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전진 “나는 코리안좀비다”

‘블루 코너’로 시작되는 링 아나운서의 소개. 누가 봐도 난 ‘언더독(스포츠 경기에서 질 것으로 예상되는 선수 혹은 약자)’이었다. 커트맨(지혈 전문가)이 바셀린을 안면에 바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깊은 심호흡이 새어나왔다.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옥타곤에 오르기 전 으레 그렇듯 지르는 기합 소리. 전쟁의 시작이다.

상대는 홈그라운드답게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다. 호기롭게 티셔츠를 벗어던진 후, 피 맛을 본 맹수처럼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주심의 터치 글러브, 바로 이어져 울린 1라운드 벨 소리.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상대의 궤적 큰 레프트훅이 허공을 가른 찰나, 그대로 날린 오른손 스트레이트 카운터. 턱에 걸린 펀치에 다운, 안면에 무방비로 꽂힌 몇 차례의 파운딩. 그것으로 경기는 끝났다. 1라운드 시작부터 주심의 중지 선언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7초’에 불과했다. ‘격투계의 메이저리그’라 불리는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역사에서도 가장 빠른 케이오(KO) 기록이었다.
[나의 꿈 나의 길] UFC·종합격투기 파이터 정찬성
이마에 땀도 채 맺히지 않았을 7초간의 그 경기 후 그는 시쳇말로 완전히 떴다. 잡지와 신문은 물론 공중파 방송까지 승리 소식을 뉴스로 내보냈다. UFC나 종합격투기보다는 ‘이종격투기’ 쯤으로 인식되며 케이블 채널에서나 방송되던 경기의 승자가 이렇게 핫피플로 떠오른 것도 물론 처음이었다. 그만큼 그의 승전보가 엄청난 의미와 무게를 지녔다는 뜻. 종합격투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국내 몇 안 되는 UFC 소속 파이터인 정찬성(25) 선수가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는 전설이다.

“상대인 마크 호미닉과의 경기는 펀치를 뻗었던 순간 하나하나가 정확히 기억나요. 심판이 말리던 장면까지 생생하죠. 승리에 흥분한 나머지 오히려 시합 후 기억이 없을 정도예요. 그때 기분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랄까. 생각난 사람도 없었어요.”

정찬성이라는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린 건 바로 이 ‘7초 승부’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 격투 팬들 사이에선 이미 ‘코리안 좀비(zombie)’라는 닉네임으로 슈퍼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상대의 도발과 공격을 무시하고 무조건 앞으로 전진하는 스타일 덕에 생긴 별명이다. 코리안 좀비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는 현재 UFC 최고의 인기 상품이다. 박지성의 이름과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이 국내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격이다. 데이나 화이트 UFC 사장이 언론 기자회견장에 그의 티셔츠를 입고 나와 홍보를 자처했을 정도다.

7초 승부 전부터 그는 이미 스타였다. 대표적인 경기가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치른 두 번의 승부다. 무조건 전진, 돌진이라는 두 선수의 공통점은 종합격투기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불리는 1차전을 낳았다. 하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정찬성의 판정패. 또 다시 맞붙은 2차전은 정찬성의 승리로 끝났다. 서브미션(관절 등을 꺾거나 조여 항복을 받아내는 기술)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트위스터’라는 기술을 사용해 상대를 완벽히 제압한 것. 이 경기를 통해 정찬성은 2011년 말 ESPN이 선정한 ‘올해의 서브미션상’까지 수상했다. 이쯤 되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에 비유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체급은 경량급이지만 실제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힘깨나 쓴다는 사람도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서글서글한 인상과는 반대로 탄탄한 근육질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이터 기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는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말한다.
[나의 꿈 나의 길] UFC·종합격투기 파이터 정찬성
“조용했어요. 그렇다고 ‘일진’들을 피해 다닌 건 아니에요. 싸움도 많았지만 언제나 시비를 먼저 걸어온 건 상대 쪽이었죠. 원래부터 자존심이 강하고 싸우는 데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내성적이다 못해 답답한 성격인 그에게 함께 살던 이모는 ‘운동’을 권했다. 이모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곳은 합기도장.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파이터는 얼마 후 킥복싱 도장으로 옮겼고, 대학도 경북과학대 이종격투기학과를 선택했다.

“06학번이에요. 사실 지금도 재학생입니다. 경운대 사회체육과에 편입해 현재 4학년이죠. 대학에 진학해서야 주짓수, 레슬링 같은 종목을 배웠는데, 오히려 킥복싱보다 더 재밌더군요. 워낙 운동을 좋아하는 걸 주위에서도 알았기 때문에 전공 선택을 말리는 분은 없었어요.”

