅 기기도 저렴해질 거예요.




30년 전에 등장한 3D프린터가 갑자기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이유가 궁금해요.

3D프린터를 ‘3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세계는 3D프린터 돌풍이에요. 3D프린터를 3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이유는 1,2차 산업혁명을 살펴보면 알 수 있어요. 1차 산업혁명 때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자원을 가져다 가공해 판매하는 방식이었어요. 2차 산업혁명 때는 자원 유통의 문제가 있어 기계를 만들었죠. 이때는 같은 물건을 얼마나 빠르게 만들고 저렴하게 파느냐가 중요한 문제였어요.

2차 산업혁명이 후 모든 것이 자동화, 기계화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점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제조업의 매출은 늘어났지만, 일자리가 점점 줄어갔죠. 이를 인식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2013년 연두교서에서 일자리 창출의 효과적인 수단을 3D프린터라고 언급하며 ‘3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죠.




3D프린터가 대중화되면 제조업이 위축될 텐데, 그러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아닌가요?

3D프린터로 맞춤생산하면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제조업의 패러다임이 바뀔 거예요. 예를 들어볼까요? 3D프린터로 자동차를 만들어 기존 자동차보다 저렴하게 판매할 수는 없겠죠. 대신 기존 자동차의 성능이나 엔진 등 내부는 그대로 두고 디자인만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바꾸면 새로운 제품을 갖게 되는 거예요.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아요. 기술도 어렵지 않고요.

이렇게 누구나 스스로 제조부터 서비스 제공까지 할 수 있다면 창업 진입장벽도 낮아지고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겠죠. 이를 위해서는 3D프린터 대중화가 되어야겠죠.





로킷이 세계 최초로 슈퍼엔지니어링플라스틱 데스크톱 3D프린터를 개발했다고요? 일반 3D프린터와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슈퍼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내열성과 내화학성이 좋아요. 강도도 높고요. 일반 알루미늄보다 1.5배 강한 소재인데, 이 원재료로 3D프린터를 활용해 물품을 만들면 알루미늄보다 강한 제품을 만들 수 있죠. 데스크탑 3D프린터를 만든 것은 로킷이 최초예요. 게다가 가격이 다른 기계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앞서 말했던 것처럼 3D프린터를 대중화하는 것에 좀 더 가까이 와있다고 할 수 있죠.




3억~5억원이나 되는 제품의 가격을 줄이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프린터의 원리는 10년 전과 다를 바 없어요. 레이저 하나로 만든다는 사실은 변함없죠. 그래서 부품도 10년 전 그대로이고요. 전기 에너지를 통해 소재를 녹이는 것인데,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레이저 하나로 작동해야 해서 열이 빨리 올라, 이 열을 식히기 위한 펌프가 필요했죠. 레이저 하나를 작동시키는 데 많은 기구가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나 지금은 다이오드 레이저로 만들기 때문에 훨씬 간편해졌어요. 제품을 이루는 부품, 요소기술 하나하나가 10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를 겪어 제품 크기도 훨씬 줄어들었지요. 이런 부분을 잘 이용하면 충분히 가격을 줄일 수 있죠.




프린터가 대중화하면 우리 삶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겠네요?

결혼할 때 혼수로 3D프린터를 가져가는 날이 올 거예요. 소재가 플라스틱뿐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지금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플라스틱 제품이 굉장히 많아요. 그렇다면, 집의 어떤 부분이 망가졌다고 생각해볼까요? 아파트 관리업체에서 제품의 도면만 제공하고 집에서 언제든 해당 부품을 만들어 고칠 수 있겠죠? 굉장히 편리한 삶이 될 거예요.




각 가정에 프린터가 한 대씩 놓이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보통은 5~1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앞서 예를 든 아파트의 경우 2~3년 정도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3D프린팅은 컬쳐산업이기 때문에 국가 별로 3D프린팅을 활용하는 필요성이 조금씩 달라요. 우리나라의 경우 굳이 집을 만드는 프린터가 필요 없죠. 프린터로 만든 집보다 훨씬 좋은 집들이 많은데 굳이 제작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음식이나 집이 모자라거나 부족한 곳에서 필요한 프린터가 있듯, 니즈에 따라 대중화되는 양상도 달라질 거예요. 이런 면에서 3D프린터는 컬쳐산업이라고 할 수 있죠.




