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속풀이

모두가 여름을 즐길 생각에 들떠 있는 지금, 뜨거운 태양을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더위에 고생할 ‘군화’들을 걱정하는 ‘고무신’들 되겠다.

묵묵히 기다리며 매일 참을 인(忍)을 새기는 그녀들. 그 속마음은 어떨까. 같은 처지(?)의 고무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속 털어놓을 곳이 없는 이들이기에 마치 봇물 터지듯 수다 한마당이 벌어졌다. 군대 갈 남친들아, 군대 가 있는 남친들아, 우린 이렇게 산다! 흑…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제은지
성균관대 재학 중. 4개월차 육군 특전사 고무신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유미선
을지대 재학 중. 6개월차 의경 고무신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송영선
미국 필라델피아 비블리컬대(Philadelphia Biblical University) 재학 중. 육군 부사관 고무신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구연정
성균관대 재학 중. 1년차 공군 고무신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그의 목 소 리

영선 :일반 군인이 아닌 부사관으로 간 거라서 비교적 연락이 쉬워. 일반 사병이라면 시차 때문에 연락하기 쉽지 않았겠지. 시간 상관없이 전화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 새벽에 외롭고 힘들 때, 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군인 남친이 있다는 거!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미선 :연락할 수 있는 환경은 의경도 좋은 편이야. 외박, 면회, 휴가를 자주 나오거든. 발령 난 소대가 다른 부대보다 잘 챙겨주는 편이라 더 좋다는! 서울에서 근무하면서 곳곳을 돌아다니니 나보다 더 맛집을 잘 알 정도야. 아, 기특해.

연정 :휴가 하면 공군을 빼놓을 수 없지. 다른 분야보다 휴가가 많거든. 거의 6주에 한 번꼴로 나오는 것 같아. 면회도 매주 갈 수 있고 전화하기도 좋아.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미선 :하지만 아무리 연락이 잘되는 편이라 해도 떨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슬퍼질 때가 있어. 남자친구가 줬던 선물, 편지 보면 그리워지고….

은지 :육군 특전사에 남친을 보낸 입장에선 부럽기만 하네. 난 멋진 베레모 자랑이나!



인 내

미선 :의경 고무신은 시위가 있을 때 제일 힘들어. 전경뿐만 아니라 의경들도 진압에 동원되거든. 국가 행사가 있을 때도 휴가나 외출에 제약을 받지. 폭행 문제가 이슈일 때도 마음이 쓰여서 혼났어. 다행히 남친 소대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니 마음을 놓고 있지만.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영선 :부사관이라 휴대폰을 갖고 있는 건 좋은데, 전화하기 곤란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때가 있어. 내 전화 때문에 많이 혼났다는 얘길 들었을 때는 많이 힘들었어.

연정 :폭격 사고 같은 공군 관련해서 좋지 않은 뉴스가 있으면 걱정이 많이 되지. 복무기간이 긴 것도 슬픈 일이야. (군별 복무기간 - 공군(24개월), 해군(23개월), 육군(21개월), 해병(21개월), 의경(21개월))

은지 :휴가가 짜. 게다가 특전병이라 훈련도 더 빡세다고. 여기 남친들 중에서 가장 고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




부 재 중 전 화

은지 :행여 전화가 올까 24시간 기다리는 모드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잠잘 때도 옆에 두고….

미선 :맞아. 내가 전화를 걸고 싶을 때 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늘 긴장하게 돼. 벨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느낌이 들 정도야. 예전엔 모르는 번호는 수신거부 했는데 요즘은 무조건 다 받아. 스팸 전화에도 남친한테 하듯 ‘여보세용’ 한다니까.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연정 :부재중 전화 표시가 떠 있으면 노심초사하게 돼. 남자친구 연락을 놓친 게 아닐까 두렵고. 나는 요즘 ‘부재중’ 표시가 제일 무서워.

영선 :외국에 있다 보니 연락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 그래서 아예 남자친구만 볼 수 있는 블로그를 만들어서 하루 일과랑 하고 싶은 말, 사진 같은 것을 올리고 있어. 노트북 붙잡고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지.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그 리 움

미선 :늘 보고 싶어. 남친이 주고 간 큰 인형을 끌어안고 그리워하곤 해. 다 큰 여자가 인형 끌어안고 뭐하는 짓이냐고 비웃어도 할 수 없어.

