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세계는 치열하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곳이 전쟁터 같다는 것쯤은 안다. 특히 TV 속 이야기, 즉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주역인 방송작가는 그 전쟁터의 최전방 공격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청자에게 웃음과 감동, 정보를 주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고민하고, 심지어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3년을 매달리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장수 프로그램 ‘VJ특공대’의 탄생을 함께하고, 세계 최초로 국수를 통해 음식 문명사를 이야기한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만든 한지원 작가를 만나 치열하지만 매력적인 그들의 세계를 엿봤다.
[지상 멘토링] 방송작가 “세상 바꾸는 이야기를 만든다”
한지원 포유미디어 본부장

주요 작품 : VJ특공대, 인간극장, 인 사이트 아시아-누들로드, 그것이 알고 싶다, 명작스캔들 등

밤낮 없는 직업, 시청률 스트레스, 연예인과 밀접한 관계… 방송작가 하면 떠오르는 ‘연관 이미지’다.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단어들이다. 현직 방송작가의 생각은 어떨까. 올해로 23년차인 한지원 작가는 뜻밖에도 “거의 맞는 말”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태생적으로 프리랜서입니다. 안정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죠. 밤을 새우며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좋지 않은 직업이라고 할 순 없어요.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돋보기가 되기도 하는 매력적인 일이죠. 사람 좋아하고 도전 정신이 있다면 이보다 더 신나는 직업이 없죠!”

안정적인 직업의 대명사 공무원이 누구에게나 좋은 직업이 아니듯, 방송작가 역시 잘 맞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

현재 방송제작사 포유미디어의 본부장을 맡고 있는 한 작가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 1989년에는 방송작가라는 직업의 개념조차 잡혀 있지 않았다. 드라마 등장인물을 통해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지금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었죠. 방송작가라는 직업의 개념은커녕 조직적인 면도 다져져 있지 않았거든요. 그때는 작가를 그저 PD들의 보조 역할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매뉴얼 만들기부터 시작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지상 멘토링] 방송작가 “세상 바꾸는 이야기를 만든다”
한 작가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연극을 공부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연극을 하던 학생이 무작정 방송에 뛰어들어 20여 년 동안 뛴 원동력은 뜻밖에도 한마디 말이었다고. “당신에겐 방송이 어울려”라고 말해준 멘토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작가의 성공 조건 가운데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인 셈이다.

한 작가는 그동안 여러 작품을 집필했다. 그중에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작품도 있고 작가라는 직업의 매력을 담뿍 느끼게 해준 작품도 있다.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는 작가로서 이름값을 높여준 작품입니다. 제작 기간도 길어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또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다양한 사람과 만났던 행복한 시간을 잊을 수 없어요.”

‘인간극장’은 다양한 군상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다. 작가는 각양각색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 깊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시청자에게 감동을 전달한다.

“가끔 ‘내가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죠. 한번은 스스로가 신용불량자인데 남에게 빚을 받으러 다니는 추심업계 사람을 만났어요. 그에게서 ‘추심을 피하면서 추심하는 법’을 들었던 적도 있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매력은 ‘세상을 바꾸는’ 변화를 이뤄낸다는 점이다. 한 작가 역시 그런 쾌감을 맛본 적이 있다.

“환경 다큐멘터리 한 편으로 관련 법안의 내용이 바뀐 경우가 있었죠.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다 보니 반응이 큽니다. 많은 작가들이 다큐멘터리를 원하는 이유입니다. 최근에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랍니다.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방식은 다르지만 세상을 바꾸고 아름답게 만들자는 지향점은 동일하지요.” 하지만 모든 방송작가가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의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작가도 많다고.

“자타 공인 방송작가로 인정받기까지 견뎌야 하는 시간이 힘들어 포기하려고 했던 적도 있어요. 한동안 여의도 쪽으로 머리도 돌리지 말아야지 다짐했죠.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당연한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전문가로 성장해 세상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려면 어떤 분야든 많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지상 멘토링] 방송작가 “세상 바꾸는 이야기를 만든다”
“글솜씨만으로 이 직업을 꿈꾼다면 큰 오산”

유능한 방송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가진 사람이다. 또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에 익숙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쉽지 않은 직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한 작가가 작가적 소양을 기르는 방법을 살짝 귀띔했다.

“신문을 볼 때 자기 주관과 입장을 가지고 기사를 읽어보세요. 가령 이슈를 정해놓고 자신의 시각에서 칼럼을 써보는 것이죠. 아이템으로 활용할 만한 주제를 노트에 차곡차곡 모으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평소 ‘나만의 아이템’을 만드는 습관을 들이는 겁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방면에 지식이 많아야 일하기가 수월하다. 그래서 방송작가의 숙명은 끊임없는 공부. 한 작가 역시 “글솜씨만으로 이 직업을 꿈꾼다면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한 작가가 맡았던 ‘명작스캔들’이라는 프로그램의 경우 해당 주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어학적인 스킬도 요구한다. 방대한 양의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실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요구하는 자질이 까다롭지만 직업 전망은 밝은 편이다. 과거에 비하면 취업의 길이 크게 늘었다. 방송 3사와 종합편성채널, 외주제작사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프로그램은 방송작가의 손을 거쳐야 한다. 최근 영상 번역, 스포츠, 전문 음악, DMB 방송 등 미디어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방송작가의 세계도 넓어졌다.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방송작가도 늘어나고 있다.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방송작가는 분명 ‘좋은 직업’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방송작가는 내레이션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언어를 기획하고 많은 사람의 의견을 담아 세상을 표현하는 일입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에 한몫하고 싶다면 도전하세요!”



방송작가에게 궁금한 점

Q. 입문부터 성장까지 과정은?

A. 방송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하고 자신의 성향과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해 ‘막내 작가’로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입봉(처음으로 프로그램을 맡는 것) 코너를 맡고 서브 작가 - 코너 작가로 올라간다. 경력이 다져지면 메인 작가가 되는데 보통 6~7년 정도 걸린다. 메인 작가가 되면 처우나 보수도 높아진다.

Q. 채용 방법은?

A. 일반 직장처럼 정기적인 채용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막내 작가는 대부분 해당 프로그램 제작팀에 취직하는 식으로 입문한다. 또한 작가들에게는 서열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막내 작가의 나이가 26세 이하로 제한되는 추세다.

Q. 방송작가에게 도움되는 학과는?

A. 특별히 가산점을 주는 전공은 없다. 다만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과, 사회학과, 인류학과 등이 감성적인 매체를 다루는 데 유리하다.

Q. 연봉 수준은?

A. 프로그램 막내 작가의 경우 월 80만~100만 원 선이다. 입봉을 한 후에는 프로그램당 100만 원 이상으로 올라간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집필하는 프로그램 수를 늘릴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 메인 작가의 경우 한 편당 400만~600만 원 선의 보수를 받는다.

Q. 방송작가 아카데미를 꼭 거쳐야 하나?

A. 반드시 과정을 수료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무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한다. 지망생은 교육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어떤 장르가 맞는지 체크할 수 있다. KBS, MBC, SBS, 한국방송작가협회 등에 부설 아카데미가 개설돼 있다. 일반적으로 3개월에서 6개월 과정이며 예능, 다큐멘터리, 라디오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 실무를 다룬다.


글 유하연 객원기자│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