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멘토링

기업의 CI(Corporate Identity)나 개별 브랜드의 BI(Brand Identity), 나아가 새로운 브랜드를 창조하는 과정에는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협력하게 마련이다.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디자인 분야를 비롯해, 브랜드를 평가하고 자산가치를 평가해 전략을 세우는 브랜드 컨설팅, 브랜드의 이름을 만드는 브랜드 네이미스트, 홍보 전략과 마케팅 방향을 정하는 브랜드 마케터 등이 모두 하나의 브랜드를 창조해내기 위해 힘을 쏟는 사람들, 즉 ‘브랜드 컨설턴트’다.
[브랜드 컨설턴트]“세상에 없는 브랜드 만드는 일… 창조의 희열 짜릿해”
1971년생
서울시립대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브랜드웍스 디자인팀장
인터브랜드 디자인본부 차장
브랜드앤브랜더스 대표



지난 1994년 ‘디자인커넥션’이란 사명으로 문을 연 ‘브랜드앤브랜더스(이하 브랜더스)’는 세상에 없는 브랜드를 창조해내는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이다. 회사를 이끌고 있는 정인숙 대표 역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 출신으로, 지난 2001년 디자인팀장으로 입사하면서 브랜드 컨설팅과 인연을 맺었다.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쳐야 해요. 요즘 유행하는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협업)’이나 ‘융합’의 개념이죠. 저도 디자이너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브랜드 컨설턴트’라 생각해요. 해당 시장·산업의 현황을 진단하고 트렌드를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브랜드 이름을 만들고, 이를 시각화하는 디자인 등 일련의 작업이 모두 브랜드 컨설턴트가 하는 일이에요.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우리 회사 같은 브랜드 에이전시죠.”

‘한글과 컴퓨터’의 CI와 BI, ‘동원F&B’의 BI와 패키지 디자인, 치킨 프랜차이즈 ‘BBQ’의 브랜드 디자인,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브랜드 ‘Drive your way’, ‘신한금융지주’의 신용카드 디자인 등 한눈에 들어오는 브랜드들이 모두 브랜더스의 작품이다. 지금도 삼성에버랜드, 신라호텔 면세점, 신한금융지주(카드), 대우건설, LG생활건강 등 국내 대표 기업 21개사가 브랜드 컨설팅을 함께하는 주요 고객이다.
[브랜드 컨설턴트]“세상에 없는 브랜드 만드는 일… 창조의 희열 짜릿해”
“멋진 이름 짓기가 전부는 아니야”

브랜드 컨설턴트는 브랜드 창조 과정에 필요한 분야를 총괄해 컨트롤하고, 전체 전략을 짜는 디렉터 역할을 맡는다. 자연히 경력 10년 이상의 노련함이 더해져야 가능한 일. 이를 다시 맡은 역할에 따라 나누면 크게 ‘브랜드 컨설팅, 브랜드 네이미스트, 브랜드 디자이너, 브랜드 마케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브랜드 컨설팅은 해당 브랜드의 가치를 평가하고, 전략과 마케팅 측면에서 부족한 점을 판단해 결론을 내리는 파트다. 브랜드 네이미스트는 말 그대로 브랜드의 이름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단순히 예쁘고 멋진 이름을 만드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게 정 대표의 말.

“제일 중요한 건 이름 안에 전략이 포함돼야 한다는 거죠. 또 시장 상황, 트렌드, 경쟁 브랜드의 전략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크리에이티브한 이름이어야 해요. 법적으로 사용 가능한지도 고려해야죠. 로직과 감성, 여기에 법률 지식까지 갖춰야 하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외국어로 된 브랜드의 경우 해외 검색이 필요하다 보니 어학 실력도 갖춰야 해요. 그야말로 스페셜리스트죠.”

시각 효과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맡는 브랜드 디자이너도 최근에는 ‘시각 전략가’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기초가 되는 디자인 콘셉트를 정하는 일부터 시작해 경쟁사 브랜드 분석, 프로모팅·광고 콘셉트 분석, 해외 및 국내 트렌드 조사, 사인 디자인에 최종적으로 고객 업체가 활용할 수 있도록 매뉴얼화하는 일까지가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브랜드 마케터는 만들어진 브랜드를 활용해 홍보와 마케팅 전략을 짜는 파트를 말한다.

