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작가 전원이 해고됐다.

‘PD수첩 작가 전원 해고 사태에 대한 MBC구성작가협의회의 입장 전달 및 규탄 기자회견’에서 최미혜 방송4사 구성다큐연구회 회장이 눈물을 흘리는 사진이 몇 시간가량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PD수첩 작가 6명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야 했다.

나는 미해결 사건 파일이 잔뜩 쌓여 있는 책상 위에 새로운 사건 파일을 올려뒀다. 내일부터 또 바빠지리라. 나는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책상을 보고 경악했다. 책상이 깨끗했다.

누군가가 사건 파일을 전부 가져가버렸다.

내가 해결할 사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탐정사무소에 칙촉을 사다주곤 하는 친구 B를 불러 빈 책상을 보여줬다. “어차피 끝난 사건인데 뭐.”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발생한 지 겨우 하루 지난 사건이 벌써 해결됐다고?”

“그래, 매장까지 끝났어.”

친구가 돌아간 후 빈 책상에 앉아 칙촉을 먹으며 생각했다. ‘차라리 잘됐어. 하늘이 내려준 휴가야. 밀린 드라마나 보자.’ 그러나 꼬박꼬박 챙겨봐서 밀린 드라마가 없었다. 심심한데 매장지에나 가볼까. 나는 작가들을 매장했다는 곳을 수소문했지만 거기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작가들이 사라졌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MBC 근처를 수색해보기로 했다. 탐정사무소에서 MBC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신문지가 깔려 있었다.

티아라 투명인간 미스터리와 영원한 1초 미스터리로 도배된 신문지였다.
[이종산의 이슈탐정소] PD수첩 작가 매장 사건
MBC 앞에 다다랐을 때 나는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졌다. “밟지 마세요.” 발밑에 물컹한 것이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해고된 작가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매장된 것이 아니었다. 아직 살아 있었다.

그간의 사건들이 떠올랐다. 무한도전 코마 유도 사건과 전국적으로 번지던 코마 사태,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사건, 그리고 PD수첩 작가진 매장 사건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모두가 알지만 미해결로 남아 있는 사건들이었다.

세 사건은 무수한 미해결 사건 중 극히 일부다. 탐정사무소 책상에 쌓여 있던 미해결 사건 파일들을 가져가버린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그 뒤에 숨은 거대한 ‘그’를 대면할 수 있을까?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도와줄 거 아니면 비키세요.” 누군가가 외쳤다. 고개를 드니 신문지로 덮여 있는 작가들을 꺼내려는 사람들이 보였다. 스스로 약을 마시고 잠들던 사람들과 구럼비 앞에서 싸우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는 폭염 아래에서 필사적으로 작가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사 키워드 다시 읽기
PD수첩 작가 교체 논란

-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의 작가진이 전원 해고돼 논란.

- MBC는 지난 2012년 7월 24일 4~12년간 ‘PD수첩’에서 일해온 작가 6명에게 해고를 통보.

- 방송사에서 한 프로그램의 작가진 전체를 해고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방송직군 중에서도 고용 형태가 취약한 프리랜서 구성작가를 일방적으로 해고한 것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일었음.

- MBC 측은 파업 이후 방송 정상화를 위한 분위기 쇄신 차원의 결정이었다고 밝힘.

- 한국방송작가협회는 정권 비판적 프로그램에 대한 경영진의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 주요 방송사 구성작가들은 ‘PD수첩’ 대체 인력 거부 운동을 벌이는 한편, 해고 철회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함.

- 핵심 인력인 작가들이 빠지면서 ‘PD수첩’은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



이종산

사건의 여파를 추적하는 이슈탐정소장. 잡글이라면 다 쓰는 잡문쟁이. 한량 생활에는 염증이 나고 샐러리맨이 되기는 두려운 졸업 유예자로 캠퍼스를 어슬렁대고 있다. rolel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