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의 ‘인문학이 에너지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은 제면업자로 성공한 고리오가 두 딸 아나스타지와 델핀을 애지중지 키워 귀족과 자산가에게 거액의 지참금과 함께 결혼을 시킨 후 두 딸에게 처절하게 버림받고 쓸쓸하게 죽어간다는 내용이다. 소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Humanities] 성공하려면 ‘10년의 굴욕’을 자처하라
>일러스트 신성희">
“소문에 따르면, 아버지 중의 아버지인 이 훌륭한 아버지는 딸자식들을 잘 결혼시켜서 행복하게 해주려고 각각 오륙십만 프랑씩 주었고 자기는 일 년에 팔천 내지 만 프랑의 연금만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딸들이 항상 딸인 줄 믿고 두 살림을 차리고 두 집을 마련해서 자기를 사랑하고 아껴줄 줄 믿고서 말이에요. 2년도 안 되어서 사위들은 마치 천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를 자기들 사회에서 쫓아냈대요.”

이 작품은 박경리 선생이 쓴 ‘김약국의 딸들’에서만큼 부모에 대한 딸들의 소행이 소름을 끼치게 한다. ‘김약국의 딸들’에서도 못된 사위가 나오는데 ‘고리오 영감’에서도 사위의 존재는 비슷하게 재현된다.

“당신은 사위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보았어요? 우리는 사위를 위해 소중한 딸을 기르는 거예요. 딸은 우리와 수천 가지 정으로 연결되어 있지요. 딸은 17년간이나 우리 가정의 즐거움이어서, 라마르틴의 말에 기대어본다면 순백의 영혼이지요.

그런데 이 딸은 나중에 우리 가정에 해독을 끼치는 존재가 된다는 말이에요. 사위가 딸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면, 그는 우선 그녀 사랑을 도끼자루 쥐듯이 꼭 쥐고서 딸의 몸과 마음에서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감정을 싹둑 베어버린단 말이에요. 어제까지만 해도 딸은 우리 것이었고, 우리는 딸에게 전부였지요. 하지만 다음 날에는 딸은 우리의 적이 되어버려요.”

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통영을 배경으로 김약국의 스산한 가족사를 그리고 있는데 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 5자매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고 박경리 선생이 37세 때 쓴 작품이다.

그런데 두 작가가 ‘김약국의 딸들’과 ‘고리오 영감’을 쓴 시기는 우연하게도 37세 때였다. ‘고리오 영감’은 발자크가 37세 때인 1935년에, ‘김약국의 딸들’은 1962년에 쓴 작품이다. 박경리는 이 소설에서 유명한 경구를 남긴다.

“옛날에 자식 앞세우고 길을 가면 배가 고파도, 돈을 지니고 가면 배 안 고프다 안 카드나.” 세상의 법칙에 대한 통찰이 번뜩인다. 발자크도 이 소설에서 유명한 경구를 남긴다.

“결코 자식을 낳지 말게! 자넨 자식들에게 생명을 주지만, 그 애들은 자네에게 죽음을 줄 거야.” 고리오 영감은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의 돈에 눈독을 들이는 딸들을 보고 으젠 드 라스티냐크에게 이렇게 절규한다.

으젠은 ‘보케르의 집’으로 불리는 하숙집에서 기거하는 청년으로 공부를 위해 시골에서 왔는데 사교계 귀족 부인의 정부 노릇을 하며 신분 상승을 꿈꾼다. 그러다 자신이 눈독을 들이는 부인이 고리오 영감의 큰딸인 아나스타지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나중에는 고리오 영감의 임종을 지키고 ‘순수’로 돌아간다.

‘김약국의 딸들’에서는 넷째 딸 용옥이가 탐욕과 욕망에 눈먼 세상을 정화하는 순수의 역할을 한다. 용옥은 아버지를 늘 위하는 착한 딸인데 시아버지가 겁탈하려 하자 집을 뛰쳐나와 남편이 취직해 있는 부산으로 간다.

그날따라 남편은 아내를 보러 통영으로 오며 길이 엇갈린다. 결국 그날 밤 돌아오는 배가 전복되면서 용옥은 아들을 안은 채 비명횡사를 하고 만다.

“사치의 악마가 그의 심장을 물어뜯었고 이욕의 열병이 그를 덮쳤고 황금에 대한 갈망이 그의 목을 태웠다.” 소설의 묘사처럼 18세기 중반 당시 프랑스는 귀족사회가 중병을 앓고 있었다. 발자크는 이러한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소설을 쓴 것인데 36세의 혈기를 느낄 수 있다.

