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인터뷰

산이가 왔어요, 산이! 맛좋은 산이가 왔어요!

실력파 랩퍼 산이가 2년여의 공백기를 깨고 새 앨범 ‘‘Not’ Based on the True Story’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이별 식탁’을 비롯해 ‘어디서 잤어’, ‘아는 사람 얘기’, ‘전 여자친구에게’ 등 이번 앨범에 대한 반응은 완전 후끈후끈! 2013년 끝자락에서 드디어 홈런을 날리고 해피 모드에 푹 빠져 있는 산이를 만나러 캠퍼스 잡앤조이 대학생 기자들이 나섰다.
San E, 돌아온 랩 지니어스 “포기하지 않으니 오더라, 이 빛나는 순간이!”
새 앨범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뜨거워요. 인기를 실감하나요?

음악 방송 끝나고 차를 타고 나가면 아이돌 가수의 팬들이 많이 있거든요. 요즘은 그 분들이 “정산! 정산!(산이 본명)” 하고 외쳐주세요. 대부분 중·고등학생들이 많은데 저를 좋아해주시는 걸 보면 얼떨떨하고 신기해요.

이번 앨범은 마치 단편 소설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실화라는 이야기도 많던데 본인의 사랑 경험이 어느 정도 녹아 있는 거죠?

우리가 보는 책이나 영화, 그림 같은 것들도 모두 기본 베이스는 경험에서 시작하는 것일 거예요. 실제 경험이든, 꿈속 경험이든요. 제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에 상상력을 덧붙여 작업하는 거죠.

‘지영아 사랑해’, ‘지영이 어머니’ 등의 가사로 요즘 주변에 있는 지영이들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해요. ‘지영이’의 실체는 뭔가요?

가상 인물이에요. 특별한 뜻이 있어서 ‘지영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고요. 예전에 JYP에 있을 때 생각했던 곡인데, 박진영 씨를 생각하고 ‘진영이 어머니’로 하려던 것을 지영이로 살짝 바꾼 거예요.

산이를 대표하는 노래들을 보면 한 남자의 순정과 그 끝을 일대기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거기 비춰보면 산이 씨의 연애는 왠지 찌질(?)할 것 같기도 하고요. 실제 연애 스타일은 어떤가요?

‘쿨’ 하다고 해야 할까요. 여자 친구가 뭘 하든 신경 안 쓰려고 해요. 클럽을 가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괜찮다고 하죠. 집착하는 것도 싫어하고, 집착 받는 것도 싫어해요. 그런데 여자들은 그런 것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간섭하고 싫은 척 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구를 진짜 깊이 좋아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쿨 한 연애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냥 애써 쿨 한 척하는 거죠. 제가 쓴 노래와는 좀 다른 스타일이죠. 음악 작업을 할 때는 상상이 많이 들어가요. 제 노래가 다크한 것들도 많지만 실제 성격은 정반대로 매우 밝은 편이에요.
San E, 돌아온 랩 지니어스 “포기하지 않으니 오더라, 이 빛나는 순간이!”
힙합보이와 어울리지 않게 취미가 ‘클래식 듣기’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취미까지는 아니에요. 하지만 요즘 클래식을 많이 듣긴 하죠. 스케줄이 많은데 음악까지 업 되고 하드코어인 것을 들으면 솔직히 정신이 없거든요. 그래서 ‘명상하기 좋은 음악’ 같은 것을 찾아서 아무 생각 안 하고 듣고 있어요. 진짜 취미라고 꼽을 만한 것은 특별히 없죠. 제 일상은 굉장히 단순한 사이클로 돌아가거든요. 곡 작업하고, 연습하고, 아니면 곡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등의 일이죠. 음악을 위해 보내는 시간들이 거의 전부인데 그게 제일 재미있어요.

‘이별식탁’, ‘어디서 잤어’, ‘아는사람 얘기’ 등 직접 출연한 뮤직비디오가 많아요. 혹시 연기 욕심이 있는 건가요?

‘발연기’이기는 하지만 연기가 재미있어요. 사실 쉬는 동안 연기도 배웠어요. 가수가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연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6개월 정도 배웠는데 나름대로 열심히 했죠. 연기를 가르쳐주는 선생님께서 각자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캐릭터가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주인공 옆에서 까불거리는 친구 역할이 어울린대요.(웃음) 무슨 역할이든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어요.