“전략 부문은 MBA나 경제학과 출신이 많은 편이에요. 네이미스트의 경우 언어, 감성, 문학 방면에 출중한 분들이 많죠. 전문서적은 물론 소설, 역사책을 비롯해 음악, 영화, 미술 등 ‘박학다식’이란 표현이 꼭 들어맞는 사람들이에요. 어문학과 출신이 많지만, 전공이 따로 정해진 건 아니에요. 대신 사물과 사건, 이름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이 필수죠. 디자이너는 아무래도 시각·산업·제품디자인 전공자가 많은 편이에요.”



10년 이상 성장통 겪어야 전문가 된다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수시로 이어지는 야근에 클라이언트로 인한 스트레스 등 노동 강도가 센 직종에 속한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미안할 정도예요. 그런데도 브랜드에 목숨을 거는 건 이 일이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죠.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다는 성취감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죠. 한 해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그때마다 새로 연애를 시작하는 기분이랄까요. 크리에이티브하고 역동적인 사람들이 이 분야에 자꾸 몰리는 이유예요.”

정 대표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에이전시를 피하고, 무조건 대기업만 바라보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대부분 경력직을 채용해왔는데, 요즘 들어 모험이다 생각하고 대졸 신입 디자이너들을 만나보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같이 목표가 대기업이더군요. 한마디로 안정적인 ‘갑’의 위치를 원하는 거죠. 하지만 갑이 정말 원하는 인재는 바로 저 같은 사람이란 게 아이러니예요. 적어도 10년은 성장통을 겪을 각오로 스스로를 전문가의 지위에 올려놓아야 비로소 ‘인재’가 될 수 있어요.”

‘어디에 취업할지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먼저 정하라’는 정 대표의 조언은 그녀의 이력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울여상을 졸업한 후 은행원으로 4년간 일하다 ‘재미가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사표를 던진 게 24세 때다. 이후 직장 경력을 살려야겠다고 판단해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그마저도 중퇴하고 말았다.

“5월에 경영학과를 중퇴하고 바로 입시학원 끊어서 시각디자인과 진학을 새로 준비했죠.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많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거예요. 26세에 서울시립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해 30세에 졸업했어요.”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과 조교, 교수님이 의뢰받은 외주 작업, 각종 공모전 등으로 4년간 제대로 잠을 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BI·CI 관련 공모전 대상 5회 수상, 수석 졸업, 4년 전액 장학금 같은 결과가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었다.

“회사에 입사해서도 창고에 정장과 속옷을 가져다놓을 정도로 미친 듯이 일했어요. 고객과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며 전략을 짜고, 최종적으로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낸다는 매력에 지금까지 빠져 살고 있는 거죠.”

지금까지 정 대표가 진행한 프레젠테이션(PT)만 700번이 넘는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람도 지우고 지운 끝에 1000여 명.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무엇이든 경험하려는 자세는 처음 브랜드 컨설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무엇이든, 어떤 경험이든 가리지 마세요. 상고 출신에 은행, 외판원, 심지어 식당 아르바이트까지 경험한 게 지금의 제겐 가장 큰 자산이거든요. 어떤 경험이든 다양하게 겪어보되, 지속적으로 반 년 이상은 해봐야 한다는 걸 대학생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요.”



브랜드 컨설턴트에게 궁금한 점

Q. 입문부터 성장까지 과정은?

A.
에이전시에 취업하면 컨설팅, 네이미스트, 디자인 등 각자 맡은 분야에서 활동하며 실력을 쌓게 된다. 이후 팀장급을 거쳐 10년 정도면 실장급이 되는데, 보통 대기업에선 같은 기간이면 과장급에 불과하다. 팀장으로 일하다 실력을 갈고닦으면 디자인 회사의 CEO로 자기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Q. 대기업과 에이전시의 차이점은?

A.
대기업은 물론 연봉이나 복리후생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하나의 브랜드만 파야 한다는 단점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고,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 에이전시에서 전문가로 실력을 인정받는다면 이후에도 기회는 충분하다.

Q. 디자인 분야 전공자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A.
디자이너의 경우 특히 인턴십, 공모전 등에 매달려야 한다. 자기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놓으라는 뜻이다. 요즘엔 단순 오퍼레이팅이라도 일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지닌 친구를 찾기가 어렵다.

Q. 업계 현황과 전망은?

A.
요즘엔 10년 전 수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다. 90년대 이후 디자인 부흥 정책을 통해 관련 학과가 많이 생기고, 브랜드 사업이 커지면서 업체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이미 포화상태인 시장이 2년 안에 몇몇 실력 있는 회사만 살아남으며 걸러질 거라 확신한다. 앞으로는 실력과 진정성 있는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다.

Q. 끝으로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은?

A.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걱정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다방면에 걸쳐 책을 읽어야 풍부한 소양을 쌓을 수 있다.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m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