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후 무역 회사에 취직해서 1년간 근무를 하고 있던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외식 사업을 하고 계신 부모님의 가업을 언젠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훌쩍 세월을 등에 업으신 부모님 모습을 보면서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자고 결심한 것이다.

부모님은 나이가 꽉 찬 아들이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또다시 외국에 나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셨지만 서비스 강국인 일본에서 서비스 마인드를 체험해 가업을 성장시키겠다며 설득했다.

일본의 경우 워킹 비자는 100% 서류 심사만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서류상에 왜 일본에 워킹 비자로 가고자 하는지를 충분히 어필해야 한다. 나는 사유서와 활동계획서를 수십 번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고 워킹홀리데이협회 카운슬러의 조언을 받았다.

운 좋게 7 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한 번에 합격했다. 서둘러 회사를 정리하고 밤에는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말을 배우기 위해 ‘활용일본어’를 공부했다.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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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1개월 만에 출국준비를 끝냈다. 너무 짧은 기간에 출국준비를 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일본어 공부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 지금도 한국에서 일본어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크다.

한여름에 도착한 일본은 매우 덥고 습했다. 집은 원룸으로 좁은 편이었다. 도쿄는 집세가 비싸기 때문에 혼자 사는 건 엄두를 낼 수 없었고 난생처음 본 사람과 한방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집은 깨끗했지만 좁아서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활발한 성격 덕분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야키니쿠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처음엔 설거지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주방에서 칼을 잡고 있다. 주방에서 칼을 잡는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사장이 나를 신뢰한다는 것이고, 나의 요리 실력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업무시간은 일주일에 3일, 오후 시간이다. 그 외에는 일본어 학교 중급 클래스에 다니며 언어 공부를 했다.

일본어 실력이 어느 정도 향상되자 욕심을 내 한일 퓨전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냈다. 아르바이트를 두 개나 하게 된 것이다. 월·수·금은 야키니쿠 전문점에서, 화·목은 한일 퓨전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

외식 사업이 꿈인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아르바이트였다. 나는 그들의 음식뿐 아니라 인테리어와 서비스도 함께 공부했다. 운 좋게도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소식이 알려져 게요리 전문점에서 근무 제의가 들어왔다. 시급과 근무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총 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일본어 학교 친구들이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볼 때면 나는 “꿈을 위한 발걸음은 전혀 무겁지 않다”고 대답한다. 큰마음 먹고 일본까지 온 만큼 열심히 할 각오는 돼 있었다.

현재 하루 7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본어 학교를 98%의 출석률로 다니고 있다. 그래도 주말에는 꼭 시간을 내 여행을 하면서 유명 레스토랑에서 음식 맛을 보고 인테리어 등도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1년이 만료돼 다시 유학 비자를 신청했다. 일본어 실력을 좀 더 쌓은 후 귀국해서 바로 창업을 시작할 것이다. 이미 지난 7월 잠시 한국에 나가서 창업을 위한 장소를 물색해두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본에서 보낸 1년의 생활, 그리고 추가 6개월의 생활이 나의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일본 출국 전 담당 카운슬러가 해줬던 말이 있다. “매일 아침 양치질을 할 때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 일본에 왔는지 생각하라.” 아침에 생각을 하면서 매일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매일 아침 양치를 할 때 거울을 보며 “황효정 왜 일본에 왔니?”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대답은 간단하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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