스스로 ‘랩 지니어스’, ‘산 선생님’이라 하셨어요. 그만큼 랩 실력은 국내 최고로 손꼽힌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하면 랩을 잘 할 수 있는 거죠?

‘랩 지니어스’, ‘산 선생님’ 같은 노래를 만들었을 때는 정말 어리고 패기 넘쳤었죠. 언더에서 이제 막 시작한 꼬마였는데 자신감이 과했어요. 그때의 멋이었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겸손을 배우고, 그 나이에 맞게 해야 할 행동들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랩 실력은 아무래도 타고 나는 게 있지 않을까요?(웃음)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능이 있던 건가요?

사실 어릴 때는 힙합을 잘 몰랐어요. 그러다가 14살에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본격적으로 힙합 음악을 알게 됐죠. 제가 살던 동네는 차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외진 곳이었어요. 부모님은 일을 하시니 학교가 끝나면 혼자서 갈 수 있는 곳도 없었고요. 친구도 없고 인종차별도 심하고 말도 잘 안 통하니까 집에서 음악만 들었죠. 음악을 들으면서 똑같이 따라하려고 노력했어요. 나중에는 MR을 틀고 그 위에 내 이야기도 써보고요.

음악만 듣느라 공부는 뒷전이었겠네요.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꽤 잘하는 편이었죠. 친구들은 제가 미국 가면 하버드에 갈 줄 알았대요. 미국에서는 한국에 있을 때만큼 잘하지는 못했지만 부모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정도로는 했어요.
San E, 돌아온 랩 지니어스 “포기하지 않으니 오더라, 이 빛나는 순간이!”
본격적으로 음악에 대한 꿈을 꾼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당시 최고의 힙합 레이블이었던 YG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YG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로 한국에 왔는데, 1달 동안 술만 먹다가 미국으로 돌아갔어요. 부모님께는 한 달로는 부족하다고 말씀드려서 다시 연세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죠. 분명 올 때는 길거리에서 공연도 하고, YG 앞에서 텐트 치고 버티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또 6개월 동안 술만 먹고 돌아갔어요.(웃음) 부모님은 “너 정도 실력 되는 애들은 한국에 몇 천 명씩 있다”라고 하시고, 주변에서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러냐”라는 얘기들을 했죠. 저 스스로도 한국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가니 실망감이 컸고요. 그래서 그때 음악을 포기했어요. 한동안 아예 음악도 안 들었죠.

그런데 결국 음악을 다시 하게 됐네요.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고민이 많이 생겼어요. 이제 학생이 아니라 사회로 나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싶었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한 번도 도전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기계를 사서 곡을 만들고 녹음했죠. 결국 그게 잘 풀려서 JYP와 계약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저는 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어요.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정말 재미있고, 재미있으니 잘하게 되고, 잘하니까 칭찬받고, 칭찬받으면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처음에는 돈을 못 벌 수 있지만 나중에는 돈도 벌고 행복까지 얻을 수 있죠. 저는 그런 면에서 행복해요.

‘멘탈이 섹시한’, ‘멘탈이 근육질인 남자’가 요즘 여대생들의 이상형이에요. 그래서인지 섹시하고 대담하면서도 부드러운 필력을 가진 산이의 인기가 높은 것 같아요. 센스 있고 귀에 착 감기는 가사는 어떻게 쓰는 건가요?

일단 솔직하려고 해요. ‘어떻게 하면 멋지게 보일까’를 생각하면 기교를 넣게 되고, 나답지 않은 음악을 하게 되죠.

힙합은 솔직한 음악이에요. 어떻게 보면 불편할 수 있는 깊은 곳의 이야기까지 꺼내려고 하죠. 그래서 저는 책을 읽을 때도 그런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해요. 사실 그런 것은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거든요. 뭔가 묻어 있는 것 같고, 오히려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죠. 하지만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여러 가지 감정을 터치하고 내 안의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책 중에 한 권을 대학생들에게 추천해 준다면?

