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의 ‘인문학이 에너지다’

힐러리 클린턴이 즐겨 읽었다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다 성적불량으로 퇴학을 당한다.

학교 성적은 낙제를 면치 못했지만 폭넓게 독서를 해온 책벌레 홀든은 토마스 하디의 ‘귀향’,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베어울프’와 같이 우리에게 생소한 작품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다보면 홀든이 비록 성적불량학생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꽤 성숙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홀든의 이 말은 책벌레가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다.

홀든처럼 학교공부를 등한시하더라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학생이라면 언젠가는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주인공들을 가끔 본다.
‘공신’ 이기는 것은 ‘독신’이다

홀든처럼 이른바 ‘수불석권(手不釋卷?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의 자세만 유지하더라도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가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다. 처칠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늘 ‘꼴찌’였다.

하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은 게 있었는데 다름 아닌 독서였다. 처칠은 다른 과목은 낙제를 해도 영어만은 성적이 좋았고 또 역사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독서를 하면서 그는 ‘꼴찌’ 학생에서 사관생도로, 군인에서 정치가로서의 대변신을 준비해왔던 것이다. 후일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책을 써 노벨문학상도 수상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라!’ 뚱딴지같은 소리가 아니다. 더욱이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사는 그런 독신(獨身)을 뜻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독신(讀神)’은 ‘독서의 신’을 의미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이른바 ‘공신’이 우상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 공신으로 명문대에 들어가고 또 대학에 들어가서도 성적에 올인한다. ‘공신(공부의 신)’은 입시나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한 이상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공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독신’이다.

‘독신’은 사회에서 더 대접받을 수 있는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다. 평생 책을 가까이 하는 독신으로 살아간다면 설령 학교공부에서 ‘꼴찌’를 한다고 해도 마지막에는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은 학교공부는 낙제를 면치 못해 결국 퇴학을 당하지만 그가 ‘독신’인 이상 그의 인생은 언젠가 화려하게 꽃필 수 있을 것이다.

‘독신’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류의 지혜가 담긴 고전을 섭렵해야 한다. ‘왜 고전을 읽는가’의 저자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이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라고 말한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고전에 대해서 “진정한 대문호들을 제대로 알아야만 하는데 그 선두는 셰익스피어와 괴테”라고 강조한다.

작가가 되려면 셰익스피어와 괴테를 섭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역시 대문호가 될 수 있었던 비결로는 성서와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운 데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11세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서와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변신’에 나오는 시리아 전설 ‘퓌라모스와 티스베’의 이야기를 모방한 것이다.

“퓌라모스는 동방에서 가장 잘 생긴 총각이고 티스베는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로, 이둘은 앞뒷집에 이웃해 살았다. 처음에는 우정이 싹트다 점차 사랑으로 변해갔다. 양가 부모들은 반대를 했고, 이들은 눈짓, 고갯짓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다 밤에 몰래 성을 빠져나가 바빌로니아 왕의 왕릉이 있는 곳의 뽕나무 밑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티스베 아가씨가 몰래 와 기다렸다.

그런데 그만 사자 한 마리가 짐승을 잡아먹고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그곳에 나타났다. 티스베는 급히 동굴로 몸을 피하려다 너무 놀란 나머지 스카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사자는 이 스카프를 보자 피 묻은 입으로 갈가리 찢어버렸다. 뒤늦게 도착한 퓌라모스는 피가 묻은 스카프를 보고 기겁하고 말았다.

자신이 늦게 오는 바람에 티스베가 사자에게 잡혀먹은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옆구리를 찌르고 말았다. 티스베는 사자가 사라지자 동굴에서 나와 애인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애인이 피 묻은 스카프를 잡고서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티스베는 그제야 전후사정을 알아채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티스베도 퓌라모스의 체온이 남아있는 칼을 가슴에 안고 고꾸라졌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 비결은 ‘고전 독서’

이렇게 보면 세상에 온전히 창조적인 것은 없다. 셰익스피어는 오비디우스를 모방하고 또 그 이후의 수많은 작가들은 또 셰익스피어를 흉내 내 새로운 비극을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분야나 문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하는 까닭은 어쩌면 고전 경시에서 비롯한 측면도 있지 않을까. 대학에서 고전이 인기과목에서 밀려난 지는 오래 전의 일이고 폐강되기도 한다. 이른바 ‘카타르시스’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는 그리스 비극을 가르치는 대학은 거의 없다.

그리스 비극 작품에는 요즘 신문 사회면 기사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도 흔하다. 남자와 바람을 피운 여성이 정부와 공모해 남편을 죽이자 아들과 딸이 어머니를 죽이는 이야기도 있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극한적인 모습을 통해 올바르게 사는 게 무엇인지 들려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대학에서조차 가르치는 곳이 별로 없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회장은 최근 ‘아이패드’로 다시 한 번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경영인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닌 ‘리드칼리지’에서의 고전공부 덕분이라고 한다.

리드칼리지는 미국에 가장 독서를 많이 하는 대학 1위에 뽑힌 학교다. 이 대학에는 플라톤, 호머로부터 시작되어 카프카에 이르는 그 대학의 고전 독서 프로그램이 있다.

잡스는 “고전독서프로그램을 통해 고전의 바다에 빠질 수 있었던 게 애플 컴퓨터의 오늘을 만든 힘”이라고 말하면서 이 학교에 거액을 기부한 바 있다. 스티브 잡스가 영감을 얻고 그 영감을 테크놀로지로 현실화할 수 있었던 것은 동서양의 인문학이 창조의 에너지로 작용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앞 다퉈 인문학 배우기에 열광하는 것은 그 곳에 창조의 에너지, 성공의 에너지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성공으로 이끄는 최상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미래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면, 청춘 시절에 인문학의 향연에 푹 빠지자.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자!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자녀경영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한국의 1인주식회사> 등 다수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