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스터디 하실 분’, ‘교육학 스터디 모집합니다’. 캠퍼스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생각해보면 ‘스터디’는 결국 ‘공부’, ‘공부하다’라는 뜻이죠. ‘영어 공부 함께 하실 분’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영어 스터디’라고 이야기할까요?

스터디는 ‘여럿이 모여 특정한 내용이나 분야를 공부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특정한 내용이나 분야’입니다. 대개 스터디는 어학 시험이나 고시 준비, 또는 프로젝트성으로 특정한 결과를 내기 위해 만듭니다. 다시 말해, 함께 공부해서 스펙 쌓기 시너지를 내보자는 거죠. 스터디 진행은 보통 발제 형태로 이뤄집니다. 일정 부분 서로에게 책임을 지워가며 모임을 끌어가지요. 한 명이라도 발제를 하지 않으면 그 모임 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이 되어 버립니다. 책임감과 더불어 스터디를 함께 하는 동료 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죠.

이쯤에서 공부 자체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도발적으로 질문하자면, 스터디에서 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공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공부라는 말에는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를 축자적(逐字的)으로 해석하면 공부에는 결과나 목적은 없고 그저 배우고 익히는 과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반면 스터디에는 어학 점수 상승이나 자격증 취득 같은 특정한 목적이 있지요.

우리가 잘 아는 논어 경구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悅乎)’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뜻입니다. 공부와 매우 유사한 의미인 학습이란 말이 이로부터 나왔습니다. 딱히 어떤 결과를 바라지 않고 배우고 익히는 것,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입니다. 스터디와 공부를 등치할 수 없는 까닭, 이제 아시겠죠?

최근 출간된 <공부란 무엇인가>의 저자 이원석은 “단언컨대 자기 자신과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공부의 의미를 바르게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죠. 스터디는 스펙은 만들어 줄지 모르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이원석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서로를 끌고 밀어줄 수 있는 공부 공동체를 대안으로 거론합니다. 고전도 좋고 현재 이슈가 되는 책도 좋습니다. 함께 나누며 즐겁게, 때로는 논쟁적으로 생각의 날을 벼릴 수 있는 그런 공동체 말입니다. “쇠붙이는 쇠붙이로 쳐야 날이 날카롭게 서듯이, 사람도 친구와 부대껴야 지혜가 예리해진다”는 잠언을 떠올려봅니다. 스터디의 존재론을 바꾸어보세요!



공부란 무엇인가
[허영진의 빵 굽는 인문학] 스터디의 존재론을 바꿔보세요!
이원석 | 책담

일류대에 가면 팔자도 고치고 신분도 상승하는 세상이지만 정작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공허한 답변조차 들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 책은 시험과 취업에 제한적 의미로만 쓰이는 공부의 통념을 뒤집으며 우리 시대 공부에 대한 의미를 되새긴다. 공부는 원래 ‘사람을 만드는 것’임을 지적하며 제대로 된 공부와 공부법에 대해서 들려준다.



공부 논쟁

[허영진의 빵 굽는 인문학] 스터디의 존재론을 바꿔보세요!
김대식, 김두식 | 창비

괴짜 물리학자로 잘 알려진 김대식 서울대 교수와 삐딱한 법학자 김두식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형제다. 공부라면 일가견이 있는 이 형제가 한국의 공부 풍토에 돌직구를 날린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교육과 기회의 평등이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엘리트, 스펙과 취업에 목맨 학부모, 대학 서열화 문제 등 한국 교육현장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이 이어진다.



눈에 띄는 책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허영진의 빵 굽는 인문학] 스터디의 존재론을 바꿔보세요!
김중혁 | 문학과지성사

김중혁의 세 번째 장편소설. 의뢰인이 죽은 후 의뢰인이 지우고 싶어 하는 특정 기억이나 비밀을 지워주는 직업인 ‘딜리터(deleter)’. 주인공 구동치 탐정은 의뢰인의 주문에 꼼꼼히 응대하여 수완 좋은 딜리터로 인정을 받는다. 어느 날 재력가와 그의 추악한 비밀을 차지한 이들 사이에 거래가 벌어지고, 구동치에게 의뢰가 들어온다. 장르적 상상력과 참신한 전개가 흥미로운 책.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허영진의 빵 굽는 인문학] 스터디의 존재론을 바꿔보세요!
이원재 외 | 어크로스

정신병 산업의 폐해를 밝힌 책.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정신병이 유행처럼 번진 이유가 정신장애의 과잉 진단과 과잉 처방에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렇게 과잉진단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DSM’이라는 정신 의학 매뉴얼이라고 주장한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정신의학계를 고발한다.



통섭과 지적 사기

[허영진의 빵 굽는 인문학] 스터디의 존재론을 바꿔보세요!
이인식 | 인물과사상사

인문학과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을 통합한 범학문적 접근법을 가리키는 ‘통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책. ‘통섭’의 개념과 사용에 대해 비판적인 논문과 에세이를 수록하였다. 저자는 윌슨의 ‘통섭’이 한국으로 수입되면서 ‘융합’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한다. 마구잡이로 쓰이는 ‘통섭’의 의미에 대해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때가 되었다며 경종을 울린다.
[허영진의 빵 굽는 인문학] 스터디의 존재론을 바꿔보세요!
허영진(교보문고 리딩트리)

책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걸 아직도 믿는 서점 직원. 인문학이 우리를 구원의 언저리쯤엔 데려다 주리란 희망을 품고 있다.
[허영진의 빵 굽는 인문학] 스터디의 존재론을 바꿔보세요!
제공 : 교보문고 리딩트리 (http://www.facebook.com/kyobobook.Reading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