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기 엔지니어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존재하는 이것, 물체를 마찰시킬 때 생성되는 에너지, 빛이 되기도 하고 열이 되기도 하는 것, 끊기는 순간 대한민국이 블랙아웃 되는 이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전기’다.

스위치 하나로 간단하게 사용하는 전기는 사실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발전소와 송전용 변전소, 배전용 변전소와 전압기 등 여러 차례 생성과 전달, 변압과 분배 과정을 거쳐 가정과 직장에 도달한다.

그 여정엔 ‘엔지니어’들의 손길이 있다. 전기를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공급하기 위해 밤낮 없이 땀 흘리는 이들이다. ‘전기 만드는 공장’ 발전소의 서비스 엔지니어링을 담당하고 있는 GE에너지의 이용범 이사를 통해 ‘발전기 엔지니어’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멘토에게 듣는 직업 세계] “책임감·소명 의식으로 일한다”
이용범

GE에너지 이사
1987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입사
1999년 GE에너지 입사
현재 GE에너지 이사, 시니어 서비스 프로젝트 매니저
수상 - ‘GE에너지 필드엔지니어 서비스 아카데미 어워드’ 수상


전기가 끊기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2011년 9월 반나절의 전력 대란으로 대한민국이 ‘OFF’되는 블랙아웃의 무서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 공장은 멈추고 거래는 중단되며 신호등은 꺼지고 엘리베이터에 갇힌다. 새삼 소중해지는 전기.

전력량 급증이 아니더라도 전기가 끊길 수 있는 위험 요소는 있다. 사람이 병에 걸리듯 기계에 불현듯 탈이 나기도 한다. 이용범 GE에너지 이사는 13년째 이를 예방·처방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일종의 ‘발전기 주치의’인 셈이다.

“발전기 업그레이드, 효율성 개선, 고장 수리 등 발전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총체적 엔지니어링 업무를 합니다. 발전소가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는 24년 동안 발전기 분야에서 현장을 누볐다. ‘발전기 관리 수리’ 업무 13년 외에도 ‘발전기 설비 제작’ 업무를 10여 년 담당했다.

“전기공학도의 진로는 다양한데, 저는 전공을 제대로 살려서 전기를 직접 생산해보고 싶었어요. 엔지니어라고 하면 직접 설계도 해보고 설계한 제품이 성능을 발휘하고 있는지 점검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죠. 전공 관련 순수 엔지니어로 살고 싶은 전기공학도는 발전기 관련 엔지니어링을 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어요.”

이 이사가 담당하는 서비스 엔지니어링 외에도 발전기 엔지니어링의 분야는 다양하다.

“발전소 수주 등의 프로젝트를 매니지먼트하는 사람, 고객의 요구에 따라 설계를 담당하는 사람, 설계대로 제작하는 사람,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 그리고 정비하는 사람 등이 있어요. 세부 전공에 따라 여러 곳으로 진출할 수 있죠.”

발전소를 제작하는 회사가 대표적이다. GE에너지, 히타치, 도시바, 미쓰비시, 지멘스, 알스톰 등 에너지 관련 다국적 기업으로 진출이 가능하고 두산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국내 중공업 회사로도 취업할 수 있다. 그 밖에 소규모 발전기 제작 회사 등까지 포함하면 일할 수 있는 곳은 꽤 많은 편이다.

“먼저 어떤 엔지니어가 될 것인지 목표를 정해야 해요. 저와 같은 서비스 엔지니어는 넥타이 차고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 만지는 일이 주 업무가 아니에요. 현장에서 땀범벅으로 일해야 할 때가 많아요. 또 발전기 설계부터 제작 운영까지 모든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할 수 있어요.”

