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인터뷰] “밸런타인데이, 이 사람에게 초콜릿 받고 싶다!”

직장인들은 ‘보너스’라는 것을 받는다. 명절이나 연말 성과가 좋을 때 주어지는 ‘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너스가 직장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에게도 1년마다 받는 보너스가 있으니, 바로 ‘세뱃돈’이다.

찬란한 한민족의 문화에서 시작됐고 국가가 친히 휴일로 지정해 조달 환경을 조성했으며 일가친척 및 이웃이 지급 주체의 역할을 맡는 세뱃돈. 넙죽 절하고 덕담을 경청하는 정도의 의식을 마치면 꽤 두둑한 돈을 챙길 수 있다. 반만년 한민족 문화가 탄생시킨 세계 최고의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고맙습니다, 조상님.

그러나 수입이 늘었다고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 설이 끝나면 본격적인 지출 시기에 돌입하는데 그 포문을 여는 것이 밸런타인데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여성이 남성에게 주는 날’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남녀가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연인 관계에서만이 아닌 우정의 표현이나 인맥 관리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높다. 그렇다. 줄 사람은 많아졌고, 그만큼 우리네 지갑은 살이 빠지고 우리의 진도 빠진다.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원래 세상이라는 것이 주는 것이 있으면 받기도 하는 법.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아직 잊지 못한 옛 연인에게서 초콜릿과 함께 새로운 시작의 제스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또 오래도록 짝사랑했던 사람이 주는 손수 만든 초콜릿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초콜릿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자신이 특별히 생각하는 사람에게 받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물어봤다. “누구에게 초콜릿을 받으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까?” 총 15명의 각계 인사에게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본 기자, 인기남 됐다

첫 답변은 전현희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해줬다. 솔직히 말하겠다. 본 기자, 전 의원의 답을 보고 순간 ‘두근’했다. 전 의원의 답신은 “기자님”. 기자의 볼이 발그레 홍조를 띠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음은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당연히 답신은 “보내드리겠다”였고 전 의원은 “정말? 기다릴게요”로 화답했다.

본 기자는 즉시 취재수첩 캘린더의 2월 11일 난에 “우체국 초콜릿 전 의원님”이라 써놨다. 전 의원은 RT(리트윗, 팔로어에게 글을 전달하는 것)을 자주 사용하는데, 대화를 본 어느 트위터리안은 본 기자에게 ‘질투난다’는 반응의 멘션을 보내왔다.

본 기자에게 초콜릿을 받고 싶다고 말한 사람은 또 있었다. 바로 방송인 김미화 씨다. 김 씨는 본 기자에게 받고 싶다는 사실을 다른 트위터리안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는지 DM(Direct Message, 쪽지 기능)으로 보내왔다.

기꺼이 “보내드리겠다”고 답신을 보냈더니 “받은 거나 다름없다”며 감사의 인사를 보내왔다. 김 씨는 취재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답신을 보내왔는데, 결과적으로 이번 140자 인터뷰의 시작과 끝이 본 기자에게 초콜릿을 받고 싶다는 대답이었다. 이렇게 즐거운 취재는 처음이다.

여보, 초콜릿 좀 줄텨?

개그맨 남희석 씨는 “서울 암사동 신암초 5, 6학년 때 첫♥인 박영주”라는 로맨틱한 답변을 보내왔다. 애처가로 유명해서 ‘아내’라는 답변을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이 답변은 RT 기능을 통해 다른 트위터리안들에게 전달됐는데, 질의 과정을 본 어느 트위터리안은 “본좌님(남희석 씨) 입술을 훔쳤다던 그분?”이라며 추가 정보를 알렸다.

자신의 배우자를 언급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1월 초 ‘당신의 모든 순간’의 연재를 마치고 휴식에 들어간 만화가 강풀 씨는 “아내요(단연코)”라는 답을 보내왔다. 강 씨는 아내에 대한 애정 어린 멘션을 많이 올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하나 소개하자면 “아내께서 데리러 오신단다. 아싸 업어달래야지”가 있다.

가수 알렉스 씨는 “와이프 될 사람이요”라고 결혼 소망을 담아 답변했다. 이 답변을 본 어느 팬은 “알군 패밀리(알렉스 팬클럽)가 아닌 것에 실망했다”며 귀여운 항의를 하기도 했다.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은 “1순위는 고 1인 제 딸, 2순위는 제 안사람”이라고 하며 가족애를 자랑했다. 진 의원은 추가로 탤런트 황정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김연아 선수를 꼽았다.

길라임에게 초콜릿을 받을 수 있다면…

다른 유명 인사에게 초콜릿을 받고 싶다고 한 유명인은 진 의원 외에도 많았다. 강풀과 함께 웹툰 1세대인 만화가 메가쑈킹 씨는 “반명함판 크기의 사진만 봐도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요”라며 탤런트 민효린과 가수 아이유를 꼽았다.

국민가요인 ‘마법의 성’을 부른 가수이자 성공한 여의도 증권맨으로 잘 알려진 김광진 동부자산운용 투자전략본부장은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길라임’에게 받고 싶다”고 했다.

김 본부장과 주원 KTB투자증권 대표의 접점은 같은 증권가 사람이라는 것과 ‘시크릿가든’의 팬이라는 것이다. 주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주원앓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그가 꼽은 사람은 “소녀시대 태연”이었다. 덧붙여 주 대표는 “오래전 같이 근무했던 부하 직원에게 받고 싶다”는 소망을 함께 드러내기도 했다.

이 밖에 탤런트 이유진 씨는 같은 탤런트인 송중기를 꼽았고, KBS드라마 ‘근초고왕’에서 홍란 역으로 열연 중인 탤런트 이세은 씨는 “극 중 ‘여구왕자’와 왕종명 MBC 기자에게 받고 싶다”고 했다.

음악인 루시드폴은 “영화배우 정유미”를 꼽았으며 홍대 4대 얼짱 중 한 명으로 2집 준비에 한창이라는 음악인 뎁 씨는 “탤런트 이민호에게 받고 싶다”는 달콤한 소망을 드러냈다.

예상 외의 인물을 꼽은 이도 있었다. 민동석 외교부 제2차관은 “PD수첩의 김은희 작가와 김보슬 PD에게 받고 싶다”고 전해왔다. 김은희 작가와 김보슬 PD는 2008년 4월 ‘PD수첩’에서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등을 제작, 방송했다.

한편 MBC의 간판 앵커 중 한 명인 김주하 앵커는 가슴 찡한 답변을 했다. 그가 꼽은 사람은 지난 천안함 실종 장병 수색 작업 도중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 한주호 준위. 그는 “작년 한 해 가슴 아픈 사연이 많았지만, 이 분(한 준위)은 스스로 지원하신 분이니…(더욱 안타깝다)”라고 하며, 한 준위처럼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 / @herejun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