최근에 <템테이션>을 재밌게 읽었고, 학생들에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추천하고 싶어요. 사실 그 소설을 읽고 났을 때 기분은 썩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느끼는 것은 많죠.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문체도 좋아하고요. 저도 20대 초반의 나이에 그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제가 유일하게 여러 번 읽은 소설이에요.
San E, 돌아온 랩 지니어스 “포기하지 않으니 오더라, 이 빛나는 순간이!”
산이의 노래 대부분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데, 일부 사람들은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힙합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랩퍼 UMC가 했던 “콘돔을 끼면 진정한 섹스가 아니다”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힙합은 기본적으로 마초적인 음악이에요. 남성적이고 직설적이죠. 미국 힙합은 그런 부분이 굉장히 강해요. 저도 미국에서 그런 음악을 듣고 자랐고, 한국에서 그런 음악을 하고 싶었죠. 실제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저도 그런 음악을 했어요. 하지만 벌써 한국 생활이 5년이에요. 한국적인 정서가 많아졌고, JYP라는 대중적인 소속사에 있다 보니 변한 부분도 있죠. 모든 문화는 그 나라의 정서에 맞게 달라져요. 말보로, 맥도날드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그에 맞게 변하게 되어 있잖아요. 미국의 힙합 문화는 그 모습 그대로는 절대로 한국에 들어올 수 없어요. 마약을 팔고 그 돈으로 벤츠를 샀다고 가사에 쓸 수는 없잖아요.

JYP를 나오고 ‘이제야 진정한 산이를 찾은 것 같다’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결과론적인 것 같아요. 소속사를 나오고 난 후 낸 앨범의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거겠죠. 만약 이번 앨범이 잘 안 됐다면 그냥 “쟤는 뭘 해도 안 돼”라는 평을 들었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결과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어떤 것 같아?”, “어떻게 될까?”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하죠. 그러고 나서 잘 되면 줏대 없이 “거봐! 내가 그럴 거라고 했잖아”라고 말해요. 그런 박쥐같은 사람들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약 2년 반의 공백기가 있었어요.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그 시간을 견뎌내고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공백기 동안 배가 고팠죠. 다른 사람들, 친구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축하해줬지만 씁쓸했어요. 곡을 만들어서 내면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하고. 그런 상황이 굉장히 힘들었고요.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서 또다시 뛰고 있는 기분이었죠. 온 힘을 다해 결승점까지뛰었는데, 또다시 계속 뛰어야 하는 상황이요. 너무 음악과 무대에 고파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한 거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 시간을 극복하고 결국 좋은 날을 맞은 인생 선배로서 대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San E, 돌아온 랩 지니어스 “포기하지 않으니 오더라, 이 빛나는 순간이!”
음악을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했지만 후회도 많이 했어요. 지난해 여자 친구와 이별하고 술에 취해 한강을 걷다 휴대폰을 보니 제 통장 잔액이 2만 원이더라고요. 이제 곧 서른인데, ‘나 같아도 내 옆에 붙어 있기 싫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50곡 넘는 음악을 만들었지만 모두 거절당하면서 ‘나는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공부도 잘했는데 기업에 들어가거나 차라리 영어 강사라도 했으면 돈 많이 벌었을 텐데’, ‘이래서 부모님이 공부 열심히 하라는 거구나’란 생각도 했어요.

남들처럼 안전한 길로 걸어가는 친구들이 부러워지기도 했죠. 사실 연예인 중에 돈 버는 사람은 정말 몇 명 안 돼요. 유명하지 않은 연예인은 비참하죠. 어딜 가도 비교당하고,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어요. 그래도 저는 늘 거울을 보며 “잘 버티고 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격려했어요. 뜨거운 불 속에 칼을 넣었다가 꺼내 탕탕 두드리면 정말 단단한 칼이 완성되죠.

저도 그런 거라 생각해요. 더 단단해지기 위해 지옥불에 들어갔다 온 거죠. 그때 한강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통장 잔액 2만 원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낭떠러지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더는 무서운 것도 아쉬울 것도 없더라고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진짜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대부분 포기해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언젠가 자신이 빛나는 순간이 반드시 오는 것 같아요.



글 박해나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