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는 재작년에 제주 여행을 다녀온 뒤로 제주에 흠뻑 빠졌고 결국 그곳으로 내려가 살고 있다. 그게 올해 초다. “제주로 와줄 수 있니?” 나는 친구의 부탁으로 제주에 내려갔다.

친구는 제주 강정마을에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마을 곳곳에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구럼비를 지키자’ 바닷가에는 해군이 깔려 있었다. 주위에는 민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일어 그곳에 머물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변 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무언가를 폭파시키는 소리였다. “구럼비를 지켜냅시다.”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말했다. 사람들은 폭파 소리가 난 쪽으로 몰려갔다. 해군이 그들을 막으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간 사람들을 해군이 진압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시청 광장에서 전경과 시민 사이에 벌어졌던 폭력 사태, 시민들의 비명 소리, 해산하라며 경고하는 확성기 소리, 체포 사태, 광기와 피로가 함께 어린 군인들의 얼굴. 나는 씁쓸해져서 친구도 만나지 않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종산의 이슈탐정소]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사건
나는 강정을 일부러 잊고 지냈다. 그러나 곧 구럼비 수호자들과 해군의 싸움이 서울에까지 번졌고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다. 구럼비를 지키자는 쪽과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쪽의 대립은 점점 극으로 치달았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진행될 재개발과 그에 따른 이익, 그리고 안보. “겨우 돌을 지키자고 국가 이익을 등한시해?”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구럼비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 구럼비 수호자들에게 구럼비는 단순히 돌이 아니라 자유와 생명의 상징이었다. 실용과 안보를 우선시하는 쪽과 자유와 생명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쪽의 오랜 대립. 구럼비 사건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싸움이다.

이 끝나지 않는 싸움을 시작한 것은 누구일까. 뒤에서 구경하면서 이 싸움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란 말인가. 나는 범인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범인을 알고 있다.


이달의 시사이슈 & 키워드 다시 읽기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3가지 논란

▷해군기지 필요한가?
- 제주도는 우리나라 교역물동량의 대부분이 통과하는 지리적·전략적 요충지. 영해 밖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핵심 해군기지의 필요성 제기됨

- 반대 측은 주변국과의 군사적 긴장관계에 휩싸일 위험성 제기. ‘세계 평화의 섬’으로 발전시키는 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주장

▷대형 크루즈선 입출항 안전한가?

- 이명박 정부 출범 뒤 해군기지 건설을 15만 톤급 대형 크루즈선이 드나드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 계획으로 변경해 재추진

- 이에 항만 시설이 항로의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제주도 측 주장과 입출항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 측 주장이 충돌

▷강정 해안 생태계 파괴 정당한가?

- 환경단체는 제주도의 자연생태 가치와 문화생태 가치가 파괴된다며 건설 공사를 보류할 것을 요구

- 제주 강정마을 주민을 비롯해 국방부와 정치계, 종교계, 시민단체가 얽혀 첨예한 찬반 대립 중



구럼비 바위

‘구럼비’는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나무의 하나인 ‘까마귀쪽나무’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제주도 해안 인근에서 많이 자라나기 때문에 흔히 구럼비가 있는 해안 쪽 바위를 구럼비 바위라고 부른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설 곳 역시 구럼비가 많아 구럼비 해안으로 불려왔다.



이종산

사건의 여파를 추적하는 이슈탐정소장. 잡글이라면 다 쓰는 잡문쟁이. 한량 생활에는 염증이 나고 샐러리맨이 되기는 두려운 졸업 유예자로 캠퍼스를 어슬렁대고 있다. rolel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