이 이사는 자신의 일을 ‘최전방 부대’에 비유한다. 업무 환경이 쾌적하진 않지만 엔지니어 세계에서는 현장 엔지니어를 최고로 여긴다고 한다. “전기가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최전방에서 뛰는 엔지니어가 없으면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어지는 설명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 바로 ‘열정과 도전 의식’ 그리고 ‘책임감과 소명 의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 버티기 힘들어요. 일이 힘들고 몸이 고되죠.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술을 만든다’는 순수한 열정과 ‘환경을 보호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소명 의식을 필수로 갖춰야 해요.”

그는 또한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동양인 최초로 GE의 최고 엔지니어에게 주는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발전기 스페셜리스트인 그도 여전히 ‘열공중’이다.

“20년간 일했어도 배울 게 무궁무진하죠. 선배 엔지니어 중에서도 ‘다 배웠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어요.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뒤처지게 돼 있어요. 시대가 원하는 화두를 알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하죠.”

엔지니어의 삶이 장밋빛 인생은 아니지만 ‘성취감’만큼은 그 어떤 직업 이상으로 느낄 수 있다고. 무엇보다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보람이 일하는 순간마다 찾아온다.

“원자력 발전소가 단 하루라도 발전이 중단되면 하루에 10억 이상의 돈이 날아가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엔지니어의 판단에 따라 임시적·단기적·영구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해요. 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문제라도 원인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정확히 짚어내서 발전소가 가동하도록 했을 때의 보람은 산악인이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을 때 못지않을 겁니다.”

때로는 시각을 다투는 중차대한 문제에 맞닥뜨릴 때도 있다. 이런 때는 긴장감, 성취감도 두 배가 된다.

“한번은 중국 북쪽 지역의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어요. 영하 20도의 날씨였는데 그 발전소는 가정 난방용 스팀도 같이 공급하는 곳이었거든요. 스팀 공급이 중단되면 주민들이 동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었죠. 주어진 시간이 일곱 시간이었는데 데드라인 5분 전에 복구를 마쳤어요. 어찌나 기쁘던지요.”

그렇게 최고 기술 전문가로 인정받을 때, 사람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줄 때 엔지니어로서의 소명을 재차 확인한다고 한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24년이란 세월이 걸렸어요. 그 길엔 분명 가시밭도 있었고 실패를 경험할 때도 있었죠. 하지만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에요. ‘해결하겠다’는 각오로 덤비면 결국 그 산을 넘을 수 있어요.”

“엔지니어라면 문제를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 이사의 말에서 다시 한 번 엔지니어에게 필요한 자질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책임감과 끈기가 강해서 어디에서나 충분한 경쟁력이 있어요. 많은 이들이 이 일에 도전해서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의 엔지니어로 우뚝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에요. ‘해결하겠다’는 각오로 덤비면 결국 그 산을 넘을 수 있어요.”



‘전기공학도’가 전공 살려 취업하는 길
설계 제작 분야
GE에너지, 지멘스, 히타치, 두산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에너지 관련 회사(전기 생산 업무)
플랜트 운영 분야 한국전력(발전소 운영·전기 공급 등 지원 업무)
기타 일상생활에서 전기가 쓰이지 않는 부분은 없다. 건설, 토목, 철도, 소프트웨어 등 전기 배선이 필요한 모든 곳에 취업 가능.



기타 ‘발전기 엔지니어’에 대해 궁금한 점

★관련 전공은?

발전소는 모든 공학이 총동원된다. 전기공학 외에도 기계공학, 금속공학, 재료공학 등 다양한 공학 관련 전공이 필요하다.

★연봉은?

GE에너지의 경우 초봉은 4500만 원 수준에서 책정된다. 이 이사의 경우 억대 연봉을 받는다. 회사·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다국적 기업은 대부분 비슷한 수준이다.

★장점은?

각국을 무대로 해외 동료들과 교류하며 일할 수 있다. 다국적 기업뿐 아니라 국내 기업도 해외 발전소 수주를 함에 따라 글로벌 인재로서 성장할 기회를 갖는다.

★정년은?

GE에너지의 경우 60세 정년. ‘엔지니어’는 기술로 승부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정년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편이다.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