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단돈 오만 원에 뮤비 제작해드립니다 '해보자영상제작소'


단돈 오만 원에 뮤비 제작해드립니다

'해보자영상제작소'



유쾌 발랄 그녀들이 뭉쳤다! 2030년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을 김혜수 감독과 그런 그녀에게 2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김아진 대표. 비록 지금은 3만 원짜리 고무대야를 사는 것조차 버거울지라도 다가올 미래는 휘황찬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녀들의 이야기.


[꼴Q열전]단돈 오만 원에 뮤비 제작해드립니다 '해보자영상제작소'

해보자영상제작소 김아진 대표(좌측)와 김혜수 감독


무명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재능기부 형태로 제작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해보자영상제작소’의 김아진 대표와 김혜수 감독은 중학교 친구사이다. 처음에는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김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에 김 대표가 푹 빠지며 급속도록 친해졌다.


“혜수가 시나리오 한 편을 써서 반 친구들에게 나눠주었어요. 읽어보니 정말 재미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주인공으로 나서서 같이 영화를 찍었어요. 안타깝게도 완성은 못했지만요.”


영화를 찍겠다는 꿈에 부풀어 3박4일 부모님을 졸라 캠코더까지 샀지만, 출연배우들(반 친구들)이 촬영 도중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며 하차를 선언하는 바람에 김 감독은 아쉽게도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를 열정적으로 지지해주는 절친 김 대표를 얻게 됐다. 그때부터 김 대표는 김 감독을 볼 때마다 “너는 영상을 해야 한다. 소질이 있다”며 그녀의 꿈을 응원했다.



[꼴Q열전]단돈 오만 원에 뮤비 제작해드립니다 '해보자영상제작소'


있어 보이길래 '비영리단체', 진짜로 수익도 0원

“영상을 제작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기도 하고, 뒤늦게 시작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어요. 하지만 아진이가 늘 응원해주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스물한 살에 거금을 주고 영상촬영이 가능한 DSLR 카메라를 구입해 아진이를 비롯한 친구들과 영화를 찍으러 통영으로 떠났어요. 그런데 날씨도 좋지 않고 친구들은 영화촬영보다 여행에 더 목적이 있더라고요. 밤에 저만 빼고 다들 헌팅 하러 나가고….(웃음) 결국 촬영을 마치지 못해 나머지는 서울로 올라와 찍기로 했는데 그 사이에 친구들이 헤어스타일을 모두 바꾼 거예요. 이미 진행한 촬영과 연결할 수 없어진 거죠. 촬영하기 싫어 일부러 그런 듯싶어요.”


그렇게 영화촬영 무산과 함께 김 감독의 영상에 대한 꿈도 사라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1년여 만에 김 대표와 만난 김 감독은 또다시 “영상을 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끝에 ‘해보자영상제작소’를 만들어보자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해보자영상제작소는 혜수를 위해 만들었어요. 혜수가 마음껏 영상을 촬영할 수 있게요. 인디밴드는 자신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뮤직비디오도 얻을 수 있으니 좋죠. 둘이 ‘그래, 해보자’ 하다 이름도 ‘해보자영상제작소’라고 지었고, 직함도 갖고 싶은 것을 맘대로 갖기로 했어요. 그래서 혜수는 감독, 저는 대표를 맡았죠. 저희는 수익도 없는 비영리단체예요. 물론 등록되어 있지는 않아요. 비영리단체, 이런 게 좀 있어보여서 그냥 그렇게 불러요.”(웃음)


곧바로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뮤직비디오 제작 공고’를 띄웠다. 관심 있는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소개, 음원파일, 지원 이유 등을 작성해 지원하도록 했다. 무려 60여 팀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김 대표와 김 감독은 지원서를 꼼꼼히 검토해 총 2명의 뮤지션을 선발했다. ‘하늘소년’과 ‘콧수염유치원’이 30대 1을 뚫고 선발된 행운아들이었다.