이종격투기학과를 졸업했지만 대학 친구들 중 자신처럼 전업 선수는 없다고 한다. 그만큼 국내 격투종목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체육관 감독, 형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옷을 사주고 용돈을 주었을 정도다.

“좋아하는 일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재미가 없다면 정말 못할 일이죠. 지금은 친구들이 제일 부러워해요. 좋아하는 일을 당당하게 하고 있으니까요.”
[나의 꿈 나의 길] UFC·종합격투기 파이터 정찬성
내성적인 ‘고딩’이 찾은 킥복싱 체육관

꿈에 그리던 미국에 진출한 후 두 번의 패배도 당했지만, 정찬성은 현재 누구보다 인기 있는 톱파이터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선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을 간혹 만나는 정도지만, 미국에선 호텔 밖을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사인 공세에 시달리곤 한다. 그런 그를 보고 ‘운을 타고났다’는 사람도 많다. 매번 화제를 뿌리는 경기 덕분에 실력보다 인지도가 앞선다는 평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제 생각에도 운은 타고난 것 같아요. 특히 격투기는 실력만으로 되지 않는 선이라는 게 있죠. 변수가 너무 많은 종목이거든요. 가령 눈이라도 한 번 잘못 깜빡이면 그대로 게임이 끝날 수 있어요. 지난번 제게 진 호미닉 입장에서는 운이 없었던 거죠. 하지만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인 순간 몸이 움직이는 건 운의 문제가 아니에요. 몸이 알아서 반응하게끔 평소에 훈련한다는 뜻이죠. 운이 좋은 이유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이번 5월 16일, 정찬성은 또 한 번 자신의 운, 아니 실력을 테스트한다. 상대는 미국 출신의 더스틴 포이리에. 나이는 한 살 아래지만 12승 1패의 전적에 UFC에서만 5연승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영건이다. 정찬성 스스로 실력으로는 ‘내가 아래’라고 말할 정도로 숨겨진 강자다.

“늘 하던 대로 훈련할 뿐이에요. 물론 왼손잡이인 상대 특성을 파악해 맞춤 전략도 짜죠. 그런데 막상 옥타곤에 서면 전략이나 작전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특히 그라운드 게임이 아니라 바닥에 선 채로 마주해 있을 때는 세컨드 얘기도 잘 들리지 않더라고요. 상대에게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포이리에와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특별한 부상이 없다면 7월에 또 한 차례 경기가 예정돼 있다.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승부다. 바로 전 세계 종합격투기 페더급의 왕좌를 가리는 챔피언전이기 때문이다. 현 챔피언인 주제 알도(브라질)는 무적이라 평가될 만큼 강한 상대다.

“일단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어떤 선수든 어떤 경기든 항상 자신은 있어요. 시합에 오를 때마다 무섭다는 느낌이 안 들 순 없지만, 상대가 정해진 순간부터 이길 수 있다고 최면을 걸다시피 해요. 불안함을 느끼는 순간부터 심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환호하는 승자에게만 쏠리는 스포트라이트. 패한 자에게는 쓸쓸한 퇴장뿐인 스포츠. 거기에 UFC 같은 메이저 단체가 아니고서는 먹고살기도 빠듯한 환경. 그럼에도 정찬성이 옥타곤과 링에 오르는 이유는 하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뜨기 전 힘들고 배고플 때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거의 없어요. 사실 격투기 외에 할 줄 아는 일도 없고요. 아직도 배울 게 산더미예요. 미국에서 한 차례 녹아웃 케이오패를 당한 적이 있는데, 그 전만 해도 저 스스로 ‘100% 막싸움’이라 생각했어요. 다만 훈련을 통해 조금 더 기술적으로 싸운다는 것밖에 차이가 없다고 여겼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냉정한 사람이 이긴다는 걸 처참하게 지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열정과 ‘깡’ 위에 냉정함과 전략이라는 무기를 새로 장착하면서, 일과 인생에 대해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맞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뭐가 됐든 하나만 열심히 하다 보면 꼭 그 분야가 아니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선수 생활을 그만두더라도 체육관을 차려 후배들을 양성하며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어요. 제 또래 친구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꼭 찾으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죽어라고 하나만 파면 언젠가는 성공의 길이 열린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됐으니까요.”

1년 중 온전히 쉴 수 있는 기간은 고작해야 한 달 정도다. 그 외엔 체육관 바닥에서 뛰고 구르고, 시합에 나가 상대와 주먹을 섞는 고된 일정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가 누구보다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속에 온몸을 던질 열정 때문이다.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