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태어나려는 자는 그 알을 부숴야 한다.”

전현희 의원과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회사로 향하는 길, 기자는 잠시 서점에 들렀다. 너무나 오래전에 읽었던 책 ‘데미안’을 다시 읽어보기 위해서였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나른한 몸을 침대에 맡긴 채 줄거리를 하나둘씩 되살려 보았다. 그리고 발견한 이 유명한 구절은 그날 오후의 인터뷰 전체를 꿰뚫는 문장이었다.

Der Vogel ka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ss eine Welt zersto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sst Abraxas.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세계를 부숴야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나의 꿈 나의 인생] 국회의원 전현희
단정한 옷매무새, 깔끔한 단발머리, 흐트러짐 없는 자세에서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인터뷰 내내 잃지 않았던 미소는 함께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했다. 동행했던 염희옥 대학생 기자가 그 느낌을 적확하게 표현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신 것 같아요.”

전현희 의원은 1964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자란 곳은 부산이고 고등학교도 부산 동구에 있는 데레사여고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러 다니고 군것질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남자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노닥거렸던 말괄량이였어요.”

호기심이 많아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다녔다는 전 의원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책을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대학 입시 준비 기간에도 하루에 책 한 권을 읽었던 독서광. 특히 철학책을 좋아해 교과서에 나오는 웬만한 철학책들은 거의 섭렵했다.

“책을 읽으며 ‘인생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이뤄야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까’와 같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한때는 쇼펜하우어의 염세 철학에 빠지기도 했죠.”

그 당시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지 묻자 전 의원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꼽았다.

“데미안에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세계를 부숴야 한다’라는 대목이 있잖아요. 당시 제가 막 사춘기를 지나면서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나를 벗어 던지고 또 다른 곳을 지향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어요. 그 기억 때문에 데미안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명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는 세 가지 직업 ‘국회의원·변호사·치과의사’가 오롯이 떠올랐다. 어찌 생각하면 남들이 가기 힘든 길만 골라 걸어왔던 전 의원의 삶. 그가 깨왔던 세계의 잔해만큼 그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처음 치대를 선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셨던 어머니께서 자신이 전문적인 직업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에 남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꼭 의사가 돼야 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딸로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할까요?(웃음)”

그렇게 서울대 치대에 입학했고 1990년 순조롭게 졸업했다. 그리고 시작된 치과의사 생활. 남들이 보기엔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 ‘꿈의 직업’이겠지만 전 의원은 만족하지 않았다.

“좀 더 활동적이고 사회 지향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고시촌으로 향했습니다. 제 내부에서 ‘늦게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능동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자각이 일어났던 거죠. 후회하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조인인 남편의 영향도 있었고요.”

전 의원은 또 한 권의 책 이야기를 꺼냈다. 소설 ‘닥터스’. 손을 다쳐 수술이 불가능하게 된 외과의사 베넷이 로스쿨에 진학해 의학전문 변호사로서 새 삶을 살아간다는 내용을 읽고 ‘노력하면 자신이 원하는 또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언제나 새로운 삶을 꿈꾼다
[나의 꿈 나의 인생] 국회의원 전현희
변호사 시절, 전 의원은 혈액 질환·혈우병·에이즈 환자를 위한 무료집단소송을 많이 했다. 하지만 법의 사각지대 때문에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국회를 쫓아다니며 청원해보기도 했지만 높기만 한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았다.

“변호사로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법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회의원’에 도전한 건 이 때문이었어요.”

당내 인맥도 없는 상태에서 비례대표 공천 신청도 스스로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비례대표 7번으로 당당히 국회에 입성, 지금은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이자, 민주당 원내 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 의정 활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 물어봤다.

“지난 연말에 예산안 날치기 통과 때 야당 입장에서 통과를 저지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역부족이었어요. 원내 대변인으로서 그 결과를 브리핑하려고 기자회견장에 섰을 때 그동안 쌓였던 소수 야당으로서 겪은 서러움, 약속을 지켜내지 못한 미안함에 저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을 흘리며 브리핑했던 일이 기억에 남네요.”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빈틈없는 모습으로 브리핑했어야 하는데 북받치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또 한 번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졌다. 그럼 의정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때는 언제일까?

“제가 만든 법이나 정책이 통과돼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혜택을 줬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가 의정 활동 초기에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에 부과되는 관세와 부가가치세를 감면하는 법안을 제출했었어요.

희귀난치성 환자 중에는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많아서 병 자체만으로도 힘겨운데 치료비까지 부담하려면 이중 고통이 됩니다. 그 법안이 통과됐을 때 환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때 ‘국회의원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국회의원의 본분은 ‘국민들을 더 잘 살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전 의원. 그래서일까.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최우수상, 공동선 의정활동상 등을 수상했고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 Best 5에 꼽히기도 했다. 또 3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실력과 신뢰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제 개인 역량이 뛰어난 건 절대 아닙니다. 아직 국회의원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아요.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토론회와 공청회를 통해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각계각층의 전문가 집단과 함께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해법을 찾아간 과정이 주효했어요.

