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리어

지금부터 딱 10년 전, 배용준·송윤아·송혜교·김승우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한 드라마가 있었다. 호텔이라는 화려한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호텔리어(MBC)’다.

이 드라마가 히트하면서 호텔리어라는 직업의 인지도는 몰라보게 높아졌다. 호텔 입사를 꿈꾸는 이가 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호텔은 ‘세상의 축소판’이다. 수백 가지 직업이 모여 하나의 호텔을 이룬다. 화장실 청소부부터 기계실 엔지니어까지 모두 호텔리어다.

그중에서도 고객과 직접 만나는 객실 담당자는 단연 ‘호텔의 꽃’. 특히 VIP를 전담하는 GRO(Guest Relations Officer)는 특급호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롯데호텔 최초의 여성 과장이자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신관 객실을 책임지고 있는 GRO 손선향 씨에게서 호텔리어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멘토에게 듣는 직업세계] “오로지 고객 위해 존재…사람 좋아하고 언어 능력 뛰어난 이에게 잘 맞아”
“세계일주를 한다 해도 이렇게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진 못할 거예요. 마치 세계가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객실팀 신관담당 책임자인 손선향 씨는 15년 경력의 GRO다. 한국을 찾은 VIP가 호텔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모든 서비스를 총괄한다. 고객이 투숙하는 동안 크고 작은 일을 비서처럼 처리하고 돕는 게 임무.

그는 이런 직업적 특성을 ‘특혜’라고 표현했다.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평생 만날 기회조차 없었을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점은 호텔리어라는 직업의 매력이 아닌 특혜”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와 인연을 맺은 세계 정·재계 인사, 영화배우, 운동선수, 음악가 등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어제 저녁 말동무를 했던 사람이 오늘 조간신문 1면에 등장한 거물이더라”는 경험부터 007가방 한가득 팁을 주던 아랍 왕자까지 남들은 경험하지 못할 에피소드가 끝이 없다. 이렇다 보니 각국 대통령이나 기업인의 유명세를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고객과의 인연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는가 하면, 한국에 올 때마다 호텔을 찾아 반갑게 해후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인연이 가능한 것은 “속으로부터 소통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객과 호텔 직원이라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진심으로 소중한 마음을 나누려고 합니다. 서비스의 차이는 사실 아주 작은 데서 나타나거든요. 손선향의 서비스에선 인간 냄새가 난다는 칭찬이 가장 듣기 좋습니다.”

손 책임자의 서비스관(觀)은 ‘디테일로 승부한다’는 것. 예컨대 고객이 좋아하는 색, 음악 등 취향을 미리 알아내 객실을 꾸미는 식이다. 꽃이나 섬유에 알레르기는 없는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등은 VIP 고객을 맞이할 때 필수 체크사항.

물론 고객의 방문 목적에 맞는 서비스를 한다는 건 ‘기본’ 전제조건이다. 그는 “비즈니스 목적으로 방문한다면 일을 잘할 수 있게, 휴가를 보내기 위해 방문한다면 최대한 잘 쉴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의 귀빈을 영접하고 그들과 친구가 되는 호텔리어에게 ‘직장 생활의 애환’이라는 게 있을까? 물론 있다. 우선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라는 특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때로 ‘나’를 버려야 하는 순간도 있다고.

“세상에 별별 사람이 다 있듯 특급호텔을 찾는 사람은 각양각색입니다. 직원을 하인 다루듯 하는 대부호,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프로라면 어느 순간에나 서비스 정신을 유지해야 합니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 고객과 직원이라는 위치는 변하지 않아요. 그래서 서비스는 과학적이고 치밀한 업무 수행이라고 생각해요. 고객과의 관계에 따라 결과물이 크게 달라지거든요.”

“인성·언어 능력이 가장 중요해”
[멘토에게 듣는 직업세계] “오로지 고객 위해 존재…사람 좋아하고 언어 능력 뛰어난 이에게 잘 맞아”
손 책임자는 호텔리어의 자질로 ‘서비스 마인드’를 첫손에 꼽았다. 결국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관심과 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요즘 내로라하는 스펙을 갖춘 지원자가 넘쳐나요. 해외 호텔학교를 거친 유학파도 많고요. 그러나 호텔이 필요로 하는 건 계량화된 스펙과 거리가 멀어요. 사람을 좋아하고, 남에게 관심이 많고, 돌봐주는 걸 기쁨으로 여기는 인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천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호텔은 좋은 직장이 아니죠.”

인성과 함께 필수로 갖춰야 할 조건이 또 있다. 바로 어학 실력. 손 책임자의 경우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다. 중국인 고객이 늘어나면서 최근엔 중국어에까지 도전 중이다. 놀라운 사실은 여행을 제외하면 해외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미국 방송 등을 통해 영어를 자연스레 배웠고, 일본어는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배웠다”는 다소 ‘얄미운’ 답을 내놓았다.

“세계 각국의 고객을 맞이하려면 언어 능력이 기본으로 필요하죠.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은 호텔리어의 기본 조건입니다. 이와 함께 누구에게나 열린 글로벌 마인드를 가져야 해요. 그래야 세계의 고객들과 친구가 되지요.”
[멘토에게 듣는 직업세계] “오로지 고객 위해 존재…사람 좋아하고 언어 능력 뛰어난 이에게 잘 맞아”
글 박수진 기자 sjpark@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