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준호·김준현·김지호

인터뷰가 끝나고 기사를 쓰려고 보니 이것 참 난감한 사태가 발생했다. 녹음 파일을 재생하니 절반이 웃음소리다. 종류도 다양했다. ‘크하하’ ‘낄낄’ ‘큭큭’. 가만히 앉아 웃음을 분석해봤다. ‘크하하’는 진짜 빵 터지는 개그가 나왔을 때, ‘낄낄’은 좀 수위 높은 개그가 나왔을 때, ‘큭큭’은 누군가가 말하는 도중이라 크게 웃을 수 없었을 때다.

가끔은 웃음소리에 덮여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보이스 레코더를 2개 가져갔어야 했나’ 후회하지만 때는 늦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듣고 있자니 또다시 ‘크하하’ ‘낄낄’ ‘큭큭’이 터져 나온다. 한 번 들었던 개그를 다시 들었을 때 웬만하면 잘 웃지 못하는데 이번은 예외다.
[스타와 커피 한 잔] 인터뷰는 웃겼고 기자는 울었다
대강 인터뷰 분위기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굳이 설명하자면 개그콘서트 무대 위에서 술 한잔 걸치면서 농담 절반과 진지한 인생 얘기 절반의 조합이라고 할까. (조만간 코너명을 ‘스타와 맥주 한 잔’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8월의 비 오던 어느 날 영문 이니셜이 KJH로 똑같은 김준호, 김준현, 김지호 3인과 나눈 이야기는 그냥 웃음이 아닌 의미 있는 미소를 남겼다.


대학 시절 자신을 묘사해주세요.

준호 딱 한마디로 ‘아웃사이더’. 처음 백제예전에 들어갔는데 집안에서 4년제 대학에 가길 원했고 저도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재수 끝에 단국대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1학년 다니다가 바로 개그맨이 됐습니다. 대학 생활을 할 틈이 별로 없었죠. 그래도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유지태가 제 동기인데 월세방에서 같이 살기도 했죠. 사실 대학 때 술 마셨던 기억이 가장 커요. 연영과가 천안에 있었는데 동기 4명이 월세방에 같이 살았어요. 동거를 시작하자마자 1주일 동안 소주·맥주 합쳐서 100병이 넘었어요. 우리만 마신 게 아니라 동기들 전부가 거기서 마셨으니까요. 사람 만나고 얘기 나누고 까불고 그랬습니다.

준현 4년 내내 정말 많이 놀았어요.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고 그만큼 알차게 보냈죠. 공부는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했어요. 한국외대 철학과 나왔는데 동양 철학을 좋아해서 불교, 유교 쪽만 공부했어요. 하기 싫은 건 죽어도 못하겠더라고요.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한창 집회나 데모에 빠지기도 했어요. 그때 한 학번 위의 어느 선배가 “아무리 놀아도 가슴속에 심지 하나만 갖고 있으면 된다”고 말해줬어요. 전 그 말을 지금도 믿고 있어요.

지호 대학을 스물일곱 살에 들어갔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를 했는데 중간에 포기하고 계속 개그맨에 도전하다 보니 늦어진 거죠. 그때 같이 웃고 부대끼던 이수근, 김병만 형이 방송 타는 걸 봤죠. ‘바로 데뷔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 길로 재수 포기하고 개그맨을 목표로 죽어라 달렸죠. 그러다 보니 무명 생활이 좀 길었어요.

준호 우리 연예인들이 대학 생활이 별로 없어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많은데 사실 쉽지 않죠. 그래서 올해 횡성에 있는 골프대학에 들어갔어요. 거리가 멀어서 욕심만 내고 못 다니고 있긴 해도 저 새내기예요. 첫 학기 학사 경고를 맞은 새내기.


희극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준현 누군가를 웃기고 싶어하는 사람이 개그맨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데 마침 개그맨이 그런 직업이니까 하는 거죠. 아마 ‘개그맨의 피’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해요.

지호 저희 개그맨 집단이 전국의 웃긴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에요. 개그맨 집단에서도 웃기는 사람이 있고 안 웃기는 사람이 있죠. 안 웃기는 사람이 일반인 집단에 가면 엄청 웃겨요.

준호 근데 한두 명 정도는 일반인 집단에 가도 안 웃기죠. 김대희 같은 사람? 진짜 안 웃겨요.

자신의 최고, 최악의 코너를 하나씩 꼽아주세요.

준현 ‘조선왕조부록’이 저한테는 최고의 코너예요. 당시 신인들만 모여서 만든 코너인데 대박 터뜨리진 못했어요. 그래도 신인끼리 10개월 동안 으샤으샤 힘내서 무대에 올렸던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최악의 코너는 아직도 놀림받고 있는 ‘족발 장군’. 제가 족발 역할이었어요. 상대는 보쌈이었고요. 치킨 부대가 쳐들어오고 그랬죠. “치킨 부대가 어떻게 쳐들어와?”라고 하면 “양념 반 프라이드 반으로 쳐들어옵니다”라고 답하고, “위장해야 해, 빨리 쌈장을 바르게” 이러고 있고. 부끄럽긴 해도 애착은 가요.

