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은의 달콤살벌 연애 코치

요즘 유행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차가운 도시 남자·여자를 가리킨다는 ‘차도남’과 ‘차도녀’다. 얼마 전까지는 엄친남 엄친녀, 훈남 훈녀가 유행하더니 이젠 까칠하고 차가운 게 대세란다. 별의별 유행어가 만들어지는 세상이라지만, 사려 깊고 따스한 남성이 최고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세상이 참 빨리 변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LOVE] 차도남 차도녀? 착각하지 마세요
한 시사평론가는 차도남, 차도녀가 유행하는 것을 두고 “몇 년 전까지는 꽃미남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그런데 꽃미남은 정말 꽃처럼 대우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여성들은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짐승남 캐릭터를 선호하게 됐다. 그러나 짐승남에게서 섬세한 정서적 만족까지는 얻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차도남이라는 캐릭터를 창조해내기에 이르렀다”고 언급했다. 유행어는 돌고 도는 것이고, 얼마 안 있으면 또 다른 캐릭터가 인기를 끌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까칠한 캐릭터가 유행하면서 우리는 연애에 대해 한 가지 중대한 착각에 빠질 확률이 높아졌다. 대표적인 까도남 캐릭터였던 현빈이 대세로 떠오르니까 ‘요즘은 저렇게 까칠한 게 대세구나’라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브라운관 속의 가공된 캐릭터는 그저 캐릭터일 뿐이다. 연애 초보자나 특정 캐릭터가 현실에서 대세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종종 잘못된 연애의 길로 빠지곤 한다.

이것이 왜 잘못된 연애의 길이라는 것일까? 차갑고 도시적인,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고급스러운 심미안을 갖고 있는 소위 까도남, 까도녀가 분명 현실에서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정말로 대세인 캐릭터가 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각박할 대로 각박해지지 않았는가. 바로 옆 사람을 누르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교육은 여전히 모든 사람을 한 줄로 세우는 데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연애나 결혼조차 사랑과 운명보다는 경제 논리에 좌우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임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아무도 순정을 말하지 않는 시대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말하는 남자는 사라지고 ‘찍어서 넘어갈 만한 나무만 골라서 한번 슬쩍 찔러나 본다’고 말하는 소심한 남자가 늘어나는 세상에 우리는 과연 까칠한 이성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이기나 한 걸까.

차라리 우직하고 촌스러워도 나 하나만 바라봐주고 내 못난 점은 모른 척 눈감아주는 착한 사람이 곁에 있어 주기를 우리 모두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 속에서 까칠하고 도시적인 모습을 어필하던 까도남 현빈도 결국은 한 여자를 극진히 품고 사랑하는 우직한 모습을 보여줬다. 까칠하다 차갑다 하는 것이 결국 캐릭터를 띄우기 위한 장치였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라면 따뜻한 사랑을 할 준비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내 일정 영역을 내어 주고 그 사람의 영역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것은 깨지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 내 것이 되기도 한다. 제아무리 까칠한 남자였다 해도 사랑의 힘으로 우직한 남자가 되지 않던가.

까도남과의 스타일리시한 사랑을 꿈꾸고 있다면 정신 차려라. 차도녀와 함께 당신의 러브라이프를 꾸며보고 싶다면 아서라. 당신은 결국 따뜻하고 온화한 사랑에 목마른 현대인일 뿐이니까.
[LOVE] 차도남 차도녀? 착각하지 마세요
곽정은

‘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이자 연애·성 칼럼니스트.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전략이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