연정 :특히 힘든 일이 있을 때 너무나 보고 싶어. 하지만 그런 티를 내면 남친도 힘들어할 거야. 힘내야지.

은지 :틈틈이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는데, 살이 빠진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고, 얼른 만나고 싶고….

영선 :어느 날 밤 룸메가 히스테리를 부리는데 주변에 하소연할 사람 하나 없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으면서 남친이 너무나 그립더군. 그래도 걱정시키기 싫어서 일부러 목소리 가다듬고 명랑한 것처럼 통화하곤 해.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감 동

연정 :성년의 날에 남친이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편지와 자기가 배급받은 비타민C를 잔뜩 모아서 보내줬어. 훈련병 시절이라 제 몸 챙기기도 힘들었을 텐데…. 감동이란 말밖엔.

미선 :부산 출신인 남친이 오로지 나를 위해 서울지역 의경을 자원했어. 근무 강도나 편리함을 따지면 부산에서 복무하는 게 훨씬 편한데도….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어?

영선 :날 슬프게 하는 행동을 안 하려고 늘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나 고마워. 틈만 나면 연락하고, 국제 편지도 보내주고…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한결같이 기다려주는 게 제일 고맙지. 이러니 내가 군화, 남친이 고무신 같네?

은지 :친구에게 미리 부탁해서 화이트데이에 내가 좋아하는 탄산수를 한 박스 보냈더라. 사실 난 그날이 화이트데이인 줄도 몰랐는데….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내 조 ? 외 조 !

미선 :의경은 외부 근무가 많아. 그래서 핫팩과 수분크림을 꼭 챙겨주지. 첫 휴가 나왔을 때 찬바람 때문에 피부가 상해서 까칠해진 걸 보고 크게 놀란 경험이 있거든. 남친은 내가 직접 만든 과자를 선물했을 때 훨씬 더 좋아했지만.

연정 :나도 수분크림. 그리고 좀 특이하지만 커피 믹스를 꼭 챙겨줘. 매일 마셔야 하니까.

은지 :수분크림이랑 선크림! 군인들은 정말 얼굴이 잘 타는 것 같아. 운동화도 일주일이면 닳더군.

영선 :화장품은 기본이지. 난 미국에서 과자나 먹을거리를 사서 보내주는데 아주 좋아하더라고.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기 다 림

영선 :고무신 생활에도 정보가 중요해. 고무신 카페에 가입해서 사전 준비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내 친구 한 명은 훈련병일 때 사탕이랑 과자, 스킨, 로션을 편지 안에 넣었다가 남친만 크게 혼났대. 훈련병 때는 어떤 물품도 반입 금지라는 것을 몰랐던 거지. 입대부터 제대할 때까지 서로를 지키는 군화-고무신 커플을 ‘대한민국 1%’라고 한대. 그만큼 어렵다는 거지.

미선 :내가 할 일 열심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 남친이 그리운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자신만 손해 아니겠어? 남친도 그런 여친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야. 신참 고무신들에게 한 가지 귀띔하자면, 훈련병 때 남자친구가 너무 걱정되고 맛있는 걸 보내고 싶다면 마이쮸나 껌을 밀대로 얇게 밀어서 보내봐. 편지 사이에 넣어도 잘 안 들킨다는!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연정 :지난 1년여 동안 잘 지냈던 것 같아. 늘 휴가를 기다리면서 ‘이번에는 뭘 할까’라는 설렘이 있었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생각하고 믿어주는 게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해.

은지 :가장 힘든 건 군대에 있는 사람이야. 그런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연락할 때마다 나 너무 힘들다고 투정 부리면 더 힘들 거야. 가능하면 밝은 모습으로, 남자친구가 걱정하지 않도록 하면 군생활도 힘차게 해내지 않을까. 사소하지만 신경 써서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고무신 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남친 군대 보낸 속사정? 그래, 우린 이렇게 버티고 있다규!
에/필/로/그

누가 그랬던가. 고무신은 커플이되 커플이 아니고, 솔로이되 솔로가 아니라고. 하지만 오늘 만난 고무신들은 언제나 커플의 자세였다. 나라 지키러 떠난 남친, 그리고 그 곁을 꿋꿋하게 지키는 신(新) 열녀들. 깨지지 말고 서로 꽃신을 신겨주는 그날까지 꿋꿋하라!


글 이나영 대학생 기자(성균관대 경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