전현희 의원실은 국회 보좌진 사이에서도 ‘일 많은 곳’으로 악명 높은 곳입니다. 함께 고생하는 9명의 보좌진과 ‘일은 많더라도 즐겁게 일하자’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많았던 같아요.”
[나의 꿈 나의 인생] 국회의원 전현희
가족에게서 희망을 느껴

변화는 불안을 불러온다. 치과의사·변호사·국회의원이라는 인생의 변화를 겪으며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의 장점은 긍정적·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성격인 것 같아요. ‘그저 잘되겠지’ 하고 편하게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죠. 이것이 모든 일이 잘 풀린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된 이후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는 말을 덧붙였다. 공적인 일에 밀려 사적인 만남의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 안에서 희생되는 ‘삶의 소소한 행복’이 아쉽다고 했다. 그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힘을 얻는다고 한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 용기를 많이 얻어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시는 모습이 자극이 됩니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인생을 생각하면서 힘든 시기를 이겨냈어요. 남편과 이번에 고 3이 되는 딸에게서도 희망을 얻습니다.”

숨 가쁜 일정과 격무, 그에 따른 스트레스로 많이 힘들 법도 한데 전 의원의 모습에서 ‘괴로움’을 느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가족’이라는 따뜻한 온기가 항상 그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가족에게 상당히 미안해했다.

보통 귀가 시간이 밤 10~11시 정도. 아내로서 엄마로서 10점 만점으로 스스로를 평가해 달라고 하자 손사래 치며 ‘낙제점’을 줬다. 특히 이번에 고 3이 된다는 딸에게는 상당히 미안한 눈치였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는다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딸아이를 출산한 것’이라고 답했다.

“아이에게 ‘이런 사람이 돼야 해, 이런 일을 해야 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자기 삶, 자기 꿈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너무 풀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설정해주신 대로 살다가 나중에 그 방향을 틀었던 경우이기 때문에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주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또 한 번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파

오는 5월 대변인 임기가 마무리된다는 전 의원은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서 정책 활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보육비·양육비 부담 경감을 골자로 한 저출산 문제와 어르신 일자리·노후 소득 보장과 같은 고령화 문제, 그리고 대학생 일자리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나의 꿈 나의 인생] 국회의원 전현희
“민주당 대학생 정책지원단장을 했었어요.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이 큰데 이것을 실질적으로 인하할 수 있는 정책이나 법안을 마련해보고 싶습니다. 또한 졸업 후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고 싶습니다.”

덧붙여 앞으로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갈 대학생들이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점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했다. “대학생들이 희망을 가지고 학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청사진을 그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대학생 스스로도 힘든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 꿈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조언을 잊지 않았다.

“내가 꾸는 꿈을 믿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스스로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꿈을 믿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신을 던져서 최선을 다한다면, 또 결과에 조바심 내지 않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그 꿈이 자신의 곁에 와 있을 것입니다.”

전 의원 자신의 삶이 바탕이 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향후 인생 계획을 물어봤다. 또 한 번 껍질을 깨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아닐까.

“정치에서 은퇴한 후에는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가르치는 일은 제가 즐거워하는 일 중 하나인데 지금도 강연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자그마한 지식을 주는 것도 의미 있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그동안 쌓았던 경험을 통해 봉사하는 일도 하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 본 기자의 마지막 질문은 언제나 같다. “행복한가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전 의원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 행복합니다.”


인터뷰 뒷이야기

인터뷰는 2월 11일 국회의원회관 전현희 의원 사무실에서 있었다. 밸런타인데이 3일 전인 이날, 홍대 근처에 있는 유명 제과점에서 하트 모양의 초콜릿을 구입해 선물했다.

밝은 웃음으로 초콜릿을 받아든 전 의원은 “올해 처음으로 받은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이라며 기뻐해 선물했던 기자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했다. 우연히도 기자가 초콜릿을 구입하기 위해 들렀던 제과점은 대학 시절 전 의원이 지금의 남편과 데이트하며 자주 방문했던 곳. 전 의원은 인터뷰 후 트위터에 “기자님께서 주신 하트 초콜릿, 많은 추억도 같이 주셨네요”라며 감사의 멘션을 남겼다.


국회의원 전현희

1964년 경남 통영 출생 서울대 치과대학 졸업 고려대 법무대학원(석사)
제18대 국회의원(민주당, 비례대표) 국회
국민건강복지포럼 대표의원
민주당 원내 대변인

수상 경력

2008~2010년 국정감사 우수의원(국정감사NGO모니터단 선정)
최우수 국회의원연구단체상(국회의장 선정)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최우수상(매니페스토운동본부 선정)
제1회 공동선 의정활동상(사회정의시민행동 선정)
백봉신사상 올해의 신사의원상(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 Best 5(신라대 선정)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herejun(Twitter)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