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의 ‘인문학이 에너지다’
‘The Show Must Go On!’ 이는 영국의 록 그룹 퀸(Queen)의 노래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어권에서 속담처럼 자주 쓰는 이 문장은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세상은 돌아가야 하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The Show Must Go On!’ 이 말은 미국 작가 해리 골든의 글에도 나온다.
“연기자는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들어도 예정된 희극 연기나 노래를 불러야 한다. 나는 가슴속에 깊은 슬픔이나 끔찍한 개인적인 불행을 숨기고 관객과 대면해온 배우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루제로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에 나오는 광대처럼 용감하게 연극을 계속한다. ‘부서지는 마음의 슬픔을 안고 웃어라.’ … 모두에게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자식을 묘지에 묻고 되돌아와 곧바로 작업대와 기계, 선반 앞에 앉아야 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주부들이 허리의 통증, 편두통, 개인적인 슬픔을 딛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시장을 보고 집안일을 해야 했는가. 배우에게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감히 연극을 멈출 수 없다. … 어느 날 타고르의 하인이 늦게 왔다. 그래서 타고르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당장 나가라’고 나무랐다. 하인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어젯밤 제 어린 딸이 죽었습니다.’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인생의 연극은, 삶은 계속돼야 한다고 이 글은 강조한다.
“소년은 다시 숲으로 걸어가 (죽은) 아버지 옆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는 담요에 싸여 있었다. 소년은 그냥 옆에 앉았다. 울고 있었다. 그칠 수가 없었다. 소년은 오랫동안 울었다. ‘아빠하고 매일 이야기를 할게요.’ 소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잊지 않을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소년은 일어서서 몸을 돌려 길로 나섰다.”
이는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세상과 인류가 파괴되고 재앙과 혼돈만 있는 지구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무작정 남쪽으로 간다. 다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시작된 세상에서 인간들은 살기 위해 인간을 사냥한다.
결국 아버지는 남쪽으로 길을 가다 생명이 다하고 남겨진 아들은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이 장면에서 콧등이 시큰해진다.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한 아들이 사는 길은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이다. 아버지가 죽어 세상에 홀로 남겨졌지만 아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매카시의 삶에서도 한 가닥 위안을 발견할 수 있다. 매카시는 대중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은 작가로 꼽힌다. 뚜렷한 베스트셀러가 없었기에 소설가로 먹고사는 문제도 힘들었을 것이다.
한번은 한 대학에서 그의 작품에 관해 강연을 하면 상당한 액수의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매카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책에 다 있다면서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그 뒤로 한동안 또 그 자신의 비유대로 ‘콩’만 먹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곤궁한 생활에서도 죽으란 법은 없더라는 것이 매카시의 말이다. “정말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면 꼭 어딘가에서 살 방도가 나타났죠.” 당신은 ‘몸속의 가시’가 있는 사람인가?
먹고사는 문제가 각박할수록 매카시와 같은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때로는 ‘돈’보다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의 여유를 부리다 보면 또 살아갈 길이 보일 수 있다. 그만큼 ‘갈망’이 있고 그 갈망이 새로운 작품을 생산하게 하는 에너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막다른 지경에 몰리면 그럴 여유도 없다고 하겠지만.
“그림을 그리건 아무것도 안 하건 어떤 일에나 최소 5년은 걸리는 거여. 일단 시작하면 5년은 계속해. 아무것도 안 할 거라면 최소 5년은 아무것도 안 하도록 해봐. 그것도 힘든 일이여. 도중에 역시 그때 취직했더라면 좋았다느니 어쩌느니 했다가는 너는 백수건달로서의 재능도 없는 거여.”
이는 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 타워’에 나오는 한 대목인데 그야말로 ‘백수의 철학’이다. 더욱이 이 말을 들려주는 이는 아버지다. 아들에게 들려주는 멘토링치고는 좀 짓궂다. 아들은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할 거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우선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때 아버지는 아들을 지지한다. 아버지가 참 철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백수로 5년 정도 지내다 보면 일이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지기 마련이다. 세상의 밑바닥까지 경험하고 잔뜩 약이 오르게 되면 비로소 일을 해야겠다는 자세가 나올 수 있다. 삶의 치열성은 이렇게 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런 세상의 이치를 멘토링해준 것일 게다. 아들은 백수로 지내다 결국 프리랜서로 성공한다.
“한때 소양을 갖춘 학자였고 이후에는 꽤 큰 연구소의 소장도 맡았던 친구, 또 가까이 지내던 작가 두 사람이 모두 같은 길을 걸었다. 높은 지위에 오르자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됐고 당연히 연구나 집필은 어려워졌다.
모두 나중에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때를 꿈꾸었고 그 시간이 오면 본업에만 전념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결국 그들은 자유를 얻었다. 고대했던 그 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에는 더 이상 자신이 원했던 일을 하지 못하게끔 변해 있었다.
오랫동안 이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고 새로운 의무와 책임 등 온갖 핑계거리를 찾아냈다. 그러다 첫 번째 친구는 술을 마시기 시작해 얼마 후 자살했다. 두 번째 친구도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세 번째 친구도 비슷했다.”
이는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의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에 나오는 한 토막의 에피소드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면 이 에피소드를 생각해보자.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늘 독서와 신문 읽기를 강조한다. 지난해 2학기에 연세대에서 강의했을 때 신문을 얼마나 읽었는지 점검하기 위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의 한자 표기 ‘劉曉波’를 시험 문제로 냈다. 결과는 참담했다.
아무도 정답을 쓰지 못했다. 물론 책도 읽지 않는다. 영어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행이 답이다’라는 책 제목처럼 지금 당장 실천하지 않으면 다음에도 실천하지 않는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절실하다면 만사 제쳐두고 그 일부터 해야 한다. 실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빅터 고어츨은 저명인사 400명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세계적 인물은 어떻게 키워지는가’라는 책에서 그들의 공통된 특성은 자신의 이상과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끈기’를 보인 것이라고 말한다.
또 끈기와 함께 성공을 향한 열정과 소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취미거나 피상적인 관심뿐이던 것을 절실하고 열정적인 소명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동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게 ‘내 몸속의 가시’라고 한다.
“아무리 창의적인 인물이라도 업적을 세우기 위해서는 재능과 격려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 칼 융은 ‘원형적 욕망’, 제인 피어토는 ‘내 몸속의 가시’라고 했다.”
요즘과 같은 경제 위기 시대에, 특히 40대나 50대 일부 남성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내면의 열정이 소진돼 더 이상 자신의 잠재력이 되살아나지 않는 경우는 ‘내 몸속의 가시’가 없기 때문이다.
‘실패자’보다 무서운 게 바로 ‘내 몸속의 가시’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인간으로서 홀로서기를 하려면 먼저 갈망하고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성공은 절로 찾아온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자녀경영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 다수의 책을 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