준호 최고의 코너는 ‘타짱’. 코드 자체가 ‘하드코어&단순’이라 저한테 딱 맞았죠. 인터넷에서는 굉장히 붐이었는데 시청률은 그리 좋지 못했어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시청자 분들이 TV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넷으로 보시니까 재미있는데도 시청률이 안 나와서 폐지되는 코너가 많아요. 최악의 코너는 도박 사건 이후 복귀작인 ‘조아족’. 노인 분장해서 못 웃긴 건 처음이었어요. MBC ‘아마존의 눈물’에 나오는 ‘조에족’을 패러디한 것인데 좀 억지 개그였죠. 제 개그는 패러디가 많아요. ‘씁쓸한 인생’도 그렇고 ‘베토벤 바이러스’도 그렇고.

지호 조아족 대본이 한 장이었어요. 전부 ‘아갸갸갸 으갸갸갸’.저의 최고 코너는 ‘드라이클리닝’. 노래로 하는 개그인데 앨범까지 냈었어요. 그걸로 얼굴도 많이 알리고 최우수 코너 후보상까지 올라갔었어요. 최악은 ‘지호는 못 말려’라고 3주 만에 없어진 코너예요. 제가 아기로 나오고 연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엄마 역을 맡았는데 하도 웃음이 없어서 코너가 없어졌어요.


한 코너가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오는지 궁금해요.

준호 예를 들어 개콘 ‘감수성’은 시크릿가든 OST를 틀어놓고 술 마시다가 괜히 시련에 빠진 사람처럼 흉내내면서 놀았던 것이 시초예요. 그게 너무 재밌어서 회의를 했어요. 그때 살 붙이고 사람 모아서 만들었죠. 여기에 숟가락만 얹은 사람이 2주차 때 들어온 김대희예요.

지호 대희 형은 원래 다른 코너를 하고 있었는데 대갈공명이라는 캐릭터를 들고 왔어요.

준호 그러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죠. 모든 코너가 다 그래요. 어떤 개그맨이 발상을 했을 때 동료 개그맨이나 작가가 포장을 잘해야 좋은 코너가 되는 거죠. 그런 협업 과정이 없으면 좋은 개그가 나오지 않아요.


개그를 짤 때 스트레스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어떻게 푸세요?

준호 개그맨 중엔 잔머리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게임을 엄청 잘해요. 스타크래프트, 서든어택, 워크래프트를 잘하는 친구가 굉장히 많아요. 준현이는 악기를 잘 다뤄요.

준호 운동으로 스트레스 푸는 개그맨도 많아요. 저는 골프 모임에 나가요. 8명인데 다들 바쁘다 보니 모두 모이기는 힘들어요.

준현 전 요즘엔 낚시를 해요.


최근에 ‘더 코미디’라는 모바일용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기존 공중파 프로그램과 차이가 있나요?

준호 모바일이다 보니 수위가 조금 높죠. 저희 개그맨들이 가장 웃기다고 느끼는 것이 개그맨 MT인데 여기에선 소재 자체가 정말 심해요. MT와 개콘의 중간 레벨 정도가 ‘더 코미디’의 수위입니다.

준현 개그맨 MT는 저희끼리도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을 금지해요. 유출되면 큰일날지도 몰라요.

준호 말이 필요 없는 개그죠. ‘더 코미디’에서도 말을 줄이고 행동으로 웃기려고 해요.

지호 한국에서는 몸으로 웃기는 것이 저질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찰리 채플린도 넘어지고 구르면서 사람들을 웃겼고, 그것이 코미디의 시작이거든요. 사람들이 너무 말로 하는 개그만 쳐주는 경향이 가끔 아쉬워요.


대학생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조언 한마디 한다면.

[스타와 커피 한 잔] 인터뷰는 웃겼고 기자는 울었다
지호
무엇을 하든 꿈을 향해 계속 나가다 보면 언젠가 이루지 않을까 해요. 제가 그랬거든요. 개그맨 못할 줄 알았는데 7년을 하니까 되더라고요. 여러분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저도 했으니까요.

준호 ‘도전하지 않으려면 일하지 마라’라는 책이 있어요.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죽어 있다. 그러므로 도전하라’는 것이죠. 자꾸 시도하다 보면 자기 것이 뭔지 알거든요. 저는 ‘도전하라’라는 말을 해주고 싶네요.

준현 겁내지 말고 하나라도 열정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술을 마시든 만화책을 보든 게임을 하든 ‘나는 이런 열정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한 번쯤 열정을 보였던 기억이 있어야 나중에 정말 중요한 것을 시작할 때 그 열정이 다시 꽃피거든요.


인터뷰 마지막에 항상 똑같은 질문을 드려요. 행복하세요?

준호·준현·지호 Yes, Oh Yes!



김지호
1981년 생
인덕대 방송연예학과
2007년 KBS 22기 공채 개그맨
대표 출연작 : 개그콘서트, 웃음충전소, 코미디쇼 희희낙락 등


김준호
1975년 생
단국대 연극영화학과
1996년 SBS 5기 공채 개그맨
대표 출연작 : 개그콘서트, 기막힌 외출, 개그스타 등


김준현
1980년 생
한국외대 철학과
2007년 KBS 22기 공채 개그맨
대표 출연작 : 개그콘서트, 폭소클럽 2 등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herejun(Twitter)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