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40자 인터뷰

대학 초년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형님 한 분이 있다. 유명 외국계 증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분인데, 그쪽 세상에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 누구나 그렇듯 눈 아래 ‘이상한 까만색’을 묻히고 다닌다. 이걸 전문 용어로 다크서클이라고 하던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분의 퇴근 시간은 보통 밤 11~12시. 새벽 2시에 귀가하는 경우도 있고 며칠간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더러 있다고 한다. 아마도 냄새가 많이 날 듯싶다.

여하튼 그날은 싸락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깜빡이는 가로등은 퇴근길을 더욱 쓸쓸하게 했고 홀로 외로이 서 있는 전봇대는 “세상이란 고독한 것이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전봇대를 붙들고 울어볼까 하는 찰나 아니나 다를까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와, 소주 한 잔?”

‘내일은 토요일’이라는 사실에 안심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새벽 4시. 많이도 마셨다.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4열 종대로 나란히 서 있는 소주병들이 푸르른 봄의 새싹처럼 보일 무렵 그분이 한마디했다.

“(대학)졸업 전에 제대로 된 연애나 한번 해볼걸.”

“왜요?” “그럼 그 추억으로 평생 먹고살 거 아니냐.” “지금 하면 되잖아요.” “만날 새벽에 퇴근하는데 언제 연애하누. 이러다 어찌어찌 결혼하고 살겠지 뭐.”

분대 단위의 술병들이 외치는 ‘충성’ 경례를 받으며 술집의 두꺼운 철제문을 닫고 나오는 길. 어느덧 아침이 됐다. 저 멀리 신촌의 어느 대학 정문이 보이고 짙은 백팩을 멘 학생들이 그 문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모습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왔다.

웃음기 빠진 얼굴들, 이들은 대학 시절 해보고 싶은 것 모두를 졸업 전까지 마칠 수 있을까. 저 멀리 ‘입학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보니 특히 새내기 대학생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물어봤다. ‘새내기 대학생들에게 졸업 전까지 이것만은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은 그 무엇’을 주제로 트위터 인터뷰를 시도했다.

[새내기 대학생활 백서] 새내기들이여, 졸업 전 이것만은 꼭!
키스…였던 것이다

가장 먼저 답을 준 사람은 본지에 ‘할까말까 직업발명왕’을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현태준(@pollalla) 씨. 일단 그의 답변을 그대로 옮긴다.

“제 나름대로 권하고 싶은 것은 나 홀로 여행, 연애, 키쓰, 동아리 활동 등인데요. 이 중에서도 나 홀로 여행과 연애는 필수입니다.”

죽 읽어 나가던 본 기자의 눈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키쓰’. 얼마나 강렬한 키스인지 그는 노홍철의 th 발음을 섞었다. (그거 아는가? 제대로 된 th 발음은 이와 이 사이에 혀를 조금 빼면서 천천히 공기를 빼낸다는 것을. 완전 야하다!) 현 씨에게 ‘추천하고픈 여행지’를 추가로 물어보니 “가까운 이웃동네 여행부터 시작해 인근 도시로 점점 영역을 넓힐 것”을 권했다.

10년째 한국경제신문을 구독해 최근 3개월 무료 서비스를 받았다는 개그맨 고명환(@gomming) 씨는 “무조건 해외로 나가볼 것”을 강력히 권했다.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떠난다면 앞으로의 인생에서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스스로 번 돈으로 나간다면 더욱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 씨는 책과 신문을 많이 읽을 것을 추천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 ‘나만의 차별화 정책’으로 책과 신문을 읽는다면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이문구의 ‘관촌수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권정생의 ‘몽실언니’, 천명관의 ‘고래’,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등의 도서를 친절하게 추천해주었다. 이 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고 씨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괴로울 때 읽었던 책인데, 그래서인지 책에는 작가의 글보다 자신이 써놓은 글이 더 많다고 한다.

[새내기 대학생활 백서] 새내기들이여, 졸업 전 이것만은 꼭!
쓰디쓴 사랑은 인생의 보약일지니

KBS ‘남자의 자격’ 합창단 단원이기도 했던 탤런트 박슬기(@Impolaris) 씨는 ‘사랑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달콤하다기보다 쌉싸래한 사랑의 경험이었다. 그의 답변은 “미친 듯이 사랑하고 상처받고, 그 억누르지 못할 슬픔에 술을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신 다음 길바닥에 누워 자다가 입 한번 돌아가보셨음 해요.”

본 기자, 수년 전 어느 날 밤 모 여대 정문 앞에서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마시고 길바닥에 누워 자고 있던 여성 한 분’을 본 적이 있는데 그분이 박 씨가 아니었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랑의 열병을 말한 사람이 또 있었다. 정동영(@coreacdy) 민주당 최고위원의 답변은 ‘꼭 열애의 열병에 빠져볼 것’을 시작으로 ‘논리학 강의 수강’과 ‘자기 주도로 동아리 하나 만들어볼 것’이었다.

안상수(@ahnsangsoo) 한나라당 대표는 봉사활동을 권했다. 그는 “봉사활동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힘과 기쁨을 주고, 나에게 보람과 자긍심을 선물해줄 것”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나의 꿈과 비전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탤런트 안선영(@anney_love) 씨는 총 10가지를 추천했다. 앞서 만화가 현태준 씨가 추천했던 혼자 여행하기를 시작으로 자원봉사, 영어 공부, 연애, 자격증 취득, 국토대장정, 외국인 친구 사귀기, 아르바이트, 인턴십, 독서가 그것이다.

영국 유학파인 안 씨는 특히 영어를 강조했는데, 호텔리어 역으로 출연했던 드라마 ‘미스터 굿바이’를 촬영할 때 실제 호텔 직원으로 착각한 외국인 손님들의 질문에 영어로 친절히 답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탤런트 소유진(@YUJIN_SO) 씨는 대학 시절 자신이 하지 못해 아쉬웠던 ‘캠퍼스 커플’과 ‘미팅’을 들었다. 본 기자도 못해본 것들이라 공감 100% 답변이었다.

‘떠나온 걸까 떠나가는 걸까’

건축가이자 가수인 양진석(@JinseokYang) 씨는 ‘국도 여행’을 권했다.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새로운 풍경을 보면서 다양한 삶을 알게 된다”는 것이 이유다. 인도, 아프리카 등 평소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가보길 권했으며, 국내에서는 서해안과 동해안을 꼽았다.

국도 여행이라면 영화배우 박한별(@starlyshop) 씨가 보내준 답변인 “학생다운 모습으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잊지 못할 추억 만들기”를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롤러코스터, 베란다 프로젝트의 멤버 이상순(@leesangsoon) 씨는 “공부 이외에 열정적으로 빠질 수 있는 취미를 가질 것”을 권했다. 그는 ‘장기 배낭여행’도 추천했는데, 베란다 프로젝트 ‘Day Off’ 앨범 수록곡 ‘Train’을 들으며 이곳저곳 돌아다닌다면 세상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herejun(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