“혜수가 스토리보드 만들고, 촬영하고, 편집해 뮤비를 만들어주죠. 최소한의 비용 5만 원만 받고요. 원래는 한 팀만 뽑으려 했는데, 지원자가 많아 두 팀을 뽑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 왜냐고요? 처음 제작한 뮤비가 까였거든요.”(웃음)



[꼴Q열전]단돈 오만 원에 뮤비 제작해드립니다 '해보자영상제작소'

뮤직비디오 촬영 중인 해보자영상제작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첫 작품, 뮤지션은 “마음에 안 들어!”

해보자영상제작소에서 처음 제작한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은 콧수염유치원. 한 달 반이 넘게 공들여 뮤직비디오를 찍었지만 완성본을 본 뮤지션은 “통일되지 않은 느낌과 색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이들의 첫 작품을 공손히 ‘까버렸다’.


“늘 초보자용 편집기만 사용하다 뮤비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더 높은 수준의 편집기를 사용했거든요. 따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 결과물이 거의 습작 느낌으로 나온 거죠. 그래도 정말 많이 공들였는데 마음에 안 든다고 하니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고요.”


그렇게 첫 작품을 가슴에 묻은 채 두 번째 뮤지션 하늘소년의 ‘콩나물국만 먹는 이유’ 뮤비 제작에 몰입했다. 청년들이 돈이 없어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 콩나물국만 먹는다는 가사에 맞춰 스토리라인을 구상했다. 하늘소년이 직접 출연해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잔에 콩나물국을 담아 마시고, 콩나물이 가득 담긴 대야에서 목욕을 하는 등의 재미있는 장면들이 연출됐다.


“영상을 배운 적이 없다보니 원하는 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어요. 야간촬영으로 인한 노이즈가 너무 심해 그걸 없애는 방법만 2주 동안 검색했을 정도예요. 제작비 때문에 원하는 그림을 만들 수 없는 것도 아쉽더라고요. 원래는 콩나물이 가득 찬 수영장에서 노는 장면을 찍고 싶었는데, 현실성을 고려해 옥탑방 고무대야에 콩나물을 담고 찍었거든요. 고무대야도 3만~4만 원이어서 구입할 엄두를 못 냈는데, ‘하늘소년’의 옥탑방에 마침 주인아주머니가 버린 것이 있어 사용했어요.(웃음) 그래도 영상을 보신 분들이 ‘귀엽다’ ‘재미있다’며 좋아하시더라고요.”


우여곡절 끝에 두 팀의 뮤비 작업을 끝낸 해보자영상제작소는 잠시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다. 작업하며 부족함을 느낀 만큼 실력을 보완해 돌아올 계획.


김 감독은 뮤직비디오 제작사나 프로 감독이 작업하는 현장에서 실제 촬영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몸으로 직접 부닥치며 배워보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늘 디카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친구들 사진을 찍어줬어요. 그러다 한번은 동영상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죠. 그때부터 ‘영상’에 애정을 갖게 됐어요. 지금도 제 꿈은 영원히 ‘영상꾼’으로 사는 거예요. 할리우드에서 영화도 찍고, 칸영화제에도 갈 거예요. 너무 큰 꿈같지만 이런 생각도 안 한다면 절대 그 꿈에 가까워지지 못하리라 생각해요. 느리든 빠르든, 천천히 나아가보려고요.”


김 대표는 김 감독의 꿈을 영원히 지지할 계획이다. 돈도 많이 벌어 김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만들 영화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만약 칸영화제에 못 간다면 ‘김혜수영화제’를 따로 만들어주는 것까지 약속했다.


“혜수는 내공이 있어요. 다듬어진 게 없지만 가능성은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컨벤션 관련 특성화고를 나왔거든요. 장기적으로 MICE(Meeting, Incentives, Convention, Events & Exhibition) 산업의 인재를 양성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크게 본다면 혜수는 제가 키우는 첫 번째 인재가 되는 거죠.”(웃음)


▲해보자영상제작소에서 만든 하늘소년의 <콩나물국만 먹는 이유> 뮤직비디오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해보자영상제작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