당시 프랑스는 너무 왜곡된 섹스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귀족 부인은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정부(情夫)를 두었고 그 정부가 얼마나 재력 있고 미남인지에 따라 귀족 부인의 명성이 좌우될 정도였다.

귀족 부인은 경제력이 있어야 정부를 관리할 수 있었다. 빚을 질 수밖에 없었고 고리오 딸들은 ‘정부 관리’ 비용을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빼냈던 것이다.

‘10년 동안 몰입하면 이루지 못할 것 없다’

그런데 발자크의 인생 역정도 참으로 인상적이면서 쓸쓸하다. 소르본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발자크는 20세 때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문학의 길로 들어설 것을 결심했다. 무려 10년 동안 독서와 습작에 전념했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손을 대는 사업마다 실패하고 소설을 써서 겨우 빚을 갚았다. 더욱 불행한 것은 1850년에 18년간 사랑한 한스카 부인과 마침내 결혼을 했지만 5개월 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이른바 ‘10년 법칙’이다. 발자크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무려 10년 동안 독서와 습작에 온 힘을 기울였고 마침내 ‘고리오 영감’을 탈고하면서 문학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는 요즘 자기경영의 고수 혹은 프로페셔널의 조건으로 회자되는 ‘10년 법칙’을 실천했던 것이다.

앤더스 에릭슨 박사의 ‘10년 법칙(the 10-year rule)’이란 어떤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성과와 성취에 도달하려면 최소 10년 정도는 집중적으로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10년 동안 집중과 반복을 하며 열정적으로 몰입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어느 분야에서 최고수가 되려면 10년간의 집중적인 투자가 있어야 하며 그 이후에 큰 변화가 온다.”

에릭슨은 1990년대 초 ‘재능논쟁의 사례’라는 연구에서 프로 연주자는 스무 살까지 매일 연습시간을 꾸준히 늘려 결국 1만 시간에 도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게 이른바 ‘10년 법칙’이다. 반면 엘리트 연주자는 8000시간, 미래의 음악 교사는 4000시간을 연습했다.

아마추어들은 일주일에 세 시간 이상 연습하지 않았고 스무 살이 되면 2000시간 정도 연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1만 시간(10년)의 연습은 진정한 아웃라이어(역사상 큰 성공을 거둔 사람)가 되기 위한 매직 넘버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존 그리샴의 소설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원제 ‘The Firm’)’에서 주인공은 선택의 순간에서 제1의 기준이 ‘돈’이었다. 돈의 유혹에 끌려 변호사로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려는 주인공은 그만 함정에 빠지고 만다.

“좋소. 첫해에는 기본급 8만 달러에 보너스를 지급하겠소. 둘째 해에는 8만5000달러에 보너스. 컨트리클럽 회원권 둘에 새 BMW도 한 대 내드리게 될 거요.” 누구든 이러한 제안에 유혹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10년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에서 변호사가 연봉 50만 달러(이 소설이 출간된 1991년 기준)를 받는데 통상 로펌 입사 후 1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하버드대학을 나온 엘리트 변호사는 자신만의 이기적인 성공에 집착하다 그만 ‘일패도지(一敗塗地)’ 상태에 빠지고 만다. 어느 날 주인공은 은밀하게 접근해온 FBI 요원에게서 보트 폭발 사고로 숨진 것으로 알려진 두 명의 변호사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의해 청부 살해됐다는 얘기를 듣는다.

일순간 그의 일상과 직장생활은 감옥보다 더한 곳으로 변하고 만다. 그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직장을 선택할 때 ‘돈’을 제1의 기준으로 둔 데서 시작됐다. 젊음의 특권은 도전이다. 그 도전의 길은 돈을 탐하기보다 적어도 10년 동안 굴욕을 견디며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수많은 ‘아웃라이어’가 들려주는 교훈이다.

세계적 컨설턴트인 톰 피터스는 하나의 명품 브랜드가 있기까지는 최소한 10년 정도의 ‘굴욕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굴욕의 기간을 이겨내느냐 여부에 따라 ‘명품’이 될 수 있다. 즉 10년 동안 사람들의 검증기간을 거쳐 마침내 명품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명품 인재’의 탄생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Humanities] 성공하려면 ‘10년의 굴욕’을 자처하라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자녀경영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 다수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