3D프린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우자동차에서 20년을 보내고 미국 보안솔루션 전문업체 타이코?셀트리온헬스케어 대표까지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셀트리온 대표를 할 때 건강이 나빠져 그만둬야 했죠. 이후 등산을 다니며 건강을 회복했죠. 건강해지고 나서 생각해보니 아직도 50대더라고요. 아직 살아갈 날이 한참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죠.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재능 기부’를 떠올렸어요. 제가 가진 지식을 나눠주고 싶었죠. 그래서 국민대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기 시작했죠.

그런데 학생들이 학점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어요. 아무리 재밌는 이야기를 해줘도 학생들은 ‘시험에 나오는지’에 대해서만 물었죠. ‘취직이 이렇게까지 힘드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보다 훨씬 능력 좋은 친구들인데 일자리를 못 구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가만히 둘러보니 우리나라의 부가가치가 없어졌더라고요. 우리나라가 만들어내는 게 없었어요. 선진국의 비즈니스 모델을 그대로 가져다 쓸을 뿐이었죠.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연구·개발분야와 디자인분야가 발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품질 좋고 빠르게 만드는 것은 더 이상 해답이 아니었죠. 양은 많지만, 더 이상 이익이 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우선 디자인을 전공하는 친구들을 만났어요. 공대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수업료가 비싼 경우도 많았고, 졸업을 위해 준비하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는 이 친구들을 활용할 방법이 없었어요.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융합’을 생각했어요. 한국이 IT영역에서 잘하니 IT와 R&D, 디자인을 합쳐봤죠. 결론은 3D프린터였어요. 3D프린터라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요.




3D프린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한 기업을 차리기까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전공자여야만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대학교에서 받는 수업을 생각해보세요. 1년에 듣는 수업 중 교양학점을 빼면 전공은 80학점 정도예요. 겨우 80학점을 듣는 전공 공부를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고 할까요? 대학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지, 전공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산업공학을 전공했지만, 결국 셀트리온 헬스케어라는 기업에서 대표까지 맡을 수 있었어요. 하루에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내내 바이올로지 관련 책을 봤거든요. 그렇게 한 번 하고 나니 3D프린터를 공부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어요.

창조적 세계에서 무지는 축복이에요. 3D프린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아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자부해요. 지금도 매일 6시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은 전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두루 살펴봐요.




로킷은 ‘펀(FUN) 경영’으로도 유명하더군요.

한국기업은 물론 외국기업을 경험하며 각 기업의 장단점을 잘 알게 됐어요. 장점들만 모아 만들고 싶었던 기업이 바로 ‘로킷’이에요.

그래서 제가 경영에서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재능투자’예요. 사회환경을 둘러봤을 때 청년들이 자본주의에서 ‘부자’로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탤런트를 투자하라’는 것이었어요.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힘껏 발휘해보라는 거죠. 그만큼 저는 자산을 주겠다는 것이었고요. 그래서 3개월 인턴생활 포함 입사 6개월이 지나면 어떤 형태로든 로킷의 주식을 나눠주려고 하지요.





청년들에게 한마디

남들이 가는 길과 가지 않는 길이 있으면 대부분은 남들이 가는 길로 따라가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면 ‘망한다’는 생각 때문이죠. 안전한 길은 경쟁력이 없어요. 위험하더라도 경쟁력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해요. 가서 몰입하면 성공할 수 있어요. 물론 두세 번은 실패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성공하는 사람은 없어요. 또 한 가지, 쓸모없는 걱정은 내려놓으세요. 100의 걱정이 있다면 그 중 95는 해결 가능한 걱정임이 분명하니까요.



▲로킷의 3D프린터 브랜드인 '에디슨(3DISON)'시연 영상





글 김은진 기자

사진 김기남 기자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