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끝내고 55세 이후를 기다리자

[정철진의 재테크 편지] 벌써 은퇴 준비하라고?
1997년 대한민국이 외환위기로 최악이었을 때 첫 직장을 가졌습니다. 당시 20대들은 재테크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했는데요, 그래도 다들 한 개씩 갖고 있는 상품이 있었습니다.

바로 ‘연금보험’입니다. ‘IMF 사태’ 때문이었을까요? 평생 다닐 것으로 생각했던 직장에서 50세도 안 돼 잘리는 것을 목도한 터라 연금보험의 인기는 참 높았죠.

‘은퇴 설계’. 정말 20대에겐 와 닿지 않습니다. 아직 인생의 꽃도 피우지 못했는데 은퇴를 걱정하라니 말도 안 됩니다. 그런데요,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의 평균 퇴직연령은 54세라고 합니다.

남녀 평균수명인 78.6세를 감안하면 은퇴 후 무려 25년을 놀고먹어야 한다는 뜻이죠. ‘소득 없는 25년’. 이렇게 보니 무섭기도 하고, 주눅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왜 기분 좋게 시작한 여름방학을 망치느냐고 화를 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편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은퇴 설계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여유가 된다면 어서 빨리 적은 금액으로라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위를 보면 참 다양한 방식으로 은퇴 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상가를 준비하기도 하고 금을 사 모으기도 합니다. 삼성전자 주식을 적립하기도 하죠. 하지만 은퇴 설계의 기본은 바로 일명 ‘3중 보장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연금상품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3중 보상 시스템이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3가지 연금상품을 말합니다. 물론 개인 상황에 따라 이 3가지 상품을 모두 활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가령 프리랜서가 된다면 퇴직연금을 받을 수 없죠. 하지만 ‘3중 보장 시스템’에 대한 개념 정립은 필요합니다.

첫째, 국민연금은 국가가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직장인은 의무 가입이고 직장에 다니지 않더라도 만 18~60세 국민이면 임의로 가입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연금 수령액이 고정돼 있지 않고 물가 상승률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과 지급 주체가 국가여서 안정성이 매력적입니다.

20대의 경우 직장에 입사하면서부터 국민연금을 납부하게 되는데 국민연금 홈페이지(www.nps.or.kr)의 ‘내 연금 알아보기’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본인의 예상 연금지급액을 확인해보면 구체적인 노후 설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둘째, 퇴직연금은 샐러리맨이 퇴직금을 금융회사에 적립해 운용하고 퇴직 시 연금으로 수령하는 상품입니다. 국내에선 역사가 불과 5년 정도인데요, 이전까지는 퇴직연금 대신 제법 큰 규모의 퇴직금을 받았었죠.

하지만 이런 일괄 퇴직금 제도는 직장을 옮기고, 퇴직금을 중간 정산받아 미리 사용하거나, 회사가 부도날 경우 ‘은퇴 준비’라는 취지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려고 ‘퇴직연금’이란 제도가 등장한 것이죠.

하지만 꼭 연금만 받는 건 아닙니다. 목돈으로 수령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퇴직계좌(IRA)를 통해 직장을 옮겨도 퇴직금을 자신만의 계좌에 계속 적립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개인연금 상품입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각각 국가와 회사에서 액수나 상품을 제약적으로 정하는 것이라면 개인연금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정철진의 재테크 편지] 벌써 은퇴 준비하라고?
개인연금 상품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젊을 때 10년 이상 일정액을 적립한 후 55세 이후 연금 형식으로 매달 현금을 받는 상품”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국내에서 개인연금 상품이 급부상한 것은 지난 1994년부터입니다.

노후생활 대비라는 대의명분과 비과세 혜택과 소득공제 혜택(연간 납입 보험료 중 300만 원 한도)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빠르게 확산됐죠. 2000년 이후 개인연금 상품은 은행, 보험, 증권 상품으로 세분돼 ‘연금저축 신탁’ ‘연금저축 보험’ ‘연금저축 펀드’ 3가지로 나뉘어 현재까지 활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여러분이 개인연금 상품에 가입한다고 할 때는 결국 ‘연금 3총사’로 불리는 증권사의 연금저축 펀드, 은행의 연금저축 신탁, 보험의 연금저축 보험 세 종류를 놓고 스스로 투자 성향에 맞는 상품을 고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품을 고른 후 기간과 목표금액을 정해놓고 매월 적립해나가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 3가지 개인연금 상품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수익률 경우 연금저축 신탁은 안정적 운용에 초점을 맞추고, 연금저축 보험은 시중금리에 연동되고, 연금저축 펀드는 주식 시황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세제 비적격 연금보험’이 등장해 소득공제 혜택이 없는 대신 당초 55세보다 10년 정도 빠른 45세 이후부터 연금 수령이 가능해졌고요. 다만 은행권 연금저축 신탁은 원금 보전을 위해 안정적 운용을 하지만 결국 실적배당 상품이라는 점, 보험권 연금저축 보험의 경우 중간 해지 시 해약환급금 문제가 있다는 점, 증권업계 연금저축 펀드는 주식을 주축으로 공격적 운용을 한다는 점 등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훗날 55세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했는데 56세에 죽으면 그 돈은 어떻게 될까요. 연금저축 신탁과 연금저축 펀드는 가입자가 55세 이후 연금 수령 도중 사망 시 유족이 승계합니다. 반면 연금저축 보험은 가입 당시 사망 이후 수탁자를 자신이 직접 고를 수 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개인연금 3총사’ 중 증권사의 연금저축 펀드와 보험사의 투자비중이 높은 변액연금 상품을 추천하는 쪽입니다. 물론 “노후 자금을 그렇게 위험한 주식에 투자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항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역설적으로 노후 자금이기 때문에 주식을 골라야 한다는 쪽입니다. 실제 30년간 유지한다고 했을 때 수익률로만 보면 주식이 과거 경험상 금리상품을 앞서 왔거든요. 투자 및 유지기간을 10년으로 줄이면 당연히 펀드는 탈락되지만 25년 이상 기간을 늘릴 경우 투자 상품의 매력은 오히려 커지는 것이죠. 무엇보다 연금상품은 최대의 적인 ‘인플레이션’을 물리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연금 펀드’는 효과성이 높습니다.

물론 어떤 개인연금 상품을 고를지에 대한 문제는 전적으로 여러분 개인의 몫입니다. 그런데요, 실은 연금상품이란 것이 어떻게 보면 상품보다는 10년 이상 꾸준히 적립한다는 것 자체가 성공을 결정짓는 핵심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대부분의 은퇴 준비가 그런 것처럼 말이죠.

[정철진의 재테크 편지] 벌써 은퇴 준비하라고?
정철진 경제 칼럼니스트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기자로 9년 동안 일했다. 2006년 펴낸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로 베스트셀러 저자 반열에 올랐다. ‘1,013통의 편지-그리고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작전’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