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어과를 졸업한 후 2년간 무역 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대학 때는 취업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무역 회사에서 일할 때는 ‘내가 진정 원하는 직업인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게 됐다. 결국 더 넓은 세상을 충분히 둘러본 후 취업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세상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2009년 1분기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았다. 2009년부터 일본워킹홀리데이 발급정원이 3600명에서 7200명으로 증원된 덕분에 더욱 수월하게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워킹홀리데이협회의 카운슬러에 따르면 정원이 늘어난 만큼 신청자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알고 보니 상당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것이었다.일본어 전공자로서 남들과는 다른 1년을 보내고자 했다. 엉뚱하게도 나는 ‘미용 인턴십’을 선택했다. 일본 미용실은 비싸지만 친절하기로 유명하지 않던가. 진정한 서비스를 배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또 그들의 유행 패턴을 한 발 빠르게 알고 일본의 미용기기에 대한 공부도 해볼 수 있을 거란 계산이 있었다.
‘플라쥬 미용실’ 인턴십 과정 면접에 합격, 2009년 9월 7일 출국을 결정했다. 나고야, 오사카에 500점포 이상의 직영 체인망을 갖고 있는 ‘플라쥬’는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면서 대중적인 미용실로 유명하다. 그곳에서 나는 미용실 청소부터 시작했다. 또 교육을 통해서 염색, 파마 등의 방법을 배웠다. 한국에서 미용 일을 하고 있는 친구와 비교했을 때 나는 근무 시간이 짧고 급여가 많은 편이었다. 집을 구할 때도 미용실에서 지원을 해줬다. 손님이 많은 날은 하루 80여 명의 머리를 샴푸하기 때문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매월 급여 받는 날에 미용실 스태프들과 회식을 하며 피로를 달랬다.
그렇게 11개월을 근무했다. 힘들어서 중도에 하차한 한국인이 상당히 많았고 그중엔 미용 전공자도 있었다. ‘나만 끝까지 버틴 것인가’라며 스스로 대견해하기도 했다.
2010년 9월 7일 귀국했고, 그 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영어는 부족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모아둔 자금으로 우선 필리핀에 3개월 어학연수를 가려고 한다. 캐나다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 후에는 호주로 갈 계획이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준비할 때 내 주위 모든 사람이 말렸다. 취업할 때는 한 살이라도 어린 게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체험하고 앞으로 경험할 수많은 것이 남과 다른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추운 2월에 땅끝마을 해남에서 1개월 동안 자전거로 서울에 올라온 독한 사람이다. 일본에서 미용 인턴십을 할 때 식비로 지원되는 하루 도시락 비용 500엔 중 200엔을 절약하기 위해 슈퍼에서 유통기한이 몇 시간밖에 남지 않은 도시락을 사먹으며 살았다.
지금 내 통장에는 필리핀과 캐나다에 갈 수 있을 만큼의 자금이 예금돼 있지만,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젊어 고생한다’가 아닌 ‘젊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내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내 나이 서른 전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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